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에 대한 정보가 총 망라돼 있는 '엽서시 문학공모' 사이트
'엽서시 문학공모' 홈페이지 캡쳐
"15살의 겨울. 그 겨울의 기억 속엔 늘 그 골목이 있습니다. 밤마다 어두운 골목길에 쪼그려 앉아 서서히 작은 얼음조각상이 되어가던 그 쓰라린 기억. 하루도 거르지 않는 아버지의 술주정은 아버지가 잠에 곯아 떨어져서야 비로소 끝이 났습니다. 해서 날이면 날마다, 또 밤이면 밤마다 유령 울음소리 같은 겨울 찬바람에 진저리를 치며 아버지가 깊이, 아주 깊이 잠들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잠들기를 기다리는 동안 골목에 쪼그려 앉아 있을라치면, 슬픔보다는 분노가 앞섰습니다. 이웃집에서 새어 나오는 따스한 불빛들.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밝은 웃음소리들. '춥지. 우리는 이렇게 행복한데. 부럽지?' 그건 분명 악마의 이간질이었습니다. 따뜻한 이웃들과 저 사이를 이리저리 휘젓는 악마의 이간질은 분노의 태풍이 되어 저를 오들오들 떨게 만들었습니다. 이웃들의 평범한 일상은 그네들이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명예가 높아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만은 지극히 평범한 그 일상조차 누릴 수 없다는 것에 화가 났고 분노가 솟구쳤습니다. 15살. 모든 게 예민할 때이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시기와 질투가 앞설 수밖에 없는 그때. 저는 겨우 15살이었습니다. 부산 대신동 산복도로 바로 아래. 꼬불꼬불한 골목 양옆으로 성냥갑 같은 20여 가구가 다닥다닥 붙어 있던 곳. 집집마다 철창 같은 작은 창들이 무슨 숨구멍 마냥 뎅그마니 나 있던 그런 곳. 그 골목 맨 끝집에서 저는 그렇게 분노와 슬픔이 뒤범벅된 채 하루하루를 오들오들 떨며 15살의 나이를 살아내야 했습니다." 순간. 컴퓨터 자판 위로 뭔가 '툭' 하고 떨어졌다. 눈물이었다. 그 새벽 '그때 그 골목 끝집'이란 글 한 편을 다 끝내기까지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내가 쓴 글에 나는 그렇게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양문개폐형 대형 냉장고를 선물로 받았기 때문이다.
2004년. 당시 MBC 라디오의 <여성시대>라는 프로에 '추억의 백일장'이란 코너가 있었다. 매주 한 가지 주제를 놓고 백일장을 여는 것인데 상품이 만만치 않았다. 바로 양문개폐형 대형 냉장고였다. 당시 주부들로서는 꿈의 상품이요, 라디오 방송 상품치고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나는 '골목'이란 주제로 열린 그 백일장에서 '그때 그 골목 끝집'이란 글로 장원을 먹었고, 부상으로 양문개폐형 대형 냉장고를 받았다.
공모의 달인에게도 철칙은 있다 공모! 그런 것이었다. 스스로의 감동에 절로 따라오는 상품. 그것이 바로 공모의 매력이었다. 그런데 그 스스로의 감동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왜? 견물생심이란 말이 있던가. 공모전엔 반드시 상금이나 부상이 따르기 마련인데, 그 상금이나 부상에 눈독을 들이다 보면 진정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이 아닌 진실을 왜곡 또는 과장하는 부끄러운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수많은 공모전에 도전하며 내가 얻어낸 결론이다.
지난 몇 년 라디오방송을 비롯해 기업체공모전, 출판사공모전, 또 <오마이뉴스> 공모기사 등. 난 그것들과 참 찰떡궁합이었다. 그러나 그 찰떡궁합 이면에는 두 가지 철칙이 숨어 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필(feel)'이다. 공모전의 주제를 보는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짜릿한 전율이 느껴진다면 바로 '필'이 꽂힌 것이다. 이렇게 '필'이 꽂혀 쓴 글이 마침표를 찍을 때쯤 스스로의 만족에 가슴이 뻐근해진다면 당선은 백발백중이다.
두 번째 철칙은 자식 팔아 돈 벌지 않는 것이다. 즉, '견물생심'이란 네 글자에 절대적으로 초연하고자 노력했다. 더러 비웃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글 한 편 한 편을 자식과 같이 생각한다.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나가는 내 글 한 편 한 편을 자식처럼 애지중지한다. 그러니 아무리 상금에, 상품에 눈이 어두워도 자식 팔아 그것들과 맞바꿀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자식 같은 글 한편, 상품에 현혹되지 마라라디오방송에 한참 글을 쓸 당시. 오전 한나절을 MBC, KBS, SBS 방송3사를 넘나들며 귀는 라디오에, 눈은 프로그램 게시판 붙박이를 하다 보니 자연 단골(?)인사들도 파악하게 됐다. 나아가 몇몇은 서로 언니동생하며 방송에 대한 정보도 공유하고 수다로 스트레스도 푸는 아주 막역한 사이로까지 발전하게 됐다.
주부 대상 라디오 아침방송에 나오는 글은 다반사가 개개인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이다. 그렇다 보니 방송에 이름 몇 번만 나오다보면 그 집 사정쯤은 대충 짐작해 볼 수 있는 혜안이 생긴다. 거기다 몇몇 단골인사들과의 정보공유까지 하다보면 누가 진실 왜곡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더러 레이다망에 포착 될 때가 있다.
가장 큰 진실 왜곡은 바로 중복송고. 그 중복송고의 함정은 바로 상품이었다. 같은 글을 방송3사에 모두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보낸 글이 한 곳에서만 방송된다면 별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같은 글이 이 방송 저 방송을 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해당 프로그램 게시판은 불이 난다. 방송 나가기가 무섭게 '그 글은 언제 어떤 방송에 나온 글이다'라는 제보가 득달같이 이어진다.
또 단골 인사들과의 정보교류를 통해서도 그 사실은 신속하게 전달된다. 하물며 중복송고의 낙인이 찍힌 어떤 이들은 본인 이름 대신 가족들의 이름으로 글을 보내 방송을 타고 상품을 챙기는 아주 집요한 도전(?)을 하는 일도 더러 있었다. 이 모두가 상품의 함정 때문이며 더불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걸고 나가는 자신의 글에 대해 스스로 모독을 자행한 것이다.
내가 줄기차게 공모전에 나서는 까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