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토막 난 쌈짓돈 펀드 "오마이 갓!"

개미 아줌마, 폭락장에 당당히 맞서다

등록 2008.10.28 09:32수정 2008.10.2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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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중 주가 1000선이 붕괴된 24일 결국 주가를 회복하지 못한 채 코스피 지수가 938.75로 마감되었다. 오후 3시 마감된 직후 카메라 기자들이 시황판앞에서 취재를 하고 있다.
장중 주가 1000선이 붕괴된 24일 결국 주가를 회복하지 못한 채 코스피 지수가 938.75로 마감되었다. 오후 3시 마감된 직후 카메라 기자들이 시황판앞에서 취재를 하고 있다.권우성
장중 주가 1000선이 붕괴된 24일 결국 주가를 회복하지 못한 채 코스피 지수가 938.75로 마감되었다. 오후 3시 마감된 직후 카메라 기자들이 시황판앞에서 취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아이고 내 펀드, 완전 쪽박이네."

"말도 마라. 남편 몰래 돈 불리는 재미에 살았는데 이제 무슨 재미로 사냐?"

"이래 빠질 줄 누가 알았겠노? 우짜겠노. 손해 보고 환매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내는 고마 펀드랑 생사를 함께 할란다."

"난 정말 잠이 안 온다니까. 한창 오를 때 환매해서 가지고 있던 목돈까지 합쳐가지고 몰빵했는데 이게 뭐야.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다니까."

 

증시 1000P 붕괴에 투자자들 한숨소리뿐

 

종합주가지수가 1000포인트 아래로 쭈~욱 빠져 버리던 지난 10월 24일(종가 938.75). 모처럼 만난 동네 친구들의 모임이 한숨소리로 가득하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펀드든 돈 되는 것에는 무엇이든 '빠꼼하다'는 그녀들도 요즘 같은 폭락장에는 떨어지는 칼날을 손으로 막을 뿐 달리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IMF 구제금융 위기를 지나며 내공이며 굳은살이며 맷집이며 쌓을 만한 것들은 모두 다 쌓았다는 아줌마들이지만 정치인도 경제인도 심지어 증권사나 금융기관의 애널리스트들마저도 오늘날과 같은 국내외적인 금융불안사태에 대해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니다"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었기에 큰 위기감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러니 그야말로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격이 되어버린 것이다.

 

재태크계의 난다 긴다 하는 '여사님'들의 펀드와 주식이 이 지경일진데 친구 따라 강남 가고, 남이 장에 가니 지게 지고 장에 가는 격으로 따라다니며 흉내를 내던 나의 펀드야 오죽하겠는가.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내 펀드계좌에 접속해 수익률을 살펴보았다.

 

 차이나 펀드 수익률표
차이나 펀드 수익률표국민은행
차이나 펀드 수익률표 ⓒ 국민은행

 

한때 40% 수익률 '오마이펀드'마저 반토막

 

아니나 다를까 내 펀드의 수익률표는 하한가로 시퍼렇게 얻어맞은 증권사 주가지수표보다 더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뜨아아~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반·토·막….'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벌렁거린다. 가지고 있던 국내펀드가 반토막 났고 뒤늦게 가입한 중국펀드는 60% 정도의 손실을 입고 있으니 실제로는 반토막도 더 잘려 나간 셈이다.

 

2004년 1월 주가지수 800선에서 시작한 나의 펀드.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고 받은 2000원, 만원, 2만원, 3만원을 모아 만든 펀드를 '오마이펀드'라고 지칭하며 애지중지했었다.

 

잘나가던 한때, 그러니까 오마이펀드의 훌륭한 수익률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던 2007년 7월(주가지수 1900선)만 해도 환매예상금액이 1000만원을 훌쩍, 40% 이상의 수익률을 올려주던 나의 보물단지였던 것이다.

 

솔직히 그때는 남편이 주는 기쁨보다 펀드가 주는 기쁨이 더 컸다. 나도 조만간에 재테크 달인이라고 소문난 친구 '강남 박여사' 못지않은 커다란 딴 주머니를 차고 남편에게 용돈을 찔러주면서 큰소리 칠 날이 머지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1년 만에 내 꿈은 저만치 멀어져 버렸다. 한때 기쁨에 잠 못 들게 했던 보물단지 '오마이 펀드'가 이제는 불안에 잠 못 들게 하는 애물단지 '오마이갓 펀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생각하면 아깝고도 아까운, 피 같고 살 같은 내 돈이지만 그렇다고 반토막 난 지금 환매를 해서 손실을 현실화할 수도 없는 노릇. 어쩌면 좋을까 고민 고민하다가 매달 들어가는 자동이체를 해지하기로 했다. 죽어가는 환자에게 무의미한 수혈은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20년 투자 내공이 주는 가르침은 '기다림'

 

"이럴 때일수록 현금을 보유해야 돼. IMF 때 돈 번 사람들 봐. 전부 현금 보유하고 있다가 좋은 투자거리가 나오면 그때 들어간 사람들이거든."

"그래. 맞아. 위기가 기회라고 지금이 IMF 이후 10년 만에 오는 기회일 줄 누가 알겠어."

"신문 1면에 주식투자 실패로 자살했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하면 바닥이라며? IMF 때도 그랬잖아. 하지만 너무 안개속이다. 워렌 버핏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냅둬. 이리저리 가지고 요동치다 그나마도 날려버리지 말고 이렇게 불확실한 시기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버는 거야. 아줌마 특징이 뭐니. 일단 내주머니에 돈이 들어오면 절대로 내놓지 않는 거잖아. 은근과 끈기. 기다림… 알지?"

 

없어도 되는 여윳돈으로 투자를 했다는 아줌마들이지만 세상에 없어도 되는 돈은 없는 법. 그들의 가슴도 내 가슴 못지않게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또 하나 아는 것은 이보다 더한 폭락이 올지라도 그녀들은 결코 쉽게 포기하거나 낙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20년간의 내공이 그녀들에게 가르쳐준 것은 기다림이었던 것이다. 나 역시 그녀들의 법칙을 따르기로 했다. 무리하게 손절매에 나서서 푼돈을 손에 쥐고 가슴을 치느니 미래의 가치에 투자했다는 생각으로 당분간은 잊고 살기로 했다.

 

'잊자. 잊자. 오마이 펀드고 오마이갓 주식이고 다 잊어 버리고 살아보는 거야. 당분간은 경제뉴스도 듣지 말고 경제신문도 보지 말자. 아주 잊어 버리고 사는 거야. 그러다보면 기회가 오겠지….'

 

하지만 아침이 되자 나도 모르게 주식시장 소식을 찾게 되는 나. 아무래도 당분간은 빠져나오기 힘든 불치병에 걸렸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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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주가지수 #중국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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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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