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23) 본격화

[우리 말에 마음쓰기 453] ‘대형화되다’와 ‘커지다’

등록 2008.10.19 11:42수정 2008.10.1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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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대형화되다

 

..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비벼 주는 떡볶이에 길들여졌다면 신당동 떡볶이거리의 떡볶이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이곳은 그런 정겨움을 느끼기엔 이미 너무 대형화돼버렸다 ..  《김대홍-그 골목이 말을 걸다》(넥서스BOOKS,2008) 152쪽

 

 보기글 앞쪽을 보면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비벼 주는’ 떡볶이”라 하지만, 가운데쯤을 보면 “신당동 떡볶이거리‘의’ 떡볶이”라 합니다. 앞에서는 ‘-에서 비벼 주는’이고 뒤에서는 ‘-의’입니다. 뒤쪽 토씨 ‘-의’를 ‘에서 비벼 주는’으로 고치거나 덜어냅니다. ‘실망(失望)할지도’는 ‘씁쓸할지도’나 ‘아쉬움을 느낄지도’로 손보고, ‘정(情)겨움’은 ‘살가움’으로 손봅니다.

 

 ┌ 너무 대형화돼 버렸다

 │

 │→ 너무 커져 버렸다

 │→ 너무 커지고 말았다

 │→ 너무 크고 말았다

 └ …

 

 이 자리에서는 한자말 ‘대형(大型)’을 살려서 “너무 대형이 되어 버렸다”로 적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국어사전에서 ‘대형’ 뜻풀이를 찾아보면, “같은 종류의 사물 가운데 큰 규격이나 규모. ‘큰’으로 순화.”처럼 적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자말 ‘대형’도, 또 이 한자말에 ‘-化’를 붙인 말도 우리가 쓸 만하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런 한자말과 한문 투를 덜어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딱히 국어사전을 들추지 않더라도, 작으면 작다고 하고 크면 크다고 할 일입니다. 작아지면 작아진다고 하고 커지면 커진다고 할 노릇입니다. 줄어들면 줄어든다고 하고 늘어나면 늘어난다고 하면 넉넉해요. 그뿐입니다.

 

 

ㄴ. 본격화되다

 

.. 한국 정치에서 절차적 민주주의 발전은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본격화되었고, 김대중 시대에 공고화되었다고 봐야 한다 ..  《심상정-당당한 아름다움》(레디앙,2008) 135쪽

 

 “절차적 민주주의 발전”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발전”이라고 적지 않아서 반갑지만, ‘절차적(節次的)’이라는 낱말이 얄궂으니 “절차 민주주의 발전”이나 “절차를 지키는 민주주의 발전”으로 다듬어 줍니다. 또는 “법에 따른 민주주의 발전”으로 다듬습니다. ‘공고화(鞏固化)되었다고’는 ‘단단해졌다고’나 ‘무르익었다고’나 ‘굳어졌다고’나 ‘뿌리를 내렸다고’로 손질합니다.

 

 ┌ 본격화(本格化) : 본격적으로 함

 │   - 두 나라의 분쟁이 본격화되었다 / 제도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

 │     좌우익의 사상 투쟁이 본격화되었다 / 경제 개발이 본격화하다 /

 │     내전이 본격화하다 / 활동을 본격화하다 / 연구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

 ├ 6월 항쟁을 거치면서 본격화되었고

 │→ 6월 항쟁을 거치면서 이루어졌고

 │→ 6월 항쟁을 거치면서 퍼져나갔고

 │→ 6월 항쟁을 거치면서 자리를 잡았고

 │→ 6월 항재을 거치면서 열매를 맺었고

 │→ 6월 항재을 거치면서 꽃을 피웠고

 └ …

 

 ‘본격(本格)’이란 “근본에 맞는 올바른 격식이나 규격”을 가리키고, ‘본격적’은 “제 궤도에 올라 제격에 맞게 적극적인”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본격’에 ‘-化’를 붙인 ‘본격화’는 “본격적으로 함”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낱말뜻을 헤아리는 동안, 어떤 모습과 뜻을 나타내거나 보여주려는지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 두 나라의 분쟁이 본격화되었다 → 두 나라는 더 크게 다투게 되었다

 ├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 움직임이 도드라지고

 ├ 사상 투쟁이 본격회되었다 → 사상 투쟁이 불꽃을 튀었다

 ├ 경제 개발이 본격화하다 → 경제 개발이 제자리를 잡아 가다

 ├ 내전이 본격화하다 → 내전이 커져 가다 / 내전이 퍼져 가다

 ├ 활동을 본격화하다 → 좀더 부지런히 뛰다 / 슬슬 움직이려고 하다

 └ 연구를 본격화하기로 → 연구에 마음을 쏟기로 / 연구를 북돋우기로

 

 말이란 무언가 하고픈 이야기가 있어서 하고, 글이란 무언가 들려주고 싶어서 씁니다. 말이란 자기가 하고픈 이야기를 알뜰히 잘 들려주어야 하고, 글이란 자기가 쓰고픈 이야기를 알맞게 잘 담아내야 합니다. 무루둥술하다거나 흐리멍덩하면, 말하는 보람이나 글쓰는 보람은 사라집니다. 사그라들거나 묻힙니다.

 

 어떤 일이 제자리를 잡는다면 제자리를 잡는다고 이야기해야 알맞습니다. 어떤 일이 퍼져나간다고 할 때에는 퍼져나간다고 적어야 걸맞습니다. 어떤 일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면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해야 올바르고, 어떤 일에 차츰 마음을 쏟거나 기울인다면 마음을 쏟거나 기울인다고 적바림해야 잘 맞아떨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8.10.19 11:42ⓒ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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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한자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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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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