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도 남의 것 베끼면 발전 없다"

[문화] 경남서예협회 김종원 회장과 함께 찾은 서예전시장

등록 2008.09.26 11:03수정 2008.09.27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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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통해 미래로 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자아비판도 있어야 되지만 외부비판도 많이 들어야 됩니다. 남의 욕을 많이 들어야 되는데 사람들은 남의 욕을 듣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서 발전이 없는거 같아요"라며 진취성이 부족한 현재의 서예계를 질타하는 김종원 한국서예협회 경남지회장.

공모전에 나오는 작품들을 보면 서예선생이 써 준 체본을 베껴서 내는 경우가 많다며 "작품에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어야 돼요, 내 생각을 들고 작품전에 나가야 됩니다"라고 강조하는 김 회장과 함께 지난 24일 서예전시장을 찾았다. 


창원 성산아트홀에선 한국서예협회 탄생 20주년을 맞아 지난 7월 심사를 거쳐 선정된 경남서예대전 수상작 500여점과 초대작가 및 추천작가 200여 명의 작품을 23일부터 28일까지 전시한다.

이 중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하수연씨의 '손곡선생 시'를 비롯해 우수상을 수상한 오경숙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와 김성영씨의 '춘흥', 서은경씨의 '최승로선생 시', 권오천씨의 '경봉선사 시', 정숙재씨의 문인화 '란', 그리고 초대작가인 이승유씨의 '논어구'를 경남서예협회 김종원 회장의 해설과 함께 감상해 보기로 하자.

 경남서예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하수연씨의 작품인 손곡선생 시
경남서예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하수연씨의 작품인 손곡선생 시조우성
-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군요.
"하수연씨 작품의 서체를 구분하자면 해서에 해당됩니다. 한자가 변천과정에 있어서 정서와  예서를 거쳐서 정착되는 게 해서입니다. 중국의 한나라와 위진남북조시대, 당나라를 거쳐 해서가 완성되죠.

이 작품의 글씨체는 해서이지만 하수연씨가 위진남북조시대의 서예정신을 요즘의 시대정신으로, 현대의 시대정신으로 새롭게 재해석하려고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 점이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 작품의 특색은 뭡니까.
"선의 변화를 많이 시도하고 있습니다. 선의 변화를 가져오되 본질적인 면에서는 질박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고전시대의 서풍을 이해하고 그 부분을 시대에 맞게 접목시켜보려는 노력과 고민들이 드러나 있습니다."


- 느낌이 서민적이고 뭔가 여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질박하고 넉넉하죠. 미학의 입장에서는 이 작가가 선을, 글씨를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할 것인가라는 부분에서 실제로 여유를 가졌다는 이야기죠. 단순히 잘 쓰겠다는 개념으로 글씨를 공부한 것이 아니고 나는 어떠한 선을 찾을 것인가라는 것이 전제되어져서 질박함이라든지 넉넉함이라든지 여유로움이 배어나오게 된 것이죠."

- 손곡 선생의 시를 적었는데, 어떤 뜻을 가지고 있나요?
"하하, 이거 어려운데요. 처곤상환약하고 거빈매안여라. 동풍한식루에 불각만의거라. 아주 곤궁한 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기쁜 듯이 살고, 가난 속에 살더라도 매번 편안하게 생각한다. 봄바람 한식절에 눈물이 흐르니 옷소매에 눈물이 넘치는 것을 느끼지 못했네. 대충 이런 뜻입니다. 손곡 이달 선생은 허난설헌의 시스승입니다."


 우수상을 받은 오경숙씨의 한글서예작
우수상을 받은 오경숙씨의 한글서예작조우성
- 한글작품이네요.
"보통 한글서체를 궁체, 판본체식으로 많이 나눕니다. 오경숙씨 작품은 그런 것에 해당되기보다는 한글소설본들이 가지고 있는 문자꼴을 나름대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선들을 보면 아래로 아래로 계속 흘러가는 듯한 그러한 굴곡을 많이 구사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변형을 추구한 것이죠."

- 이 작품은 어떻습니까?
"한글 편지, 옛날 간찰에 보이는 글씨모양꼴과 고소설본에 나오는 글자꼴의 선에 리듬을 강하게 주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리듬만을 강하게 주려다 보면 글씨, 선들이 나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순간 순간 붓을 멈추어서 선을 강조해내는 공부가 필요한데 이 작가는 그런 것이 어느 경지에 올라서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계속 이런 방향을 추구하다 보면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 보여집니다."

- 내용은 아주 흔한 글이네요.
"조금 식상한 말이죠. 흔한 말들, 누구나 하는 소리를 인용하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찾아보는 것이 작가정신이겠죠."

