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주의에 배가 아픈 까닭

미 대선 결과가 한국사회에 남긴 숙제들

등록 2008.11.06 11:20수정 2008.11.06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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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대 미국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바마 ⓒ 버락오바마닷컴

제44대 미국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바마 ⓒ 버락오바마닷컴

 

흑인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마음 껏 뽐내도 좋을 듯하다. 오늘의 감격은 비단 노예로 끌려와 모진 고난을 감수하며 자신들의 권리를 신장시켜온 흑인들 뿐 아니라, 오늘날 미국 사회를 이끌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지도자를 인종이나 편견에 구애 받지 않고 선택한 백인들에게도 자랑스런 일임이 분명할 테니, 이번 선거 결과는 인종이나 피부색을 초월한 미국민 모두의 승리인 것이다.

 

세계인의 한 사람으로서 또 한 단계 성숙한 민주주의를 과시한 미국 사회에 찬사를 보내고 오바마 당선자에게 축하 메시지를 건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솔직히 그럴 마음이 아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은근히 배가 아픈 기질을 다분히 가진 한국인인 까닭이다.

 

미국이나 국제사회 또는 민주주의 발전사적으로 이번 미국 대선은 여러가지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열망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미국과 한국의 격차를 실감한 날이니 좌절을 느꼈으며, 초선에 불과한 흑인 상원의원의 백악관 입성을 가능하게 하는 미국의 정치시스템을 우리의 그것과 비교하자니 절로 자조(自嘲)를 느꼈다.

 

오바마 당선... 그리고 한국사회에 남은 숙제들

 

사적인 감상은 이 쯤에서 접고 현실을 보자. 한미 동맹 강화를 경전처럼 되뇌며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무릅쓰고 부시의 패권주의와 아이덴티티를 시도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한미일 삼각 동맹을 주장하며 국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본 총리와 셔틀외교까지 복원시킨 이명박 정권의 외교 구상은 탈 패권주의와 북미 직접 대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오바마의 당선으로 당장에 벽에 부딛치게 되었다. 대북 압박을 위한 한미일 삼각 동맹 구상 중 가장 굳건한 축이 사실상 이탈한 상태니 우리의 향후 통일 및 대북 외교 정책은 초안부터 다시 작성해야 할 입장에 처한 것이다.

 

어제(5일) 청와대는 새삼스럽게 '한미 FTA 재협상은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협상의 연내 인준을 강행할 의사를 밝혔지만 '재협상은 없다'는 다짐이 오히려 공허하게 느껴진다. 자동차 부분의 재협상은 선거기간 내내 오바마가 반복해서 언급했었던 핫 이슈이다.

 

오바마가 재협상 요구를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전혀 밝히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의회까지 장악한 미 민주당 정권이 이명박 정권의 구상대로 미국이 재협상을 철회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또 다시 미국의 집요한 개방 압력에 시달리며 찬반 양론으로 극렬하게 대립하게 될 상황은 상상하기 조차 끔찍하다.

 

그래도 여기가 걱정의 끝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정치권이 여·야를 막론하고 오바마에 줄대기를 위한 인맥찾기에 골몰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니 한숨이 나온다. 인맥 라인에 줄대기는 비공식적인 접촉을 뜻할 것이다.

 

비공식 라인 이용하겠다? 득보다 실이 많을 것

 

사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기왕에 줄대기를 하려고 했다면 선거 전에 시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후보자란 신분은 아무리 압도적인 당선이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돌다리라도 두드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니까. 그런데 당선이 확정된 오바마 측에서 뭐가 아쉬워서 비공식 인맥 라인을 허용하겠는가? 여야를 막론하고 그 발상의 어리석음에 제발 정신차리라고 찬 물이라도 끼얹어 주고 싶다.

 

이 문제의 본질은 한미 현안을 인맥에 의해 어찌어찌해 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터무니 없다는 데 있다. 비단 오바마 정부 뿐 아니라 미국은 대체적으로 공사 구분이 명확한 사회이니 인맥을 이용하여 배후에서 미국을 움직여 보려는 시도 자체가 득보다 큰 상실을 겪게할 것이 분명하다.

 

또한 미국인들의 장사 수완은 우리보다 훨씬 심계가 깊다. 한 마디로 면전에서 웃으면서 뺨을 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편법으로 이득을 취하려 시도한다면 뒤통수를 맞기에 십상이다. 열길 물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이명박 정부라서 더욱 그렇다.

 

정말 상상하기조차 민망할 만큼 염려되는 일은 또 있다. 얼마 후 개최될 오바마의 취임식 때 한국 국회의원들이 때로 몰려가 워싱턴에서 임시 회의를 개최하는 불상사는 없었으면 한다. 오바마와 사진 한 컷 찍기 위해 국민의 혈세 낭비해 가면서 워싱턴 정가를 얼쩡대는 얼빠진 한국 정치인은 반드시 기억해 두자.

 

그들은 달러 초 강세 시대에도 불구하고 흥청망청 외화를 낭비하며 한편으론 나라 망신까지도 시키는 자들이니 이런 자들을 계속 방치해 두면 이 나라의 안위가 위태로워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11.06 11:20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선 #한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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