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충돌해도 FTA 비준"... 한나라판 반미자주?

금융위기·오바마 변수 무시... '전략상 오류' 지적도

등록 2008.11.11 17:11수정 2008.11.1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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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 선비준.'

 

이것은 최근 '한미FTA'를 대하는 이명박 정부의 태도를 압축한 말이다. 민주당 등 야당과는 물론이고 심지어 최대 동맹국인 미국과도 한판 붙을 태세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등 여권은 연일 '국익을 위한 선 비준론'을 제기하며 야권을 압박하고 있다. 급기야 "상임위 상정 시기를 앞당겨 12일 공청회 개최 직후 상정하겠다"고 공표했다. 물론 홍준표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의 일부 인사들이 합의 처리 의사를 밝히긴 했지만 여권 내부의 강경기류를 헤아리면 이는 '레토릭'에 불과해 보인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등 여권은 연일 '국익을 위한 선비준론'을 제기하며 야권을 압박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23일 17대 국회 당시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

청와대와 한나라당 등 여권은 연일 '국익을 위한 선비준론'을 제기하며 야권을 압박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23일 17대 국회 당시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 ⓒ 남소연

청와대와 한나라당 등 여권은 연일 '국익을 위한 선비준론'을 제기하며 야권을 압박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23일 17대 국회 당시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 ⓒ 남소연

 

협상 추진 당사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상황 변했다"

 

여권은 "우리가 먼저 비준해야 유리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선 비준은 미국측 비준을 이끌어내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라는 얘기다.

 

황진하 한나라당 한미FTA T/F팀장은 10일 "우리가 비준동의 절차를 밟아가면 미국 내에서 의회에 빨리 비준하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다"며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을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같은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도 "국제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침체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 등 국익 차원에서 비준되어야 한다"며 "우리가 먼저 비준하는 것이 미국 측 비준을 이끌어내는 데 유리하다"고 거듭 '선비준론'을 폈다.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는 "'서두른다, 늦춘다' 차원이 아니라 국내정치 일정에 맞춰 비준을 추진할 책무가 정부에 있다"며 "한미간 심도있는 토론을 거쳐 정부가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올 정기국회 안에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추진해온 한미FTA 비준에는 지금의 두 가지 변수가 고려되지 않았다. 하나는 세계적 수준의 금융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오바마 당선으로 압축되는 미국의 정권교체이다.

 

이 두 가지 변수는 한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한미FTA 추진의 당사자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10일 "상황이 변했다"며 "먼저 비준을 할 것이 아니라 재협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설 정도다.  

 

금융위기 오고, 오바마 당선됐지만... 청와대 '마이웨이'

 

a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 남소연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 남소연

그런데도 여권은 막무가내로 '선 비준'만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의 태도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동관 대변인은 "재협상도 추가협상도 없다"며 "우리는 우리 의견만 얘기하면 된다"고 말한 것.

 

다소 오만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 대변인의 발언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있는 듯하다. 세계적 금융위기와 오바마의 당선 같은 중대변수에도 불구하고 나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더 나아갔다.

 

그는 "한미FTA 비준에 관한 한 반미자주노선이라도 걸어야 한다"는 듯한 전투적인 의지까지 내비쳤다. '한나라당표 자주노선'이라고 부를 만하다. 

 

홍 원내대표는 11일 "미국과 다소 충돌하더라도 (한미FTA 비준안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며 "오바마가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쥐어짤 수밖에 없을 텐데 우리는 국익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협상에 응하면) 4년간 오바마 정권에 끌려다닐 수 있다"며 "국익을 위해서는 미국과 충돌하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민주당은 4년간 반미자주노선을 걷던 세력"이라며 "지금의 민주당 입장은 자기 노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FTA를 적극 추진했다는 점을 '약한 고리'로 삼아 이를 야당 공격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내가 반미 아닌 대미 자주노선을 강조한 적이 있다"며 "우리가 10대 강국인데 미국이 우리 함부로 못한다"고도 했다.

