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추억으로 오늘을 위로 받다 

중학교 총동문회 체육대회에서 그리운 얼굴들 만나고 오다

등록 2008.10.26 15:50수정 2008.10.2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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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가을이 물씬 묻어나는 고서중학교 들어가는 길.

가을이 물씬 묻어나는 고서중학교 들어가는 길. ⓒ 오승준

가을이 물씬 묻어나는 고서중학교 들어가는 길. ⓒ 오승준

며칠 전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한 통의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중학교 동창생이자, 모교 총동창회장인 공석준 박사의 전화였다.

 

“얼굴 좀 보세. 자네를 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네. 25일 총동문회 체육대회에 꼭 나오시게. 기다리고 있겠네”.

 

중학교 교정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친구들의 얼굴도 하나 둘씩 영상필름처럼 지나갔다. 가슴이 뜨거웠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 중학교가 있는 담양고서는 지금은 광주에서 승용차로 불과 20여분 거리에 있지만, 그 당시에는 무지무지하게 멀었다. 버스가 지나가면, 뿌연 먼지를 온통 몸에 뒤집어쓰면서도 학교에 다닌다는 설렘과 흥분으로 피곤도 잊은 채 무거운 책보자기 등에 메고 학교에 다니던 순수와 동심의 까까머리 학창시절.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계획된 별도의 일정이 있었지만, 중학교 동창회 모임에 한 번도 나가지 못한 미안함과 30년여 이상 만나 보지 못했던 친구와 후배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고향 주변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초등학교 모임을 통해 간간히 만났지만) 내 어린날 추억의 그리운 고서중학교를 찾았다.

 

a  71년에 세워진 필자가 다닌 고서중학교 건물 전경.

71년에 세워진 필자가 다닌 고서중학교 건물 전경. ⓒ 오승준

71년에 세워진 필자가 다닌 고서중학교 건물 전경. ⓒ 오승준

호남고속국도, 국가지원도 60호선이 관통하고 무등산권, 시가문화권, 국립5·18민주묘지권 등 주요관광지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는 고서중학교는 1971년 개교하여 그동안 35회, 5000여명의 학생들를 배출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안타깝게도 전교생이 90여명 정도 밖에되지 않는다고 한다.

 

학교 입구에 들어서니, 거대한 몸집의 은행나무와 바닥에 누워있는 노오란 은행잎들이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물씬 안겨주며, 참으로 오랜만에 집 찾아온 이방인을 따뜻하게 맞이한다.

 

학교는 아직도 여전히 자연의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교실, 꽃밭, 동상, 운동장, 나무, 철봉 등 낯익은 물상들이 그리움의 모정으로 다가와 가슴을 사정없이 쳤다.

 

“친구야 반갑다. 정말 오랜만이다. 너 광주에 있다며.”

“야! 너 승준이 아니냐? 나 일중이야.”

 

정감어린 친구들의 목소리와 포옹에 얼굴이 뜨거웠졌다. 모교 가까이 살면서도 모교와 친구들에 대해 무관심했던 죄의식이 태산처럼 크게 느껴져 친구들 보기가 민망했다.

 

a  학창시절 추억의 향수 불러일으키는  교실 복도.

학창시절 추억의 향수 불러일으키는 교실 복도. ⓒ 오승준

학창시절 추억의 향수 불러일으키는 교실 복도. ⓒ 오승준

고서중학교 총동문회(회장 공석준)는 3년 전에 발족했다. 기별 모임은 있었으나, 제1기 모임(74년 졸업생)이 늦게 발족되면서 전체적으로 총동문회도 구성도 늦어졌다. 3년 전에 제1기 회장인 공석준 박사가 전체 회장으로 추대되면서 총동문회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모교 장학금 전달, 발전기금 조성, 경로잔치, 기별 모임과 총동문회의 네크웍 구축, 총동문 명단 파악 및 연명부 제작 등 총동문회는 비록 짧은 2년의 기간이었지만, 많은 일을 추진했다. 이번 체육대회는 총동문회의 큰 잔치로 2회 행사인 셈.

 

몸과 마음이 훌쩍 커 버린 전국 각지에서 모인 친구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축구와 족구도 하고, 맛있는 고향 음식과 동동주를 안주삼아 정담도 나누고, 그동안 서로 살아온 삶의 이야기 주고 받으며, 동심의 순수로 즐겁고 건강한 하루 넉넉하게 만끽했다.

 

a  고서중학교 총동문회 제2회 체육대회 행사장면.

고서중학교 총동문회 제2회 체육대회 행사장면. ⓒ 오승준

고서중학교 총동문회 제2회 체육대회 행사장면. ⓒ 오승준

사람들은 많고 많은 만남과 모임 속에서 산다. 그러나 초·중등학교 동창생만큼 순수하고 인간적이고, 편안한 대상도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초·중등학교 모임이 가장 활발하고, 생명력이 강한지도 모르겠다.

 

중년 아저씨, 아줌마들은 초·중등학교 동창회에 나와(시골에서는 사실 초등학교 동창생 대부분이 중학교 동창생이기도 하여 구분의 의미가 별로 없다) 자신들이 가장 순수하고 행복했던 추억의 공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며, 그동안 정신없이 앞만 보며 살아온 자신들의 삶을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새로운 자아실현의 길을 꿈꾸게 된다.

