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출근을 서두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주머니 안에 있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담임을 하면서 경험한 바, 아침에 걸러 온 전화 대부분이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제 시간에 학교에 등교할 수 없다는 학부모나 아이들의 전화였다.
아니나 다를까 걸려 온 전화는 우리 반 한 남학생에게서 온 전화였다. 녀석은 잠에서 덜 깬 듯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선생님, 저 오늘 등교가 늦을 겁니다. 지금 여기가 병원이거든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니?"
지난밤 갑자기 배가 아파 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고 하였다. 그리고 진찰이 끝나는 대로 등교를 하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내심 며칠 남지 않은 수능시험으로 인한 신경성 장염일 것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녀석의 등교시간이 늦어졌다. 오전 시간이 지났음에도 녀석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휴대전화에 찍힌 번호로 전화를 해보았으나 응답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즉시 연락을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3년 내내 단 한 번도 지각과 결석이 없었기에 담임인 나의 불안은 더욱 커져만 갔다.
5교시 수업이 끝날 무렵 녀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녀석은 진찰 결과를 내게 말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그것이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녀석은 잠깐의 휴지(休止)를 끝내고 나서 말을 이었다.
"선생님, 저 2주 동안 입원해야 한대요. 그런데 수능시험 어떡해요?"
순간 내 머릿속엔 녀석이 아프다는 사실보다 며칠 남지 않은 수능 일(13일)이 먼저 떠올랐다. 녀석 또한 자신의 병보다 수능 시험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더 안타까워하는 듯했다. 그리고 녀석은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꼭 시험을 볼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내게 보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녀석은 입시 때문에 진작 돌보아야 할 자신의 건강관리를 소홀히 했음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우리 학급 32명 중 유일하게 수시에 원서를 쓰지 않은 녀석이었다. 몇 번이고 수시모집 지원을 권유해 보았으나 전형료가 아깝다며 수능시험을 보고 난 뒤 정시모집에 지원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만에 하나라도 수능 시험을 치르지 못할 경우, 녀석은 본의 아니게 올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녀석과 통화를 끝내고 난 뒤, 만약에 벌어질 사태를 대비하여 교육청에 전화하여 녀석이 시험을 치를 수 있는 방법 모두를 알아보았다. 알아본 결과, 녀석의 딱한 사정을 헤아려 줄 만한 대책은 없었다. 결국, 녀석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능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그리고 입원 이후, 병이 호전되면 수능 당일 날 잠깐 외출하여 시험을 볼 수 있는 것이 그나마 최상책이었다.
그날 저녁, 알아본 내용 모두를 녀석에게 말해 주었다. 대학에 가려면 꼭 수능 시험에 응시해야 한다는 말에 녀석은 충격을 받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담임으로서 어떤 방법을 제시해주지 못한 데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혹시라도 병이 악화되어 시험을 보지 못할 경우, 녀석이 실의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녀석의 병이 호전되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 퇴근길에는 녀석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나 다녀와야겠다. 그런데 녀석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생각나지 않는다. 녀석이 자리를 훌훌 털어내고 일어날 수 있는 말로 무엇이 좋을까. 녀석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용기와 자신감일 진대. 아무튼, 지금까지 최선을 다한 녀석이기에 시험 당일에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시험을 치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2008.11.04 18:32 | ⓒ 2008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