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선 다른나라 국기 달면 안 된다고?

[자전거세계여행 칠레 - 아르헨티나4탄] 안데스를 넘다

등록 2008.11.05 11:38수정 2008.11.0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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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9월10일~13일, 자전거로 안데스를 넘어간 과정을 전합니다.

오전 7시 기상. 추위가 조금 감싸는 걸 느꼈지만 난로 덕분에 잘 잤다. 심야근무자들은 5~6인치 만한 DVD 플레이어로 영화를 보며 아침을 시작하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아래 사무실에 비자 받으러 갔더니 다행히 터널 위쪽에서 받는 거란다. 어제 이곳에서는 비자업무를 하지 않는다고 들었지만 확인이 필요했다. 다시 내려 오는 건 여러모로 번거로우니까.


어제는 그렇게 가팔라 보이던 오르막이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비자 받는 곳에서 상황을 보고 터널통과 시도를!' 조명도 환풍기도 없는 3km의 터널을 통과한다는 건 위험한 일일 수도 있지만, 사실 내리막이면 금방 통과하고 여기엔 차 오는 주기가 있어, 타이밍만 맞추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렌지 하나로 아침을 대신하고 오르막으로 향했다.

피로가 조금 덜 풀린 초췌한 얼굴의 필자 ⓒ 박정규


5km 정도 올라가자 터널이 나왔다. 그렇게도 길게만 느껴지던 칠레 땅, 1년 2개월 동안 조나단과 필자에게 결코 잊지 못할 시련을 안겨 주었던 안데스와의 이별장소가 바로 저 터널이다. 저기만 넘으면 이제 안데스는 졸업인 것이다.

관리 사무소 앞에 도착하니, 직원이 나왔다.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1톤 트럭 쪽으로 간다. 짐칸을 열더니 손짓한다.

"저 말고도 자전거 여행자가 많이 왔나요?"
"네, 요즘은 별로 없는데, 다 차 타고 넘어가요. 위험하거든요"

그의 안내로 인해 내가 세웠던 '터널통과작전'은 너무 쉽게 무산됐다.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 따라야 할 법이 있다면 따르는 게 좋다. 안전이 언제나 우선이기 때문이다. 터널  안에는 환풍기도 있고 조명 시설도 다 돼 있었지만 자전거가 안전하게 달릴만한 공간은 없어보였다. 


터널 가는 길 ⓒ 박정규


아르헨티나로 이어지는 터널 ⓒ 박정규


터널을 통과하자, 바로 아래 첫 번째 검문소에서 날 내려준다. 감사의 말을 전하고 유유히 검문소를 그냥 통과하려고 했는데, 검문소의 우람한 덩치의 군인이 조나단을 세운다.

"국기를 내리세요."
"네? 국기를 내리라고요?"

그는 조나단 뒤쪽의 게양대를 가리킨 후 말을 이었다.

"여기는 아르헨티나예요!"
"네?"
"다른 나라의 국기를 달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적은 처음입니다!"
기가 막힌다. 그는 자기 왼쪽 가슴을 주먹으로 두 번 두드리며 다시 한 번 자랑스럽게 말했다.

"여기는 아르헨티나예요!"
"그럼 저기 게양대에 있는 아르헨티나 국기 주세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만약에 안 내리면….(수갑 채우는 제스처를 보인다)"

'그래! 내리자 내려!' 모든 국기를 철수하자, 뭔가 확인하는 종이 같은 걸 챙겨준다. 종이를 받아들고 검문소의 시야를 벗어날 때, 오기가 생겼다. '이제 안보이겠지? 하하! 다시 달자! 잡을 테면 잡아봐라!' 대형 태극기와 핸들바용 태극기를 다시 달고 이민국 사무실까지 이어지는 15km 내리막으로!  

