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초콜릿만큼 다양한 여자들이 있다

[일본소설 맛보기 18] 요시다 슈이치의 <여자는 두 번 떠난다> & <일요일들>

등록 2008.10.04 19:27수정 2008.10.04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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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두번 떠난다 ⓒ media 2.0

여자는 두번 떠난다 ⓒ media 2.0

요시다 슈이치의 연작소설 <여자는 두 번 떠난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은 대개 비슷한 인물이다. 20~30대에 일정한 직장 없이 프리터로서 근근한 생활을 연명하는데다 '이대로 사는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인가', 늘 고민은 하지만 그렇다고 치열한 삶을 살지도 않는 인물들이다.

 

뜨뜻미지근한 것은 사랑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 이 소설 <여자는 두 번 떠난다>는 어수룩하고 미숙하기만 했던 젊은 날 사랑에 대한 보고서다.

 

장대비 속의 여자, 공중전화의 여자, 평일에 쉬는 여자…. 소재별로 제목을 붙인 총 11편의 여자 시리즈가 담겨있다. 젊은 날, 누구라도 한번쯤 오가며 만났을 사람들,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랑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런데 사랑이야기치고는 참 건조하다. 가을날 마른 낙엽처럼 부석부석하고 가을바람처럼 건조하다. 코끝이 찡하거나 가슴이 아프다거나 하는 아름답고 촉촉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이 소설은 사랑이야기가 아닐 지도 모른다. 그저 '여자이야기'일 뿐이다. 세상에 다양한 종류의 초콜릿이 있듯, 세상에는 다양한 여자들이 있다. 그 여자들의 이야기를 쓴 것일 수 있다.

 

초콜릿만큼이나 다양한 여자들

 

한 편당 분량은 약 9~10페이지다.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 약간은 싱겁고 재미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여운은 있다. 그 여운을 설명하기는 사실 참 어렵다. 내 경우에는 '세상에는 이런 여자도 있고 저런 여자도 있고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지만 모두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라는 것이다.

 

한편의 소설을 읽었다기보다는 일러스트나 삽화를 본 것 같다는 느낌에 더 가깝다. 뭔가 다이나믹하고 역동적인 소설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문화적 차이를 가장 절감할 때는 사랑에 대한 그들의 거리감이다. 특히 요시다 슈이치 소설에 등장하는 사랑은 뭐랄까. 사랑이라고 이름붙이기 직전의 그 무엇이다. 사랑이라기보다는 약간의 동정과 호기심과 공감, 이해 그런 감정들이 얽혀있다.

 

상대에게 한발짝 다가가지만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는 그 어중한 경계. 그런 면에서 '미숙과 성숙의 사이, 혹은 무관계와 관계의 중간 지점을 멋지게 그려냈다'는 가쿠타 미쓰요(일본소설가)의 평은 적절하다.

 

가슴이 조금 더 훈훈해지는 <일요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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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들> ⓒ 북스토리

<일요일들> ⓒ 북스토리

요시다 슈이치의 또 하나의 소설. <일요일들>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제목이 끌려서 보았던 이 소설은 '일요일'을 소재로 도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잔잔하게 그린 연작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 중에서 가장 아끼는 작품.

 

'일요일의 운세' '일요일의 엘리베이터' '일요일의 피해자' '일요일의 남자들' '일요일들' 다섯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에는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여자는 두 번 떠난다>와 마찬가지로 특별히 잘나거나 못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보통사람들이 등장한다. 인간관계가 서툴러서, 친구와 우정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런 인물들이다.

 

매 작품의 마지막에는 엄마를 찾는 어린 형제가 항상 등장한다. 그리고 작품의 주인공들은 그 형제를 돕는다. 초밥을 사준다거나 길을 알려준다든가 하며 어린형제를 돕는다. 

 

가장 좋았던 작품은 '일요일의 남자들'이었다. 아내가 죽은 후, 홀로 지내던 초로의 한 남성이 도쿄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도쿄 아들네 집에 묵게 된다.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행동 하나, 일상적으로 나누는 말 한마디로 이 부자는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아내를 잃고 쓸쓸해하는 초로의 아버지와 오래전 죽은 애인을 잊지 못하는 아들 사이에 오가는 교감이 따뜻하게 가슴으로 전해오는 작품이다. 

 

제일 마지막 작품인 '일요일들'은 앞의 네 작품의 끝마다 등장했던 어린 형제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이 형제는 가출한 어머니를 찾아 도쿄로 왔는데 시설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한밤중에 센터에서 도망친 것. 한편, 남자친구로부터 상습폭력에 시달려오던 '노리코'는 남자친구로부터 피해 온 자립지원센터에서 이 두 형제를 만나게 되고 그들 형제가 서로 헤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 두 형제는 노리코의 약속을 믿고 센터에 남는다. 

 

여기서 '일요일'은 상징적인 의미다. 도쿄라는 복잡하고 빠듯한 공간에서 잠시 뒤돌아보고 자신을 한번 생각해보는 그런 정신적인 여백이다.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길을 잃고 헤매는 두 어린 형제에게 길을 알려줄 수 있는 따뜻함과 여유.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캐릭터, 연작소설 형식이라는 측면에서 닮은 듯하지만 느낌만은 사뭇 다른 이 두 작품을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이왕이면 <일요일들>을 더 나중에 읽으면 여운이 더 오래가지 않을까 싶다.

2008.10.04 19:27 ⓒ 2008 OhmyNews

여자는 두 번 떠난다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Media2.0(미디어 2.0), 2008


#일본소설 #요시다 슈이치 #일요일들 #여자는 두 번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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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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