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1)

[우리 말에 마음쓰기 433] '내 존재의 근본', '존재로서의 중량감' 다듬기

등록 2008.09.29 12:17수정 2008.09.2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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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내 존재의 근본까지

.. 그리고 나는 그 여행 끝에 나의 건강뿐만 아니라 내 존재의 근본까지 찾아내게 되었던 것이다 ..  《안토니 사틸라로/영양의학연구회 옮김-되찾은 생명》(형성사,1987) 14쪽


“나의 건강(健康)뿐만 아니라”는 “내 몸뿐만 아니라”로 다듬습니다. 보기글 가운데 짬에는 “내 존재”라고 적는데, 바로 앞에는 “나의 건강”으로 적었습니다. 뒤에서 적듯 ‘내’로 적어야 알맞습니다. ‘근본(根本)’은 ‘뿌리’나 ‘바탕’이나 ‘밑바탕’으로 손질하고, “되었던 것이다”는 “되었다”로 손질합니다.

 ┌ 내 존재의 근본까지를
 │
 │→ 내가 살아가는 밑뿌리를
 │→ 내 밑뿌리를
 │→ 내 밑바탕을
 │→ 내가 어떻게 이 땅(세상)에 있는지를
 │→ 내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를
 │→ 나란 참말로(참으로) 무엇인지을
 │→ 나라는 목숨은 무엇인가를
 └ …

제 몸을 살피는 일은 중요합니다. 제 마음을 살피는 일도 중요합니다. 제 몸과 마음을 깨닫지 않고는 남이든 이웃이든 동무이든 살붙이이든, 제대로 보기 어렵습니다. 자기한테 알맞고 즐거운 일과 놀이를 찾기 어렵고, 이웃이나 남이나 동무한테 어떤 일과 놀이가 알맞거나 즐거운지 느끼기 어렵습니다. 제 몸과 마음도 모르는 주제에 이웃사람 몸과 마음을 어찌 알겠으며, 제 몸이며 이웃 몸을 모르는 가운데 어떻게 이 세상에서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거나 도우면서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몸을 알아가는 일이나 우리 마음을 돌아보는 일은, 우리 스스로가 어떤 목숨붙이인지를 살피는 일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어떤 목숨붙이인가를 살피는 일은, 우리가 발디딘 삶터를 굽어살피는 일입니다. 우리 삶터를 굽어살피는 일은, 한 목숨 부여받고 살아가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보람과 즐거움과 멋과 기쁨과 눈물콧물 들을 느끼거나 나누게 되는지를 곱씹는 일입니다.

삶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느껴야 합니다. 삶터가 어떤 바탕을 이루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알고 남을 알면서, 내 말을 알고 남 말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삶이 없는 가운데 내 넋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내 넋이 없으니 내 생각이 없고, 내 생각이 없기에 내 말이 없습니다.


먼저 내 삶을 찾아서 내 넋을 가꾸고, 내 넋을 가꾸며 내 생각을 키워서, 키워진 내 생각으로 내 말을 해야 합니다. 이러는 동안 비로소 내 일과 내 놀이가 자연스럽게 내 몸뚱이에 녹아들고 스며들고 배어듭니다. (4339.2.7.불.처음 씀/4341.9.29.달.고쳐씀.ㅎㄲㅅㄱ)

ㄴ. 존재로서의 중량감


..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  《김훈-자전거여행》(생각의나무,2000) 23쪽

무게에서 오는 느낌을 뜻하는 ‘중량감(重量感)’입니다. 이 말은 ‘무게’로 다듬거나 ‘묵직함’으로 걸러내면 됩니다. ‘전혀(全-)’는 ‘조금도’나 ‘하나도’로 다듬습니다.

 ┌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
 │→ 꽃으로서는 무게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 꽃다운 묵직함이(무게가) 조금도 없다
 │→ 꽃 같다는 느낌이 잘 나지 않는다
 │→ 꽃에서 느끼는 무게란 거의 없다
 │→ 꽃다움을 찾기 무척 어렵다
 │→ 조금도 꽃답지 않다
 └ …

이 자리에서는 ‘꽃’이라고 말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괜히 ‘존재’를 들먹거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산수유도 꽃이요, 꽃다워 보이지 않더라도 꽃이며, 우리가 꽃이라고 여기지 않아도 꽃인 자연입니다.

그나저나, 글쓴이는 무슨 까닭으로 “존재로서의 중량감”을 꺼냈을까요. 어떤 느낌을 나타내고 싶어서 이렇게 ‘존재’와 ‘중량감’이라는 낱말을 골랐을까요. 우리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을까요. 우리한테 어떤 마음을 나누어 주고 싶었을까요. 우리하고 어떤 자리에서 어떤 눈높이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생각이었을까요.

 ┌ 산수유는 있는 듯 없는 듯 알 수 없다
 ├ 산수유는 꼭 없는 듯한 나무(꽃)이다
 ├ 산수유는 너무 가벼운 나무(꽃)이다
 └ …

‘시처럼 쓰는’ 글이란 없습니다. ‘생각깊은 듯 쓰는’ 글 또한 없습니다. 시는 시이고 글은 글입니다. 시에 담는 깊은 느낌은, 시를 읽는 사람 마음 깊숙이 스며들도록 해 주면서 나누는 느낌입니다. 글에 담는 깊은 생각은, 글을 읽는 사람 살갗 안쪽으로 파고들도록 해 주면서 주고받는 생각입니다.

두루뭉술하게 펼쳐지는 말잔치로는 이야기를 나눌 수 없습니다. 껍데기를 잔뜩 들씌워 놓는 글잔치로는 생각이나 느낌을 어우를 수 없습니다.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서야 합니다. 한 계단 아래로 내려서야 합니다. 구름 위로 올라서려는 마음이 아니라, 땅을 밟으려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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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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