여기부터 아르헨티나! ⓒ 박정규


저기 보이는 곳이 이민국 사무실 건물이다. ⓒ 박정규


이민국으로 느껴지는 건물이 보인다. 입구의 군인에게 왼쪽 손바닥을 펴고 오른손 주먹으로 쾅쾅 몸짓 언어를 보내자, 고개를 끄덕인다. '으아!' 차량 행렬이 100대는 더 되어 보인다. 이거 그냥 기다리다가 밤을 세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번쩍하고 머리를
스치는 생각 하나. '조나단은 차가 아니다!' 차가 아니기에 차량 뒤에 설 이유도 없다.

거의 주차상태인 차량들 사이로 가볍게 미소 지으며 건물로 가는데 필자의 조금은 '얌체 같은 행동'과는 무관하게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전거를 타고가는 날 보며 촬영을 부탁하는 사람들,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 박수를 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 덕분에 '새치기'는 '환영회'로 바뀌었다.

안에 들어가니 차량 줄 서는 곳이 있었고, 관광버스 타고 온 사람들이 줄 서는 곳이 있었다. 조나단을 한 쪽에 주차하고, 사람들 뒤에 줄을 서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출국카드를 작성하지 않아서 난감한 표정을 지으니, 칠레직원이 알아서 작성 해주었고, 아르헨티나 직원은 3개월이 필요하다는 말에 쉽게 도장을 찍어 주었다. 생각해보니 자전거 여행자는 정말로 차량 뒤에 줄을 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마치 토끼와 거북이 경주처럼, 1시간도 되지 않아서 필자보다 늦게 도장을 받은 차들이 모두 추월해 갔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길 풍경 ⓒ 박정규


부에노스 앞으로 1216km 지점 ⓒ 박정규


약 90km를 달려 'Uspallata'라는 관광지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까지 오는 길은 대부분 내리막이었지만 오르막도 조금 있었다. 무엇보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뜨거운 태양과  '빵-빵- 빵빵빵-'하는 응원의 경적소리만 급하게 던지고 가는 차량들, 손 만 흔들며 가는 차량,
달리는 차에서 사진만 찍고 가는 이들, 안데스 넘은 시간만 물어보는 이들, 여행기간만
물어보는 이들, 경로만 물어보는 이들의 '반쪽 짜리 관심'은 마음을 더 흐리게 만들었다. 그 누구도 필자의 '이름'을 물어본 이는 없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질문만 던지고 필요한 사진만 찍고 가버렸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촬영을 부탁한 친구들 ⓒ 박정규


uspallata 가는 길 ⓒ 박정규


uspallata 가는 길 ⓒ 박정규


uspallata 가는 길 ⓒ 박정규


 
Uspallata에 도착 후 계속 갈지 오늘은 여기서 머물지를 대형 안내지도 세움 간판 앞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니콜라스가 다가왔다. 여행자이고 자신이 묶고 있는 숙소가 괜찮다는 말에 그를 따라갔다.

알고 보니 이 친구도 자전거 여행자였다. 5개월 일정으로 페루-리마-쿠스코-푸노-볼리비아 라파스-우유니(버스)-멘도사-칠레 산티아고-파타고니아-아르헨티나 부에노스(항공)-파리로 가는 일정을 계획 중이다.

기술대학교 졸업 후에 엔지니어로 2년 동안 일하다가 이번에 조금 길게 나왔다는 그는 휴가 때마다 2~3주씩 동남아 자전거 여행을 몇 번 하기도 했다. 캠핑하는 걸 좋아하지만 음식은 사 먹는 날이 더 많고 주로 아름다운 곳을 찾아 다닌다. 이 친구는 오늘 산에 자전거 타러 갔다 와서 배가 많이 고팠고, 나 역시 그에 못지 않기에 우리는 큰 맘 먹고 아사도를(쇠고기에 소금을 뿌려 숯불에 구운 아르헨티나의 전통요리) 먹으러 갔다.

