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모양을 한 절구가 동전을 잔뜩 담은 채 작은 연못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이 연신 동전을 그 절구 안으로 던진다.
김학현
생각나는 데까지만 외워도 백담사계곡과 그 곁으로 났을 오솔길(지금은 널찍이 포장되어 버스가 쉴 사이 없이 드나드는 그 길)의 그림이 그려진다. 얼마나 힘든 발걸음이었을까.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하는 '님', 시 속의 그 '님'이 되어 백담사 경내를 둘러보았다.
모두가 조화와 단아함, 풍치와의 어울림 속에 너무 잘 어울리는데 딱 한 군데가 전혀 어울리지 않아 마음을 상하게 한다. 법당 바로 앞에 자리한 화엄실의 한 칸 방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은둔생활을 하던 곳이다. 안내문이 없었더라면 누가 그의 거처를 알기나 할까.
사찰 측은 친절하게도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사용하던 단칸방에 당시 사용하던 물건들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고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머물던 곳입니다'라고 친절하게 글씨까지 써 문 위에 붙여놓았다. 그 당시 찍은 사진들도 마루에 놓여있다. 그러고는 다시 마루 밑에 '올라가지 마세요!'라고 적어 놓았다.
그의 과거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해도 떠오르기 전에 군불로 땔 장작을 패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을 보며, 그렇게 초라하고 측은해 보일 수가 없다. 백담사는 아직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조금은 상한 맘으로 법당 처마 끝에 달린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법당 뒤쪽으로는 약수를 먹는 데가 있고 그 뒤로 연꽃모양을 한 절구가 동전을 잔뜩 담은 채 작은 연못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이 연신 동전을 그 절구 안으로 던진다. 들어가는 동전보다 물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 더 많다. 어린이 두 명이 샘물 옆에 놓인 동전을 슬쩍해 절구로 집어던진다. 뭐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은데 꾹 참았다.
경내를 벗어나 계곡으로 나오자 무수히 많은 돌탑들이 장관이다. 자신의 희망과 소원을 담아 한 돌 한 돌 쌓아올렸을 그네들, 참 정성이 지극하다. 돌탑의 의미를 모르는 내게는 산과 계곡과 사찰과 어우러지는 또 다른 풍경으로의 조화가 아름다울 뿐이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백담사계곡의 물소리는 나를 떠나지 않는다. 백담사에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여전히 떠나지 않는다. 만해 한용운보다 전두환 전 대통령 머물던 곳으로 통하는 백담사, 이젠 그 이름 지울 때가 되지 않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