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31살 16살 완득이에 배우다

[冊] '킥킥킥' 대며 읽은 장편소설 <완득이>

등록 2008.10.28 09:48수정 2008.10.2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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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 김려령 (지은이) / 창비

국내 장편소설을 읽으면서(그렇다고 책을 많이 읽어온 것도 아니다.) 몰래 책상 서랍에 만화책을 넣고 보다 그만 자신도 모르게 "킥킥킥" 거린 것처럼 웃어보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지난주 화요일 도서실에서 빌려 주말께 읽은 김려령의 장편소설 <완득이> 때문이었습니다. 책 제목부터 범상치 않을뿐더러 겉표지와 속지 간간히 보이는 만화가 변기현의 삽화 또한 <완득이>가 소설이 아니라 만화가 아닐까란 착각마저 들게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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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과 함께 빌린 소설 <완득이> ⓒ 이장연


특히 '대학입시'란 살인적이고 무모한 경쟁을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거나 경험 할 대한민국 중.고등학생이라면(요즘에는 유치원생.초등학생들도 일제고사다 뭐다 해서 입시경쟁에 가세했다는데...) 한번쯤 당해봤을, 오로지 대학을 위한 공부뿐인 답답한 학교생활과 학생들을 차별하고 족치는 '담탱'과의 신경전, 숨소리조차 내기 힘든 야간자율학습(야자) 같은 것들은 만화 <정글고>처럼 <완득이>에게 쉽게 몰입.공감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주인공 도완득(이름부터 남다르다...)의 출생 비밀과 가족관계, 가정형편 그리고 소심해 보이면서도 성깔있고 나이에 비해 철이 들어 생각도 깊은 완득이 주변의 각양각색의 낯선 캐릭터들 또한 지루하고 볼 것 없는 사랑놀이를 되새김질 하는 여타의 소설들과 다른 매력, 에너지를 발산하는데 큰 기여를 해주었고요. 결국 무지개처럼 다른 색깔과 모습을 가진 캐릭터들은 만화처럼 어울려 한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습니다.  

주인공 완득이에게 거머리처럼 착 달라붙은 땔래야 뗄 수 없는, 완득이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완득이를 괴롭히고 놀리는 것을 낙으로 삼는, 그렇지만 왠지 끌리는 별난 '담탱' 똥주와 카바레에서 호객행위를 하다 카바레가 세금문제 때문에 콜라텍으로 변하면서 일자리를 잃고 지방 5일장에서 장사를 하는 난쟁이 아버지.

그 아버지로부터 차차차, 자이브, 디스코를 배운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삼촌. '담탱'을 죽여달라 기도하는 교회에서 매번 갑작스레 완득이 앞에 나타나 "자매님"이라 부르던 이주노동자(완득이가 킥복싱에 입문하는 계기가 된다.). 젖을 떼자마자 카바레에서 낯선 여자들과 춤추는 아버지 곁을 떠난, 베트남에서 시집 온 완득이의 어머니.

완득이를 두고 '담탱' 똥주와 매번 부딪히던 앞집 아저씨. 사춘기 완득이가 교회에서 첫키스를 얼떨결에 감행한, 서울대 진학과 종군기자가 꿈인 반친구 윤하. 완득이에게 킥복싱은 조폭 싸움이 아니라고 가르쳐 준 관장과 쌈질로 학교짱을 먹으려는 중학생들. 그리고 완득이를 자극하는, 어머니가 학교운영위원인 똘아이 혁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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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완득이>, 소설을 읽으면서 "킥킥킥" 거리기는 처음인듯... ⓒ 이장연


소설 <완득이>의 거칠지만 감칠맛 나는 말투와 거침없는 캐릭터들뿐만 아니라, 각각의 에피소드 또한 어느 하나 지루하지 않았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아니 이만큼 재미있으면서 부조리하고 모순적인 사회를 노골적으로 고발.풍자하는 교훈적인 소설은 흔치 않을 듯 싶었습니다. 글 꽤나 쓴다는 유명한 비평가나 독설가의 그것보다 완득이(작가)의 독백이나 생각들이 훨씬 머리와 가슴 깊이 파고 들었으니까요.

입시경쟁에 내몰린 학생과 학교현실을 꼬집는가 싶더니 어느새 이주노동자를 불법체류자로 만들어 노동착취를 하는 악덕기업주와 국제결혼의 허상을 비꼬든 듯 하더니, 별 쓰잘머리 없는 교회를 욕하는 듯 싶더니, 그 속에서 애틋한 가족의 만남과 사춘기의 순수한 열정과 사랑도 쉴새없이 곳곳에 녹여냈으니 말입니다. 소설 <완득이>의 가장 큰 모티브라고 생각되는 사회 약자와 소수자(장애인)의 삶과 차별의 문제를 재치있는 풀어낸 것은 기성언론사 기자들의 '머'같은 뉴스들보다 몇 만배 뛰어나 보였습니다.  

암튼 완득이를 다 읽고 난 뒤 그 느낌과 떠오른 생각들을 블로그에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하는데, 31살이나 된 제 자신이 16살 완득이 만큼(내가 완득이 나이였을 때를 생각하니...) 철도 들지 않았고 생각도 깊지 않고 자신이 정작 하고픈 일도 잘 모르는, 어리버리하고 냉정한 사춘기를 아직도 겪고 있는건 아닌지 싶었습니다. 가족과 사랑을 대하는 태도나 감정만 봐도 완득이만도 못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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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찮은 시작, '대체 이 삽화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자꾸 궁금하게 만들었다. ⓒ 소설 <완득이>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완득이 - 제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김려령 지음,
창비, 2008


#완득이 #장편소설 #사랑 #가족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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