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한 첫 등산

등록 2008.11.08 19:27수정 2008.11.0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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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는 일을 정말 싫어한다. 군대 생활 중 하루에 400고지를 3~4번씩 올랐기 때문에 건강에 좋다는 어떤 말을 들어도 귀를 닫아 버렸다. 그러니 아이들과 함께 등산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다. 함께 공부하는 목사님들이 등산을 가잔다. 그것도 가족끼리. 다들 간다는데 나 혼자만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에게 등산간다고 하니 마음이 하늘을 찌를 듯이 좋아했다. 저리 좋아하는데 한 번쯤 산에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라 비가 오네, 내일(8일) 등산 가기 힘들겠다."
"아빠, 등산하고 비오는 것 하고 무슨 상관인데 비가 오면 못가요?"
"김막둥. 산은 흙과 돌이 많다. 요즘은 나뭇잎도 많이 떨어져 미끄럽다. 또 오르막이라 더 미끄럽지. 비오는 날 산에 안 가봤지. 아빠는 군대 있을 때 산에 많이 갔다. 얼마나 미끄럽는지 몰라."

"…! 아빠 우리 어떤 산에 가요?"

"와룡산."

 

막내는 아쉬움이 많은 모양이다. 비가 많이 와 등산이 취소되면 좋겠다는 은근한 마음이 생겼다. 정말 산은 싫었다. 하지만 하늘은 내 마음보다는 아이들 기다림과 설레임을 택했다. 아이들은 엄마가 만든 초밥, 사과, 바나나를 바리바리 챙겨 자기 가방에 챙겨넣기 바빴다.

 

먹구름 때문에 가을 하늘 본래 모습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 산은 콘크리트와 매연에 찌든 마음을 확 트이게 했다. 나무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매연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쾌했다. 산을 왜 싫어했는지 조금 후회되기 했다.

 

a  와룡산에 첫발을 아내와 딸이 내딛고 있다.

와룡산에 첫발을 아내와 딸이 내딛고 있다. ⓒ 김동수

와룡산에 첫발을 아내와 딸이 내딛고 있다. ⓒ 김동수

 

"너희들 천천히 가야지. 꼭대기까지는 멀다. 지금 빨리 가면 나중에 힘들어서 못 간다. 특히 김막둥 너 천천히 가라. 나중에 엄마에게 업혀가지 말고."
"아빠 알았어요. 천천히 가요."
"여보 이것봐, 나무 무더기가 있다. 등산로를 만든다고 나무를 베었나?"

 

a  등산로를 만들기 위해서 나무를 베어 냈는지 몰라도, 군데군데 베어진 나무 무더기가 있었다.

등산로를 만들기 위해서 나무를 베어 냈는지 몰라도, 군데군데 베어진 나무 무더기가 있었다. ⓒ 김동수

등산로를 만들기 위해서 나무를 베어 냈는지 몰라도, 군데군데 베어진 나무 무더기가 있었다. ⓒ 김동수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군대 생활 생각하지 말고, 뒷산이라도 자주 가야 될 것 같다. 정상까지 갈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와룡산은 경남 사천시에 있는 산으로 용이 누워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와룡산이라 부른다. 고향 동네에서 보면 돌 무더기가 비탈져 있다. 바위는 없고, 돌 무더기 비탈져 있는 모습은 신기하다. 어떤 사람들은 화산 폭발로 돌무더기 비탈이 생겼다고 하지만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다.

 

a  와룡산은 큰 바위보다는 넙적한 돌이 이렇게 비탈지게 되어 있다. 왜 이런 돌비탈이 생겼는지 잘 모르겠지만 신기한 현상이다.

와룡산은 큰 바위보다는 넙적한 돌이 이렇게 비탈지게 되어 있다. 왜 이런 돌비탈이 생겼는지 잘 모르겠지만 신기한 현상이다. ⓒ 김동수

와룡산은 큰 바위보다는 넙적한 돌이 이렇게 비탈지게 되어 있다. 왜 이런 돌비탈이 생겼는지 잘 모르겠지만 신기한 현상이다. ⓒ 김동수

a  돌비탈길을 아내와 막내, 큰 아이가 함께 오르고 있다.

돌비탈길을 아내와 막내, 큰 아이가 함께 오르고 있다. ⓒ 김동수

돌비탈길을 아내와 막내, 큰 아이가 함께 오르고 있다. ⓒ 김동수

 

남쪽에 있는 와룡산에도 단풍이 들었다. 설악산과 내장산보다는 못하지만 단풍은 아름다웠다. 특히 먹구름과 안개 때문에 단풍은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붉게 타 들어가는 단풍은 없지만 자연 그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은 사람이 만들 수 없는 색깔이다.

 

a  와룡산에 단풍이 들었다.

