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눈으로 본 신비로운 '푸미폰' 국왕

'라온아띠' 태국이 태국에서 띄우는 편지 - ⑫

등록 2008.11.12 10:24수정 2008.11.1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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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푸미폰' 국왕이 태국의 지붕이라 불리는 '도이 인타논(Doi Intanon)'에 벌리고 있는 '왕실프로젝트(Royal Project)'. 화전을 일구고, 마약을 재배하는 고산족이 정착할 수 없는 기반이 없다고 생각한 왕은 정착 농업 지원 및 특수작물 개발 등으로 그들이 정착할 수 있게 만들었다.

'푸미폰' 국왕이 태국의 지붕이라 불리는 '도이 인타논(Doi Intanon)'에 벌리고 있는 '왕실프로젝트(Royal Project)'. 화전을 일구고, 마약을 재배하는 고산족이 정착할 수 없는 기반이 없다고 생각한 왕은 정착 농업 지원 및 특수작물 개발 등으로 그들이 정착할 수 있게 만들었다. ⓒ 고두환


태국의 '푸미폰' 국왕, '입헌군주국'의 왕, 표면적으론 실권을 휘두를 수 있는 힘이 없는 속칭 '빛 좋은 게살구'. 하지만 쿠테타를 일으킨 군인도 그의 의사표현이 없으면 뒷선으로 물러나야 하고, 수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던 '탁신'마저도 그의 말 한마디에 대꾸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도대체 그는 누구일까?

태국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푸미폰' 국왕

태국은 어딜 가나 '푸미폰' 국왕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사진은 어느 집이든 다 걸려있고, 거리에 간판으로 현수막으로 어디에나 걸려 있다. 해발 2000m에 있는 카렌족 마을에서도, 슈퍼마켓 하나 찾아보기 힘든 북부의 왕리앙 마을에서도, 하다못해 영화관 안에서도 '푸미폰' 국왕을 사진으로나마 만날 수 있다. 눈을 떠서부터 잘 때까지 만난다고 할까.

이에 대해 치앙마이 YMCA '요' 스텝은 말한다.

"태국에선 '왕'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경찰에 잡혀간다고. 그리고 영화관에서 '푸미폰' 국왕의 얼굴이 비치면 기립해야돼. 그렇지 않으면 역시 잡혀간다고. 몇 해 전에 한 외국인이 '푸미폰' 국왕의 얼굴이 담긴 간판에 낙서를 한 적이 있는데 잡혀갔다가 추방됐다고 하지? 그런데 이건 우리가 어거지로 하는게 아니라, 순수하게 우러나는 거라고. 종종 외국인은 이런 우리의 모습을 오해하곤 하지."

'이렇게 왕의 사진이 많으니, 그가 죽으면 사진 바꾸는 것도 일이겠다'라고 생각한 단순한 봉사자에겐 흥미로운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a  '피툰' 스텝의 손목에 항상 자리잡고 있는 'Long Live The King(왕께서 오래오래 사시길)'. 처음엔 나라에서 나눠준 줄 알았는데 개인이 돈주고 사는거라고 한다.

'피툰' 스텝의 손목에 항상 자리잡고 있는 'Long Live The King(왕께서 오래오래 사시길)'. 처음엔 나라에서 나눠준 줄 알았는데 개인이 돈주고 사는거라고 한다. ⓒ 고두환


다른 에피소드 하나. 태국에서 봉사활동을 진행하는 우리를 돌보는 치앙마이 YMCA '피툰' 스태프. 그의 손에는 주황색 고무밴드가 끼워져 있다. 처음에는 'YMCA 스태프들끼리 기념으로 찼거니' 생각했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팔에 같은 고무밴드가 끼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피툰'이 말했다.


"이것은 '푸미폰' 국왕이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태국 사람들이 차고 다니는 거야. '왕께서 오래오래 사시길(Long live the king)'이라고 적혀있지. 왕도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도 왕을 사랑한다고."

거기에 '푸미폰' 국왕이 태어난 월요일은 모두 '노란색' 티를 입고, 왕비가 태어난 금요일 모두 '파랑색' 티셔츠를 입는다. 티셔츠엔 왕을 상징하는 문양이 있다. 이 모든 것은 나라에서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돈을 내고 구입해야 한다.


왕실 프로젝트를 보면 그가 보인다!

"태국에는 수많은 왕실프로젝트(Royal Project) 진행되고 있어. 치앙마이의 경우 도이 캄 프로젝트(Doi Kham project)가 고산족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들이 때때로 재배했던 마약이 문제였지. 사실 고산족에게 마약은 생계와 관련된 부분이었거든. 그래서 우리의 왕은 농업을 정착시켜 그들이 자급자족하길 바랐어. 이것은 요즘 유기농 혹은 무농약 농산물의 재배로 연결되고 있지. 그리고 남는 농산물은 직거래 형태 치앙마이 도심에 공급하고 있어."

"그럼, 왕은 단순히 자금만 지원하는 건가요?"