 공예적 요소가 많은 금문체의 김성영씨 작품
공예적 요소가 많은 금문체의 김성영씨 작품조우성
- 글씨체가 회화적인데요.
"김성영씨의 춘흥은 전서인데 전서 중에서도 대전에 속합니다. 은나라말기 주나라 시대에 쓰던 문자꼴을 금문 또는 대전이라고 하는데 이 글자가 가지고 있는 선들은 굉장히 둥급니다. 둥글고 공예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그 공예적인 요소에 대해 작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아마 그게 심사관건이었을 겁니다.

사실 대전문자가 가진 선들이 둥근데, 이 작가는 둥근 것과 둥글지 아니한 것을 적절히 사용하고 있고 자형도 자기 나름대로 변형을 해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 부족한 점을 지적한다면?
"문자가 가지고 있는 원형질에 대해서 좀 더 정확할 필요가 있습니다. 열정은 있지만 자기 나름의 정확한 철학 위에 만든 작품이라기보다는 겉에 드러난 표피적인 것을 먼저 가져올려고 서두르다보니 조금 가벼움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좀 더 선의 질에 대해서,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 참구를 하면 좋겠습니다."

 수란을 그린 정숙재씨의 작품은 선의 탄력이 좋고 그림이 능숙하다
수란을 그린 정숙재씨의 작품은 선의 탄력이 좋고 그림이 능숙하다조우성
- 난초가 멋진데요.
"언덕에서 아래로 흘러내려온 난초를 표현한 그림입니다. 난초 중에서도 수란을 그렸는데 선들이 상당히 탄력이 좋습니다. 선의 본질에 대한 연구가 아주 제대로 되어 있습니다. 꽃을 처리한 부분도 능숙하고, 꽃의 모양새에 대한 연구도 많이 했습니다.

화제는 옛날에는 한자로 썼죠. 지금은 그게 안 되니까 한글을 가지고 화제를 붙입니다만 사실 실패할 경우가 많습니다. 근데 이 작품은 그림과 화제가 적절한 배합을 가지고 있어요. 난초그림에서 오는 선의 맛이 글씨에 그대로 연결되고 있어요. 그게 높이 평가 된 것 같아요."

- 흠을 잡는다면 뭐가 있습니까.
"한 가지 흠을 잡자면 도식적입니다. 작가는 어디에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구도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되는데 이 작품은 이미 있어온 구도를 능숙하게 잘 그리고 있다는 거죠.

이게 단점입니다. 고전을 배운다, 고전을 통한다는 말은 미래를 향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니까 고전 그대로 한다면 의미가 없겠죠. 고전을 미래적으로 발전시켜야죠."

 최승로선생의 시를 적은 서은경씨의 예서체 작품
최승로선생의 시를 적은 서은경씨의 예서체 작품조우성
- 최승로 선생의 시를 적었군요.
"그렇죠. 이것은 예서인데 변형된 예서입니다. 이 글씨같은 경우는 상당히 작위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글의 선이 예서가 가지고 있는 본질의 문제랑 약간 대치될 수 있는 상황이 있어요.

그러나 그게 나쁜 것은 아니고 그것을 이런 식으로 이 시대에 맞게 적절하게 조화해 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죠. 이 작품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게 높이 평가된 거죠.

단지 그게 어느 정도 소화가 되느냐 하는 그런 부분은 이 작가가 좀 더 고심해야 되지 않느냐 보여집니다. 주어진 가능성을 자기 스스로 노력해서 만들어내기보다는 어느 누군가가 이룩해 놓은 형태을 차용한 흔적이 농후합니다.

그게 결점이죠. 절대 남의 것을 차용하지 말고 고전에서 가져와 나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런 자기 생각을 많이 해야 됩니다. 그것은 어떤 작품이든지 해당되는 사항이죠."

- 아마추어니까 모방에서 창작, 변형이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까?
"그래요. 공모전은 어디까지나 아마추어들의 작품전입니다. 그래서 공모전을 통해 잘한 부분은 격려하고 부족하고 모자란 면은 비판을 가해서 서화예술계가 이전보다 더 진취적으로 나아가자고 하는 것이죠."

 행서에 초서적인 느낌을 가미한 권오천씨의 우수작
행서에 초서적인 느낌을 가미한 권오천씨의 우수작조우성
- 글자가 알기 어렵네요.
"이 작품은 행서, 초서쪽에 해당됩니다. 행서에 좀 더 초서적인 기분을 가한 건데 상당히 능숙한 필체를 갖고 있어요. 글자 자형을 만드는 방법도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수상이지만 선의 질과 붓이 가지고 있는 탄력을 이용하는 방법에서는 대상에 뒤지지 않습니다. 구성과 흐름이 아주 수준급이라 우수상 충분하죠. 대상을 줘도 아깝지 않은 필력과 구도, 세련됨을 갖고 있는 작품입니다.