와룡산에 단풍이 들었다. ⓒ 김동수

와룡산에 단풍이 들었다. ⓒ 김동수

 

"엄마 힘들어요. 먹을 것 없어요?"

"아빠가 꼭대기에 가서 먹는다고 했잖아."

"엄마 그래도 배고파아요. 좀 먹으면 안 돼요?"

"물만 마셔."

 

산에서는 밥을 해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초밥을 조금 만들었다. 산 중턱에 오르자 아이들을 벌써 밥을 찾는다. 초밥을 만들어 왔지만 아무데서나 먹을 수 없기 때문에 함께 모여 먹기로 했는데 참지 못하고 밥을 먹자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물만 마시기로 했다.

 

a  산중턱에서 딸와 막내가 힘든지 먹을거리를 찾고 있다.

산중턱에서 딸와 막내가 힘든지 먹을거리를 찾고 있다. ⓒ 김동수

산중턱에서 딸와 막내가 힘든지 먹을거리를 찾고 있다. ⓒ 김동수

a  등산 중 물 한모금 생명이다. 막내가 물을 마시고 있다.

등산 중 물 한모금 생명이다. 막내가 물을 마시고 있다. ⓒ 김동수

등산 중 물 한모금 생명이다. 막내가 물을 마시고 있다. ⓒ 김동수

 

물 한 모금 마시자 아이들은 금방 생기가 돈다. 아빠와 엄마는 벌써 지쳤지만 물 한 모금 마시고 신나게 오른다. 딸 서헌이는 왜 지금까지 등산을 하지 않았는지 불만을 토로하는 것처럼 잘도 오른다.

 

"서헌이 힘들지 않아?"
"힘들지만 재미 있어요. 아까 돌비탈길 오르다가 발도 끼었어요?"

"다치지 않았어?"
"괜찮아요?"

 

a  아이들이 더 산을 더 잘 오른다. 아빠와 엄마는 힘들었지만 쉬지 않고 올르고 있다.

아이들이 더 산을 더 잘 오른다. 아빠와 엄마는 힘들었지만 쉬지 않고 올르고 있다. ⓒ 김동수

아이들이 더 산을 더 잘 오른다. 아빠와 엄마는 힘들었지만 쉬지 않고 올르고 있다. ⓒ 김동수

 

"야 철쭉이다. 철쭉!"

 

정말 철쭉이었다. 가을을 모르는 것있일까? 아니면 봄에 피었다가 아직도 지지 않고 그대로 꽃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일까? 단 한송이었다. 봄에 와룡산 철쭉은 굉장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입동을 하루 지난 날 철쭉을 볼 수 있다니.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한 겨울도 버틸 수 있을까?

 

a  정상에 철쭉이 아직도 있다.

정상에 철쭉이 아직도 있다. ⓒ 김동수

정상에 철쭉이 아직도 있다. ⓒ 김동수

 

드디어 정상이다. 799m, 민재봉. 800m에 1m 모자라지만 와룡산은 바다와 접해 있기 때문에 밑에서 보면 매우 높다. 쉽게 말하면 1m부터 오른다고 생각하면 된다. 민재봉에 소나무가 있었다. 모진 바람을 이겨내고 서 있는 모습은 왠지 소나무가 지닌 올곧음을 느꼈다.

 

a  정상에 자리 잡은 소나무 한 그루 얼마나 비바람을 이겨냈을까

정상에 자리 잡은 소나무 한 그루 얼마나 비바람을 이겨냈을까 ⓒ 김동수

정상에 자리 잡은 소나무 한 그루 얼마나 비바람을 이겨냈을까 ⓒ 김동수

산에 오르는 자 꼭대기에서 사진 한 번찍지 않으면 산을 오르지 않는 것과 같다는 생각에 가족이 찍었다. 온 가족이 함께 산에서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꼭대기에 오른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추워 내려가기 바빴지만.

 

a  드디어 정상이다. 799미터 밖에 안 되지만 와룡산이 바다와 접해 있기 때문에 매우 높은 산이다.

드디어 정상이다. 799미터 밖에 안 되지만 와룡산이 바다와 접해 있기 때문에 매우 높은 산이다. ⓒ 김동수

드디어 정상이다. 799미터 밖에 안 되지만 와룡산이 바다와 접해 있기 때문에 매우 높은 산이다. ⓒ 김동수

 

민재봉을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다시 오를 수 있을까?' 아이들은 말했다. "다시 오자고." 답을 주었다. "그러자고." 가족과 함께 산에 오르는 일이 이렇게 기쁠 줄은 처음 알았다. 그래 다시 오르자. 뒷산이라도.

2008.11.08 19:27ⓒ 2008 OhmyNews
#가족 등산 #와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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