"그럴 리가 있나(웃음)? 이런 프로젝트 진행 전에 왕은 카메라를 메고 가난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마을을 돌아다녀. 산과 평야를 직접 둘러보고, 국민들과 이야기를 진행하지. 과연 그들의 삶은 어떤지,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경청하는거야. 이 후에 프로젝트 진행 지역에 직접 운전을 해서 들어가곤하지. 찾아간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프로젝트의 당위성을 알릴 때도 있고, 주지사를 불러다가 교육을 시킨 뒤 주민들에게 전이되는 형태로 이해도를 진척시키곤 해."

이건 얼마 전 우리와 샨칸팽 YMCA(치앙마이 YMCA 소속 지역 YMCA) '피멈' 스텝과 이야기 한 내용이다. 실제 '푸미폰' 국왕은 집권 60년이 넘었는데, 수천 개의 왕실 프로젝트를 사제를 털어 진행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초점은 가난한 시골이나 열악한 고산지대의 삶의 질 개선, '환경' 및 '교육' 등의 '지속가능한 사회'를 고민한다는 점이다.

"사실 왕실프로젝트에 종사하는 태국 사람들은 많다. 우리 공무원이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자부심이 있다. 왕의 높은 뜻을 실천하며 태국을 위해서, 우리네 다음 세대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치앙라이의 매로라이 학교에서 함께 환경 캠프를 진행했던 왕실 환경 부서(Royal Forest Department)의 한 젊은 여성의 말이다. 사제를 털어 국민을 위한 수천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는 성군임에는 틀림없었다.

비대해진 왕권, 아둔한 이가 왕이 된다면?

"왕을 당연히 존경하지. 그 문제로 접근하면 할 말이 없어지지만, 그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야."

치앙마이 YMCA 봉사자였던 '네'의 말이다. 치앙마이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그녀는 지금까지 누구한테서도 듣지 못한 독특한 견해를 말했다.

"우리나라 왕은 힘이 너무 세. 전제군주(monarchy)라고 할까? 흡사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이 집중돼있는 것 같지. 그의 사후를 생각하면 가끔은 끔찍해. 그만큼 완벽하고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면…. 참 태국에선 이런 말을 함부로 하면 경찰에 잡혀갈 수도 있어!"

a  왕리앙 학교 교실 창문에 붙어있는 '푸미폰' 국왕과 왕비의 사진. 길거리에서도, 절에서도, 극장에서도, 심지어 달력에서도 우리는 언제든지 그를 만날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붙여놓는다.

왕리앙 학교 교실 창문에 붙어있는 '푸미폰' 국왕과 왕비의 사진. 길거리에서도, 절에서도, 극장에서도, 심지어 달력에서도 우리는 언제든지 그를 만날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붙여놓는다. ⓒ 고두환


이렇게 젊은 사람에게 왕에 대한 비판을 듣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말이 아직도 나의 뇌리를 스치곤 한다.

"정말 문제는 사람들은 지금의 왕세자를 존경하지 않는다는 점이야. 그리고 비판할 거리가 없는 왕이지만, 비판을 할 수가 없다는 거지.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결코 그를 무조건 존경하진 않는다고."

그 후 나는 이 나라의 대학생이나 식자층 일부와의 대화 속에서 비슷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문제는 현재의 왕이라기보단 이런 식으로 고착화되는 시스템에 있었다. 아마도 현명하지 못한 이나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이가 왕이 된다면 엄청난 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는 점을 염려하는 것 같았다.

"'푸미폰' 국왕이 죽는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이죠?"
"(한참 생각하다가) 매우 어려운 질문이네.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똑같이 해나갈 것이지."

"듣기로는 그의 건강이 별로 좋지 않다고 하던데, 그의 죽음 이후에 발생될 상황에 대해 뭔가 준비해야 되지 않을까요?"
"음… 그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일 수 있어. 하지만 우리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이는 치앙마이 YMCA 페차린 사무총장과의 대화내용이다. 확실한 것은 많은 이들이 '푸미폰' 국왕 죽음 이후를 걱정한다는 점이었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왕리앙 학교에 쏨싹 교장선생님은 우리와의 대화를 항상 즐기시곤 한다. 수업이 끝나고 맥주를 한 잔 마시는 날, 우연찮게 '푸미폰' 국왕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언제나 유쾌하는 웃는 그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내 분위기는 유쾌해졌지만 내가 그의 얼굴에서 감히 읽을 수 있었던 것 일종의 '경외심'이랄까?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왕을 상징하는 티셔츠를 입고 팔찌를 하고 집에있는 사진을 보며 기도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강제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태국인들도 왕이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그도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런지 모른다. 하지만 왕이기에 모든 것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 아닐까.

지금 벽 옆으로 보이는 '푸미폰' 국왕의 사진 옆에 떠오르는 수많은 태국인들, 태국은 신비로운 나라임엔 틀림없다.

덧붙이는 글 | KB-YMCA 라온아띠 해외봉사단 태국 팀은 2008년 8월부터 2009년 1월까지 태국 북부 일대에서 봉사활동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KB-YMCA 라온아띠 해외봉사단 태국 팀은 2008년 8월부터 2009년 1월까지 태국 북부 일대에서 봉사활동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라온아띠 #YMCA #KB #푸미폰 국왕 #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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