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그러할까. 눈을 돌려보자. 현재 정부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영국의 인근에는 핀란드가 있다. 핀란드는 고유한 민족과 언어, 오랜 식민 통치와 독립, 전쟁 경험, 그리고 짧은 시기에 이룩한 근대화 과정 등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와 유사하다.
그러나 핀란드에만 있는 특별한 것이 있다. 바로 '경쟁 없는 교육'이다. 집안에서는 '엄친딸(엄마 친구의 딸)'과,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사회에서는 월급으로 비교당하는 늘 누군가를 누르고 올라서야 인정받는 우리 사회에서는 잘 믿기지 않는 얘기다.
그럼에도 핀란드는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세계 최고의 학력임을 입증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PISA(OECD 국제학력조사) 결과에서 2000년, 2003년, 2006년 연속으로 공히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평준화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교육과정을 보장하며 두루 학력 상승을 유도한 핀란드의 수월성 교육이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핀란드에 경쟁이 없는 이유는 경쟁보다 협동이 더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자원이 적고 강대국에 둘러싸인 핀란드는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로 경제발전을 도모한다. 국민들은 각자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해 경제발전을 이뤄야한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 휴대전화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한 해 매출이 정부예산과 맞먹는 기업 '노키아'도 우수한 인적자원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따라서 핀란드 사람들은 우수한 일부를 위한 교육보다 모두가 차별 없이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을 제공해야 한다는 교육철학을 가진다. 그래서 핀란드에서는 경쟁으로 낭비될 사교육비 걱정이 없다. 핀란드는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한 재교육 비용, 궁극적인 국가경쟁력 저하 등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협동교육이 더 실용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협동교육을 중시하는 핀란드는 진학·취업을 위한 학교로 나뉘었던 학교제도와 우열반을 없애고 7세부터 16세까지 학생들을 선별하지 않는 종합교육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 일부에서 통용되는 '평준화=학력저하'라는 공식은 교육 연구자들에 의해 근거가 없는 것임이 밝혀졌다.
유바스큐라 대학의 바리야르뷔 교수를 비롯한 교육학 연구자들은 "핀란드의 종합학교가 터를 잡기 시작할 무렵의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연구 자료를 봤을 때 '학습레벨 등이 서로 다른 이질적인 학생집단'은 잘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데 반해, 잘하는 학생들의 성적은 집단 편성 방법에 상관없이 똑같았다. 이는 PISA의 데이터와 같은 결과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을 수준에 따라 나누지 않는 대신 '따로 또 같이' 개별화 교육을 시킨다. 획일적인 교육으로는 수준이 천차만별인 학생들의 학력을 동시에 높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핀란드는 학급당 평균 학생 수를 16~25명으로 유지해 학생 개개인이 소그룹 안에서 교사의 지도를 직접 받게 한다. 교사가 개개인을 지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 후, 팀티칭을 실시한 것이다.
<핀란드 교육의 성공>(후쿠타 세이지 지음)에서 소개된 스트론베리 초등학교의 경우 그룹별로 자신의 과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그 방식을 보면, 우선 학생들은 매주 교사와의 상담을 통해 과제의 목표를 정한 뒤 스스로 수집한 정보를 노트에 적어서 학교에 가져온다.
이렇게 정리한 노트는 실제 수업에서 교과서를 대신해 교재 역할을 하게 된다. 그룹에서 하나의 과제를 함께 수행하다 보면 아이들 사이에 학력 수준 차이가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팀원들끼리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대화하고 설득하는 능력과 높은 학습동기를 가지게 된다. 혼자만 잘난 '스타 플레이어'보다 두루 살피고 함께 나아가는 '팀 플레이'에 능한 사람이 우대받는 현대 기업의 풍토에 걸맞은 교육방법이다.
학생과 교사의 앙상블, '맞춤형' 교육
팀티칭과 소수의 반 편성으로도 일시적으로 학습이 뒤처지는 아이들은 보충지도를 받는다. 수업은 각 반에서 5~10여명 학생들을 모아 개별 지도한다. 보충지도를 받는다고 해서 수치심을 느끼는 학생은 없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나는 수학이 뒤떨어져 보충지도를 받지만 내 친구는 국어를 보충지도 받을 수 있다는 식이다.