 

홍 원내대표는 '만약 비준했다가 미국이 비준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언성을 높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건 미국 책임이다. 우리가 미국 상황까지 어떻게 책임지나? 그건 내정간섭이다."

 

특히 여권의 '선 비준론'은 진보 성향인 오바마 정부와의 기싸움 성격도 있다. 홍 원내대표도 이를 인정이라도 하듯 "FTA부터 눈치보면 4년간 일방적으로 우리가 양보만 해야 할지 모른다"며 "대북관계 등 사안이 얼마나 많냐"고 말했다.

 

여권이 한미FTA 협상 파기까지 각오하며 연일 선 비준론을 주창하고 나선 데에는 이런 배경도 작용하고 있다. 

 

 10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한미FTA 졸속체결 반대 비상시국회의 재결성을 위한 조찬 모임에 참석한 야당 의원들.

10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한미FTA 졸속체결 반대 비상시국회의 재결성을 위한 조찬 모임에 참석한 야당 의원들. ⓒ 연합뉴스 안정원

10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한미FTA 졸속체결 반대 비상시국회의 재결성을 위한 조찬 모임에 참석한 야당 의원들. ⓒ 연합뉴스 안정원

 

진보진영 "왜 서두르나? 추론하기조차 어렵다"

 

여러 가지 명백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여권이 선 비준을 서두르는 정확한 배경을 알아내기는 어렵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도 "여권이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추론하기조차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정희 의장은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해올 것이 명백하고 선 비준의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정부가 협상전략을 잘못 짠 것"이라며 "지난 쇠고기 협상 때처럼 전략상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장은 "오바마 행정부는 자동차업계나 노동조합의 의견을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재협상을 추진할 것"이라며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따라오라고 하는 것은 형식상 폭력적이고 실제론 이익이 없는 패착"이라고 꼬집었다.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는 "왜 여권이 이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하면서도 "다른 꼼수가 있다기보다는 그렇게 함으로써 재협상 요구를 비켜갈 수 있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라고 분석했다.

 

노 대표는 "비준하지 않은 채 재협상하는 것보다 이걸 먼저 비준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자동차 부분은 다른 방식의 협상으로 해결하려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즉 "한나라당이 과잉 자신감 때문에 자기논리 함정에 빠졌다"는 것.

 

"한나라당은 민주당에 이럴 것이다. '그동안 민주당이 적극 추진해온 협정 아니냐? 그런데 조기비준에 반대하는 것은 자기모순 아니냐?' 그런 식으로 한나라당이 논리에서 우위에 서 있고, 민주당이 앞뒤가 안맞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한나라당이 그 함정에 스스로 빠진 것 같다. 한나라당에게는 과잉 자신감이 있었다."

 

노 대표는 홍준표 원내대표의 '자주노선 발언'과 관련 "누가 쇠고기 협상을 했냐"고 꼬집은 뒤, "이럴 때를 대비해 쇠고기 협상 카드를 쥐고 있어야 했다"며 "재협상 요구를 막을 수 있는 카드를 대책없이 써버린 꼴"이라고 지적했다.

 

노 대표는 "그런데도 비준을 서둘러 재협상을 피하겠다고 하는 것은 마치 허공에 총을 한방 쏴놓고 빨래방망이로 호랑이를 잡겠다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현역 시절부터 한미FTA 협상에 비판적이었던 최재천 전 의원은 "'선비준론'은 이명박 대통령이 수출지향적인 70년대 경제패러다임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최 전 의원은 "선비준을 하더라도 미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현실적 실익이 없다"며 "'수출지향'과 '개방'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정책과 맞기 때문에 선비준을 고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 전 의원은 "오바마를 압박하려면 신정부가 들어선 내년 1월 이후에 비준을 해야 한다"며 "왜 부시 정부에서 선비준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2008.11.11 17:11ⓒ 2008 OhmyNews
#한미FTA #홍준표 #노회찬 #이정희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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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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