멘도사 가는 길을 알리는 세움간판 ⓒ 박정규


이게 2인분이다.(약 3만원,작은 포도주한 병,음료수포함) ⓒ 박정규


하지만 너무 기대를 해서 그런지 기대 이하였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지도 않았고 조금 덜 익은 것 같기도 했지만 배가 고팠기에 손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2인에 작은 포도주와 음료수를 시켜서 각자 45페소를 냈다. 2인에 90페소 정도 하는 셈이다. 약 3만원. 확실히 고기가 싸기는 싸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다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유럽에도 다들 바쁘게 살아서 여행하기가 쉽지 않아."
"한국도 비슷해. 모르는 나라와 사람들을 두려워해서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안데스 넘어에는 길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봄을 기다리며 스러져가는 하얀 눈이 있었다. 뜨거운 태양이 있었다. 길 위의 생각들이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조나단과 내가 있었다. 안데스를 넘는 다는 것은 끝남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의미했다….   

프랑스 자전거 여행자 니콜라스 ⓒ 박정규


니콜라스 자전거 ⓒ 박정규


니콜라스 자전거 ⓒ 박정규


니콜라스 자전거 ⓒ 박정규


니콜라스 자전거 ⓒ 박정규


니콜라스 자전거 ⓒ 박정규


니콜라스 자전거 ⓒ 박정규



니콜라스 자전거 ⓒ 박정규


희망 여행 여행노트

1. 이동경로 : Potillo 위쪽 칠레 아두아나 사무실(세관) -> 아르헨티나, Uspallata
2. 주행기록
- 주행거리: 93.52km / 주행시간: 6시간 / 평균속도: 15.5km/h
3. 사용경비 : 60.5 PESOS ( 1U$ = 3 PESOS)
   점심식사: 12 + 3.5(스프라이트 500ml), 저녁: 45
4. 음식
아침 : 오렌지 2개 
점심 : 고기다진 거, 으깬 감자 , 빵2개, 콜라 1리터
저녁 : 아사도 
5. 숙소 : 호스텔
6. 신체 : 전체피로, 양 허벅지 근육통(중-중)왼쪽 종아리 근육통 여전함.
7. 위생 : 따뜻한 물로 샤워(깨끗해요~)
8. 길 정보 : 터널 통과 후 아르헨티나 검문소에서 국기게양을 금지함. 일단 철수하고 조금 내려가서 다시 게양할 것. 이민국에서는 자전거 여행자 줄 설 필요없이 바로 진입 후 맨 오른쪽 사람들 줄 뒤에 서서 칠레 출국 도장 먼저 받고, 다음 아르헨티나 입국도장 받으러 가면 됨. 3개월 필요하다고 미리 말할 것. 스키 연습장의 식당을 제외하고 uspallata 마을까지 80km 동안 도로변의 식당 없으나 중간 지점의 마을로 들어가면 식당 유. 레프팅 하는 곳도 중간에 몇 곳 있음(식당 유). 태양 제법 뜨거움.

덧붙이는 글 | 박정규 기자는 '희망을 찾고, 나누며, 만드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2006년 5월 16일,'희망을 찾아 떠나는 자전거 세계일주'를 시작하였습니다. 2009년 2월 28일까지 몽골여행, 중국종단, 인도여행, 미국횡단, 쿠바일주, 남미일주, 북아프리카 횡단을 계획 중입니다. 2008년 9월 현재 남미 여행 중입니다.

* 희망여행 카페: www.kyulang.net
* 희망여행 저서: 대한민국 청년 박정규의 <희망여행>


덧붙이는 글 박정규 기자는 '희망을 찾고, 나누며, 만드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2006년 5월 16일,'희망을 찾아 떠나는 자전거 세계일주'를 시작하였습니다. 2009년 2월 28일까지 몽골여행, 중국종단, 인도여행, 미국횡단, 쿠바일주, 남미일주, 북아프리카 횡단을 계획 중입니다. 2008년 9월 현재 남미 여행 중입니다.

* 희망여행 카페: www.kyulang.net
* 희망여행 저서: 대한민국 청년 박정규의 <희망여행>
#안데스 #칠레안데스 #아르헨티나 #희망여행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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