누구나 똑같이 귀하되 각자의 능력과 소질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핀란드인의 보편적 인식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특수교육 대상에는 영재아도 포함된다. 학교는 학습능력이 특별히 뛰어난 학생들을 위해 수업 중 혹은 방과 후 지원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뛰어난 학생들이 불필요한 우월감을 갖게 되는 것을 경계하며, 부족한 학생들을 돕고 함께 끌어가도록 역할을 부여해 학습공동체 전체가 향상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렇듯 핀란드 교육은 한마디로 '맞춤형 교육'이다. 경쟁이 필요 없는 교육시스템이다. 모든 학생이 공통으로 따라야 할 '표준'이 없으니 평가도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기 어렵다. 따라서 핀란드에는 종합학교를 졸업하는 16세 전까지 다른 학생과 비교하기 위한 시험이 없다. 등수도 존재하지 않는다. 학생의 평가는 주로 수업 중에 생산된 학생의 과제수행, 프로젝트, 교사가 실시한 시험과 포트폴리오 등으로 다양하게 이뤄진다.
교사들은 매일 매일의 수업활동을 기록해 두었다가 학년 말에 종합적인 평가기록을 작성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수업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것은 초등학생 때부터 이뤄지는 '자기평가'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부터는 과목별로 평가결과가 기록되는데, 이 역시 절대 평가로 평점을 내며 교사의 꾸준한 관찰, 평가가 기본이다. 성적을 높이기 위해 '친구의 노트를 훔치는' 경쟁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겐 낯선 말이지만, '모든 평가는 선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학력 향상을 위한 것'이다.
'경쟁교육'을 수월성이라 강변하지 말라
우리 사회에서는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고교평준화'와 교육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수월성 교육'을 양극에 대치시킨다. 일부 보수언론매체는 '평준화=획일화'라는 프레임에 국민들을 가두고 '평준화 해체=수월성 보장'이라는 공식을 성립시켰다. 모든 학생이 학교를 평등하게 들어가는 것이 교육과정을 획일화시키고 이것이 수월성 교육에 장애가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정작 평준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우리 교육현실에서 평준화가 해체되면 입시경쟁이 가중되고 오히려 획일적 입시교육으로 교육의 다양성을 침해할 것이라는 점이다. 즉, '평준화 해체=획일화=수월성 해체'라는 것이다. 평준화와 수월성의 조화가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는 핀란드의 생생한 증언도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일제고사-학교정보공시제-고교선택제'를 통해 학교를 줄 세워 학부모에게 선택권을 주고, 국제중·자사고 등 다양한 귀족학교를 양성하면 학생 간, 학교 간 경쟁이 치열해져 수월성 교육이 실현되리라 주장한다.
평준화를 무너뜨려 경쟁을 수월성 교육의 주 무기로 삼자는 말이다. 그러나 앞서 영국을 통해 살펴봤듯이 경쟁은 공교육을 황폐화시키고 부모의 학벌 대물림을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는 수월성 교육을 영재 교육과 같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교육철학이 부재한 상태에서 무엇이든 세계 추세라면 가리지 않고 가져다 붙였기 때문이다.
세계의 선진기업들은 창의적 사고와 동료와의 협력을 통해 회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인재를 영입하기 원하고 있다. 이는 곧 기회의 평등에 기초한 협력과 맞춤식 교육으로 범재를 인재로 만드는 21세기적 수월성 교육과 맥을 같이 한다.
핀란드 교육은 이러한 수월성 교육을 제대로 적용한 하나의 모델이다. 우리는 우리의 실정에 맞게 교육개혁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경쟁 교육이 아닌 진정한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모두를 위한 수월성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http://www.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쓴 최민선 기자는 새사연 연구원입니다.
2008.11.05 11:43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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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교육'을 수월성으로 포장한 MB정부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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