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에 머물고 있는 가을을 만나러 가다

마른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나뒹구는 여수 관기리 고샅길

등록 2008.10.04 16:24수정 2008.10.0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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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랗게 영근 벼이삭  여수 소라면 관기리 들녘에 노랗게 영근 벼이삭

노랗게 영근 벼이삭 여수 소라면 관기리 들녘에 노랗게 영근 벼이삭 ⓒ 조찬현


가을햇살이 따사롭다. 가을을 만나러 오후에 찾아간 여수 소라면 관기리 들녘에선 가을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장다리 수수가 갈바람에 춤을 추는가 하면 화사한 하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붉은 고추밭에는 고추잠자리가 한가롭게 날아다닌다.

논두렁에는 갓 피어난 억새가 길손에게 손을 흔든다. 남새밭에는 가을무와 배추가 무럭무럭 커간다. 농부는 마을회관 공터와 갓길에 나락을 내다 말리고 있다. 그 어느 해보다 잘 영근 벼의 낟알은 굵직굵직 잘도 여물었다. 


a 벼이삭 그 어느 해 보다 잘 영근 벼의 낟알은 굵직굵직 잘도 여물었다.

벼이삭 그 어느 해 보다 잘 영근 벼의 낟알은 굵직굵직 잘도 여물었다. ⓒ 조찬현


풍요로움이 넘실넘실 넘쳐나는 가을들녘

a 억새꽃 가을의 전령사 억새꽃이 있는 풍경

억새꽃 가을의 전령사 억새꽃이 있는 풍경 ⓒ 조찬현


나락을 당그래(고무래)질하던 농부(정승조·54)는 "일조량이 많아 좋아요"라며 넉넉한 가을걷이가 만족스러운 듯 환하게 웃는다. 가을걷이에 바쁜 관기들녘의 농로에는 경운기소리 그칠 새가 없다.

플라타너스가 있는 관기초등학교 교정에서 아이들이 그네를 탄다. 플라타너스 그늘 벤치에 앉아 잠기 사색에 잠겨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노랗게 알알이 영근 벼이삭이 고개 숙인 채 줄지어 서있는 오솔길이다. 양편 길에는 갈대꽃이 활짝 피었다. 무리지어 환하게 피어있다.

관기초등학교 앞 전주에 매달린 이정표에 눈길이 멎었다. '사랑뎅이길', 길 이름이 참 예쁘다. 그 길을 따라가 봤다. 이름이 하도 예뻐서. 길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구불구불한 S라인이다. 소라면 관기3구다. 70여 호가 사는 이 마을은 논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벼농사 짓는 전형적인 시골마을 관기리

a 경운기 가을걷이에 바쁜 관기들녘의 농로에는 경운기소리 그칠 새가 없다.

경운기 가을걷이에 바쁜 관기들녘의 농로에는 경운기소리 그칠 새가 없다. ⓒ 조찬현


마을 초입에서 만난 어르신에게 마을 특산물에 대해 묻자 "뭐~ 나락 농사짓지 딴 거 있소?"라며 반문한다. 그걸 반증이라도 하듯이 마을 초입에서부터 마을주변을 온통 노랗게 영근 벼이삭이 감싸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거대한 플라타너스나무는 수백 년은 됐음직하다. 그 기세에 놀란 동료는 "허벌나게 크네!"라며 놀라워한다. 플라타너스 고목은 밤송이 같은 열매를 주렁주렁 수없이 매달고 있다.

가을빛을 머금은 플라타너스와 주변의 벤치가 가을분위기에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 이 나무 몇 년이나 됐어요?"
"...”
"이 나무가 참 좋은 나무여. 서늘코 잘 크고."
"사진 한 장 찍을까요?"
"늙은 할망구 찍어서 뭐 할라고, 집에 찍어놓은 사진이 많이 있어."

마른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나뒹구는 고샅길

a 플라타너스나무 마을 한가운데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거대한 플라타너스나무는 수백 년은 됐음직하다.

플라타너스나무 마을 한가운데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거대한 플라타너스나무는 수백 년은 됐음직하다. ⓒ 조찬현


관기3구 마을을 돌아봤다. 집안 마당에도, 마을 곳곳의 빈터에도, 농부들이 수확해 널어놓은 벼가 가을햇볕에 여물어간다.

노인회관을 지나자 '중뜸길'이다. 햇살 따가운 나른한 가을날 오후, 가을 늦더위에 지친 누렁이가 생뚱맞게 개집 위에서 축 늘어져 낮잠을 즐기고 있다. 풍년 가을을 맞은 한 농가의 마당에는 수수, 고추, 콩, 참깨가 풍성하다.

담장에는 감이 노랗게 익어간다. 석류의 붉은 열매도 알알이 익어간다. 가을날의 시골마을 풍경은 참 아름답다. 바쁜 가을철에는 아무 쓸모없던 것까지도 일하러 나선다더니, 들판은 부지깽이의 손길이 아쉬울 정도로 바쁘다. 하지만 고즈넉한 마을의 고샅길에는 마른 플라타너스 이파리만이 나뒹굴고 있다.

a 가을날 오후 햇살 따가운 나른한 가을날 오후, 가을 늦더위에 지친 누렁이가 생뚱맞게 개집위에서 축 늘어져 낮잠을 즐기고 있다.

가을날 오후 햇살 따가운 나른한 가을날 오후, 가을 늦더위에 지친 누렁이가 생뚱맞게 개집위에서 축 늘어져 낮잠을 즐기고 있다. ⓒ 조찬현


a 풍년 가을 풍년 가을을 맞은 한 농가의 마당에는 수수, 고추, 콩, 참깨가 풍성하다.

풍년 가을 풍년 가을을 맞은 한 농가의 마당에는 수수, 고추, 콩, 참깨가 풍성하다. ⓒ 조찬현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여수미디어코리아,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여수미디어코리아,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가을 #관기리 #풍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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