 

의사, 교수, 농어민 후계자, 택시기사, 공무원, 사장, 학원장, 회사원,  주부, 자영업 운영 등 각자 다른 명함을 내밀지만, 그 명함으로 서로를 평가하지 않고 그저 ‘유난히 코를 많이 흘리고 머리가 큰 대가분수’ ‘항상 학교에 늦은 지각대장’ ‘도시락에 쌀밥과 계란을 싸오던 부자집 아이’ ‘여학생들 놀려 먹거나 고무줄 짜르기 등의 놀이 방해치는 개구쟁이’ 등 그때 그 시절의 특징으로만 기억하고 그대로 인정해준다.

 

a  선·후배가 한판 붙은 축구경기 장면.

선·후배가 한판 붙은 축구경기 장면. ⓒ 오승준

선·후배가 한판 붙은 축구경기 장면. ⓒ 오승준

이곳에서는 배운 사람이나 못배운 사람이나, 잘난 사람이나 못난사람이나 모두 똑같은 친구일 뿐이다. 국립병원 원장이자 의학박사인 공석준 회장은 “친구들 중 일부는 손자까지 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어도 학창시절 개구쟁이들처럼 초·중등학교 교실로 돌아가는 것 같다”면서 “동창생들과 만나 실컷 웃고 떠들고 나면 강한 엔돌핀 주사를 맞은 듯 가슴이 뭉클하고, 마음이 편안해 진다”고 말했다.

 

바로 어제 들은 이름은 기억나지 않고, 당장 몇 시간 전에 주차해 둔 자동차가 어디에 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30~40년 전의 일들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만 하고 서로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퍼즐 맞추듯 전하며, 타임머신을 타고 옛 시절로 돌아가는 즐거움을 이 나이에 어디에서 찾으랴.

 

친구 도시락 몰래 꺼내먹고 시치미 뚝 때던 일, 소풍갔을 때 영자의 고무신 감췄던 일, 남의 집 수박밭에 들어가 수박 서리하던 일, 증암천 냇가에서 미역감고 가재 잡던 일…. 그때 그 시절의 무용담들이 밤늦도록 쏟아진다. 

 

신기한 것은 아무리 주름이 늘어나고 다른 직업을 갖고 있어도 원형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때 새침했던 영희는 지금도 새침하고, 그때 이뻤던 숙현과 미정은 여전히 이쁘고, 그때 입담 좋던 양회와 재현은 여전히 청산유수고…. 딱지치기나 고무줄놀이 대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면서도, 사이다가  아닌 동동주나 맥주를 마시면서도 초·중등학교 동창회에서만은 모두가 남학생, 여학생이 된다.

 

a  점심시간. 기별로 모여 맛있는 음식 함께 먹으며, 그리운 정담 실컷 나눈다.

점심시간. 기별로 모여 맛있는 음식 함께 먹으며, 그리운 정담 실컷 나눈다. ⓒ 오승준

점심시간. 기별로 모여 맛있는 음식 함께 먹으며, 그리운 정담 실컷 나눈다. ⓒ 오승준

또 다른 특징은 남학생들보다 여학생들이 더욱 적극적이라는 것. 아이들 뒷바라지나 남편의 눈치에서도 자유로워진 주부들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남자 동창인 남성을 만날 수 있고, 다른 모임과 달리 잘살거나 못생겼거나 차별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서로의 얼굴에서 주름살을 발견하고 안쓰러워하면서도 같이 손잡고 늙어갈 친구가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면서….

 

서울에서 살고 있는 최옥희 동창은 “동창생끼리는 서로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하는데 이 나이에 또래 남자가 내 이름을 불러준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며 “동창생들을 만나면, 성장환경도 비슷비슷하고 나이 들어서도 큰 차이가 없어 편하다”고 말했다.

 

해놓은 것은 없는데 할 일은 태산 같은 50대 초반의 나이, 거울을 보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의 얼굴을 발견하는 시기,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아직도 갈 길이 아득한 나이. 지치고 외로워서 쉬고 싶어도 가족들때문에 제대로 쉴 여유도 없는 40~50대들에게 초·중등학교 동창회는 고향의 약수터나 삶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새삼스럽게 박세현 시인의 ‘너무 많이 속고 살았어’라는 시가 생각나는 뜻깊고 행복한 하루였다.

 

a  그때 그시절 그 철봉.

그때 그시절 그 철봉. ⓒ 오승준

그때 그시절 그 철봉. ⓒ 오승준
2008.10.26 15:50ⓒ 2008 OhmyNews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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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자인 공무원으로서, 또 문학을 사랑하는 시인과 불우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또 다른 삶의 즐거움으로 알고 사는 청소년선도위원으로서 지역발전과 이웃을 위한 사랑나눔과 아름다운 일들을 찾아 알리고 싶어 기자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우리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아기자기한 일, 시정소식, 미담사례, 자원봉사 활동, 체험사례 등 밝고 가치있는 기사들을 취재하여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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