단지 어떤 특정인의 작품을 원용하다보니 거기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까 대상작품의 경우에는 위진남북조시대의 선을 가지고 작품활동을 했다는 거고 이 작품은 선들을 자기식으로 끌어내보려는 노력은 있습니다만 어느 특정 개인의 양식화된 글자모양을 너무 많이 원용한 경향이 있습니다."

- 시대정신, 혹은 특정개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시대정신의 영향을 받는 것은 상당히 오래 가고 미래적인 자양분이 될 수 있지만 한 개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거기에서 빨리 벗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특정 개인을 흉내내는 것은 빠른 시간내에 효과를 낼지라도 그 효과나 약발이 금방 끝나죠. 하지만 그 서체가 갖고 있는 시대상황을 원본에서 취득하면 오랫동안 써먹을 수 있죠."

- 어떻게 해야 작가로서 성장가능성이 높아질까요?
"어느 한 사람의 양식을 답습하지 않고 자기 길로 가야 가능성이 커지죠. 그 부분은 본인의 결심과 노력에 달려 있죠. 힘들지만 습관화된 자세에서 벗어나서 독자의 길로 가야 되죠."

 필력이 상당히 깊은 초대작가 이승우씨의 논어구
필력이 상당히 깊은 초대작가 이승우씨의 논어구조우성

- 작품이 좀 특이하네요.
"이승우 초대작가는 공부 방법도 좋고 표현력도 뛰어납니다. 이 작품은 글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전달을 표현한 것이 아니고 문자가 가지고 있는 선의 질, 그 문제를 가지고 자기생각을 전달해보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필력이라면 그냥 단순히 역동적으로 표현되는 힘이 아니고 고전을 공부해서 나타낼 수 있는 역량을 말하는 건데, 그 필력이 상당히 깊어요. 다양한 고전을 공부하고 그 고전이 가지고 있는 선들을 본질적으로 규명해서 자기식으로 표현하려고 상당히 노력한 작품입니다. 공모전에 나온 사람들이 이 작품의 정신을 많이 참고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여위산의 뜻이 뭐죠?
"논어에 나오는 말인데, 산을 쌓을려면 한 삼태기의 흙에서 시작해서 쌓이고 쌓여서 산이 되는 것이고, 산을 평지로 만들려면 한 삽 한 삽 떠내야 평지가 된다는 내용입니다. 뭐든지 공은 하나씩 쌓아서 이루어진다 그런 말이죠."

 팔백점이상 출품된 공모작들을 모아서 성산아트홀에서 전시하고 있다.
팔백점이상 출품된 공모작들을 모아서 성산아트홀에서 전시하고 있다.조우성

- 이번 공모전에 대해서 총평을 해주시죠.
"자축하자면 많은 출품작들이 나왔으니까 대단한 성과죠. 서울에서 전국 규모로 하는 행사에서도 우리만큼 작품수가 나오는 곳이 없습니다. 경남지역이 서예에 대한 관심이 높아요. 하지만 작년보다 출품작 수가 많아 고무적이지만 그것이 양적인 팽창을 의미하지 질적인 수준 향상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작년보다 진취적인 부분에서는 모자랍니다."

- 진취적이고 서예계를 만들기 위해 협회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요?
"협회에서는 진취적인 작품들이 수상권에 들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협회의 그런 의도를 알게끔 합니다. 글씨를 가르치고 배우는 현장에서도 그런 진취적인 정신이 싹트게끔 노력하고 있습니다. 협회차원에서 세미나도 개최합니다."

- 그러한 노력에 호응이 있습니까?
"하지만 별로 호응도가 높지 않아요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만족을 해버려요. 자기 틀을 깨는 장을 마련하면 참석을 꺼려 합니다. 남의 비판을 듣지 않을려고 해요. 고전을 통해 미래로 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자아비판도 있어야 되지만 외부비판도 많이 수용해야 되죠. 남의 욕을 많이 들어야 되는데 사람들은 남의 욕을 듣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서 발전이 없는거 같아요."

- 남의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된다는 말씀인가요?
"겸허하게 안 받아들여도 괜찮습니다. 싸워도 돼요. 내가 굳게 믿고 있는 것을 상대하고 싸워서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옳다고 증명해 보여야 됩니다. 그게 글씨세계에서는 자기 작품이죠. 자신이 하는 방법이 최고라고 말만 하지 말고 그것이 논리적으로 왜 정당성을 가지는지 작품 발표를 통해 증명해 보여야 됩니다."

- 마지막 당부말씀은.
"공모작들을 보면 남의 것을 베껴서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서예원장들이 체본을 써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을 베껴서 내죠. 그건 안 되는 거죠. 그건 자기 논리가 없다는 거죠. 평소에 공부를 할 적에는 선생이 써 준 체본을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공모전에 작품을 낸다고 할 경우에는 내 생각을 집어넣어야 되죠. 내 생각을 들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경남서예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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