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사람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안성기·정호승·고도원·김창완·홍세화·박원순 외 <네가 있어 다행이야>

등록 2008.11.03 11:05수정 2008.11.0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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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겉그림 〈네가 있어 다행이야〉
책 겉그림〈네가 있어 다행이야〉창해
▲ 책 겉그림 〈네가 있어 다행이야〉 ⓒ 창해

시골 후배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말을 트고 지내는 가까운 친구 녀석이 있습니다. 목사인 녀석이 둘째 아이를 낳기 전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태속 아이의 심장에 혹이 생겼으니 수술을 해야만 한다고 알려 왔습니다. 수술비도 만만치 않거니와, 수술한 후에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장애아가 될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녀석은 그때 울먹이면서 제게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왜 하나님은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 걸까. 수술을 받는 게 도리인가. 아이가 태어나면 고통을 안고 살아갈 텐데 차라리 목숨을 끊어주는 게 낫지 않겠는가. 나로서는 뭐라 해 줄 말이 없어서 녀석의 울음 섞인 말에 그저 "응"이라 대꾸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불쑥 그런 말이 떠 올라 한 마디 건네 주었습니다. 어쩌면 너니까 그런 고통을 허락한 것 아니겠느냐. 그것이 어떤 위로가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약간의 장애를 겪고 있는 딸아이를 지금까지도 희망차게 키우고 있습니다.

 

안성기·정호승·고도원·김창완·홍세화·박원순 외 여러 사람이 쓴 <네가 있어 다행이야>는 인생의 좌절이라는 터널을 통과한 사람들의 희망 이야기로서 읽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살아갈 용기를 안겨 줍니다. 물론 아직도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현재 진행형의 고통을 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고통 속에서 행복을 놓치지 않는 이들의 모습도 담고 있습니다.

 

"세상 어디엔가 아픔을 겪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이렇듯 자기 가슴 속에 숨겨 두었던 끊어질 듯했던 고통의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다면 한 줄기 빛이 되지 않을까요. 그런 배경에서 이 책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이 속에는 스스로 삶을 개척한 아름다운 고백도 있고 좌충우돌하며 일궈 낸 용감한 성공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삶은 소중하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아서 오늘을 볼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우리에겐 아직 움켜잡아야 할 희망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머리말)

 

국민배우 안성기씨는 영화계에 몸담고 있었던 아버지 덕에 다섯 살 때부터 아역배우의 길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쓰라린 고통의 세월이 있었으니, ROTC 장교로 전역한 이후 백수로 지낸 2년의 세월이 그것이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이미 혼인해 가정을 꾸린 친구들도 있었지만 자신은 그때까지도 부모님께 용돈을 타 써야 할 처지였으니 집에 있어도 있는 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프랑스 문화원에 다니면서 예술 영화들을 본 것들, 영어 공부도 할 겸 네 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것들은 지금까지도 영화 전반을 보는 능력을 키워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감독과 작품까지도 논할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까닭에 그는 인기를 좇기보다는 신뢰받는 배우가 되기 위해 주어진 모든 현장에 최선을 다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과정이 곧 최상의 결과임을 믿고 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유명해진 고도원씨도 연세대 대학신문의 편집국장 시절, 유신시대의 '긴급조치 9호'로 제적을 당하는가 하면, 교도소로 강제징집 당하는 고통스런 터널을 거처야 했고, 제대를 하고서도 졸업장이 없어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가 하면, 어렵사리 들어가 일했던 <뿌리깊은나무> 잡지가 신군부의 지시로 강제 폐간이 되자 또다시 백수가 되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런 고통의 경험들이 지금은 더없이 좋은 불쏘시개가 되어 있다고 하니, 불행을 희망으로 읽어내는 그의 해석을 크나큰 자산이지 않나 싶습니다.

 

여섯 살 때 양다리를 잃은 이후, 초등학교 전교생을 통틀어 장애인은 혼자 밖에 없어서 쉬는 시간이면 바퀴 달린 의자를 타고 다니는 자신을 구경하려 온통 장사진을 치던 아이들,  그래서 쉬는 시간이 죽기보다 싫었다던 박대운씨는 휠체어로 유럽 5개국 2002킬로미터를 횡단했으며, 한·일 국토 종단 4000킬로미터를 횡단했고, 현재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한다고 합니다. 그가 그런 일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되는 시선을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나를 버리지 않으면 어느 곳에든 함께 하는 것들이 있다'라는 도종환 님의 시처럼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에서 절망이란 있을 수 없다. 99번의 실패로 절망하기보다는 100번째 도전을 준비하는 자세가 우리의 인생을 더 값지게 하지 않을까!" (190쪽)

 

이 책을 읽노라니 문뜩 올 6월에 교회를 창립한 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게 되었습니다. 큰 기대감에 부풀어 마천동 남한산성 자락 아래에 교회를 시작하였는데, 방향도 목적도 분명치 못하다 보니, 그저 동네 곳곳에 즐비한 수많은 교회들이 위압감으로 작용했고, 당연히 사람 채우기에만 급급한 현실적인 모습으로 추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 어리숙한 나를 믿고 함께해 주는 아내와 나를 아빠로 의지하며 따르는 아이들 셋이 있다는 것, 그리고 주일이면 다른 곳 마다하지 않고 함께 예배하기 위해 찾아오는 세 사람이 있다는 것,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소중한 보석들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소중함을 모른 채 멀리 있는 것들만 바라보며 살았던 지난 날의 삶이 얼마나 어리석었던 것일까요….

2008.11.03 11:05ⓒ 2008 OhmyNews

네가 있어 다행이야 - 삶의 멘토가 된 이들의 가슴 따뜻한 희망 에세이

고도원 외 지음, 이원태 그림,
창해, 2008


#박대운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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