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스트레스, '탈'로 털어버리자

[2008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탈 뒤에 숨은 해학과 풍자

등록 2008.10.05 11:42수정 2008.10.05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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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령탈춤의 시작부분 ⓒ 하가영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탈춤공연장. 4일, 영양원놀음이 끝나고 30분 정도의 휴식을 가진 뒤, 오후 2시부터 강령탈춤(중요무형문화재 제 34호)이 시작되었다. 리허설 때부터 공연장은 관객들로 가득 차, 객석이 아닌 계단마저 관객들이 콩나물처럼 들어차는 광경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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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탕을 나눠주는 말뚝이 ⓒ 하가영


두 명의 말뚝이가 등장해 관객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 흥을 돋우며, 제 5과장 양반마당을 패러디 한 강령탈춤이 시작된다. 맏양반, 둘째양반, 재물대감, 도령, 말뚝이(2명)의 등장인물들이 양반의 도리와 풍자를 노래하며 춤을 추는데, 재미 면에서는 재물대감과 말뚝이가 단연 으뜸이다. 재물대감은 일명 개다리춤이라 불리는 우스꽝스런 춤을 추며 각설이타령과 비슷한 리듬으로 양반의 도리를 노래해 웃음을 자아내며, 두 명의 말뚝이는 왔다갔다하며 양반을 조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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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반마당 등장인물 탈사진 ⓒ 하가영


공연 내내 무대배경 위에 걸려진 각 등장인물들의 탈 사진을 보면, 같은 지역인 봉산탈춤의 탈에 비해 사실적인 인물 탈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배우들이 탈을 쓰지 않고 분장으로 이를 대신하여 아쉬운 마음을 자아냈다. 또 공연시간이 30분 남짓 밖에 되지 않아 부족한 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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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하제일탈 공연알림(미소짓는 외국인) ⓒ 하가영


강령탈춤이 감사패를 수여받으며 막을 내리고 한 시간 뒤인 오후 3시 30분부터 천하제일탈이 시작되었다. 천하제일탈 공연은 1부 '탈춤과 만나다'와 2부 '연희자와 만나다'로 구성되어 있다. 공연 시작 전 LED화면에 비친 외국인들은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했다. 1부는 봉산탈춤의 '목중춤'과 고성오광대의 '문둥북춤', 그리고 하회별신굿의 '이매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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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운 채로 시작되는 목중춤 ⓒ 하가영


목중춤의 목중은 절에서 군불이나 때는 젊은 중을 이른다. 누운 채로 춤을 추며 시작하는 앞부분은 지루한 감이 있지만, 곧이어 신세한탄조의 대사 후 장단에 맞추어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추는 춤사위는 앞의 지루함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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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둥북춤의 춤사위 ⓒ 하가영


문둥북춤은 대립전을 쓰고 누더기를 걸친 문둥병자가 나와 비틀거리며 춤사위를 시작한다. 앞선 목중춤과 달리 무대사에 느리고 우울한 느낌의 문둥북춤은,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문둥환자의 병을 알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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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을 들고 경쾌해진 문둥북춤 ⓒ 하가영


본 공연 문둥병자의 연기는 매우 탁월했는데, 북과 채를 집어들기 위해 손을 덜덜 떨다 못 집어드는 장면은 실로 관객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후 몇 춤사위를 더 추고 끝내 북을 집어들었을 때는,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나왔다. 또한 북을 든 이후의 춤은 이전에 비해 훨씬 경쾌하여 이전의 우울한 느낌을 지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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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스꽝스러운 이매의 등장 ⓒ 하가영


이어진 이매춤은 모두에게 낯익은 이매가 특유의 바보같은 걸음걸이로 등장하여, 등장부터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구수한 안동사투리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져 이매춤이 진행되는 내내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2부는 '노부부 이야기'와 '성형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두 이야기 모두 탈춤이라는 전통적 요소에 현대적인 사회이슈를 유머러스하게 곁들여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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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부부를 협박하는 사채업자 ⓒ 하가영


노부부 이야기는 현대사회에서 대두되고 있는 사채사업 문제를, 노부부를 통해 해학적으로 풀어나간다. 아들이 빌린 500만원이 1억으로 불어나는 것과 빚을 갚으려면 죽음을 택하라고 말하는 사채업자의 말 등, 현 대한민국이 당면한 사회문제를 즐겁고도 신랄하게 꼬집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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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생긴 애인에게 성형을 권유하는 남자 ⓒ 하가영


성형 이야기는 현대의 외모지상주의를 꼬집고 있다. 예쁜 여자를 밝히는 남자친구의 요구대로 여자는 온 몸을 성형하여 미인이 되지만, 개성이 부재된 외모가 되고 만다는 내용으로, 모두들 같은 외모를 지향하는 현 추세를 잘 꼬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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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모닝 허도령' 시작 전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 ⓒ 하가영


극단 <큰들>의 '굿모닝 허도령'은 전체 5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대적인 요소가 매우 많이 가미되어 관객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공연 중의 하나로, 매일 한 번씩 공연을 가지며 그때마다 표가 매진된다고 한다. 집권층(사또)의 횡포와 힘을 합쳐 그에 이겨내는 국민(백성)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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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모닝 허도령'의 클라이막스 용춤 부분 ⓒ 하가영


가장 돋보였던 마당은 역시 클라이맥스인 '용탈' 마당으로, 마을 사람 모두가 합심하여 용탈을 쓰고 춤추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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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모닝 허도령'의 한 장면 ⓒ 하가영


'탈 났다', '탈 막자', '허도령의 탈', '수탈, 강탈, 겁탈', '용탈' 등 5마당으로 진행되는 본 공연에는 사또, 백성, 이방, 영의정 등 다양한 인물들이 다채로운 탈을 쓰고 나오며, 성황당과 우물, 세발자전거 등 상상을 뛰어넘는 입체적 소품들도 등장해 마당극의 재미를 더해 주고 있다. 또한, 관객들의 귀에 익숙한 현대적 음악을 자주 사용하여 고전적인 마당극의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

관객 이모(25, 인천시 계양구)씨는 "실컷 웃고 즐기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며 "이렇게 고전과 현대적 요소가 접목된 공연들이 많아진다면, 젊은 사람들도 매우 흥미롭게 축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탈춤공연장의 입장요금은 일반권 5000원으로, GS칼텍스 보너스카드 또는 인터넷 예매 등으로 할인 가능하다. 한 번 입장권을 끊으면 하루종일 이용이 가능하여 요금면에서 큰 부담은 없다. 신명나는 탈놀이판 속에 숨은 해학과 풍자를 통해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는 '탈' 만한 것이 없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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