▲비디오테이프기린반 이명수어린이의 추억이 담겨있을 비디오, 아현동을 떠나면서 추억도 잊으려 버린걸까.
이인
이런 와중에도 편지는 배달되어서 열려지길 기다리고 있고 어떤 집에는 고지서가 쌓여있었지요. 이곳저곳 폐기물들이 쌓여있는 곳을 둘러보니 여러 가지 물품들이 나오더군요. 8월 달에 이사를 가서 수돗물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이번 달 청구용지에 0원이 표시된 지로용지도 있고 추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도 있군요. 비디오에 담긴 내용보다 더 따뜻한 기억들을 안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갔을까요? 사랑의 유치원 기린 반에서 생활했을 이 학생은 추억이 담긴 테이프를 버리고 떠났나 봅니다.
이어지는 계단길과 골목에 버리고 간 물품들이 수북히 쌓여있습니다. 미로처럼 복잡하게 연결된 골목에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있네요. 한 사람도 지나가기 좁은 골목과 황폐한 집들을 보니 지난 시절이 생각나네요. 집이 없어 전세로 22년을 떠돌다 성남에 집이 생겼을 때 부모의 기뻐하는 얼굴을 떠올려봅니다. 이들도 자신의 집을 구해 떠나갔길 바랍니다.
남쪽 방향으로 연결된,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쪽으로 가봤어요. 근처에 있는 가게마다 빨간색 글씨로 '공가'라고 쓰여 있네요. 철거사무실은 조금은 섬뜩하게 느껴지네요. 여기저기 적혀있는 '이주합시다'라는 빨간 글씨, 아직 이주를 못하신 분들도 남아 있어서 승합차 마을버스가 운행하더군요. 승합차 마을버스는 처음 봤어요. 험하고 비탈진 골목길 올라오실 때 힘든 짐을 많이 덜어주었을 저 마을버스도 이제 사라지겠지요.
또 나타난 계단을 따라 애오개 마루로 올라가봤어요. 사람이 있는 집이 거의 없더군요. 버려진 집이라는 게 확연한 티가 나고 골목마다 버려진 물건들이 가득하더군요. 문이 열린 집에 들어가 둘러봅니다. 장판지까지 뜯어져서 고스란히 드러난 시멘트 바닥과 깨진 창문들, 그래도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것을 생각하니 찡하더군요. 망가진 시계만이 덩그러니 바닥에서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