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누스가 성인? 이근안이 목사?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사나이'를 통해 기독교를 돌아보다

등록 2008.11.17 16:39수정 2008.11.1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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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사람의 행복과 자유를 위해 존재하지요. 사람이 종교에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는 너무 많은 말썽을 일으키고 있지요. 상식을 가진 보통 시민들에게는 너무나도 이상한 일인데, 개신교도들은 이성과 논리로 설명할 수 없을 때마다 ‘사람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둘러대지요. 그러면서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커다란 교회를 지어놓고 부와 권력을 누리는 목회자들은 자신들이 벌이는 짓을 이해하고 있을까요.

 

그들이 ‘자기들의 성’에서만 떵떵거린다면 안타까워도 뭐라고 말은 못하겠는데 사회 영역에서 예수를 팔아 반공을 소리치고 종교를 내세워 극우를 부추기고 있어 문제지요. 흔하게 볼 수 있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에 이어 최근 ‘목사 된 고문기술자’까지 한국 개신교가 보여주는 극단성은 사회에 커다란 해를 끼치고 있지요.

 

기독교는 세계 3대 종교이지만 독선 교리를 고집하며 타종교를 밀어 내치기 때문에 인류 역사에 수많은 상처와 갈등을 안겼지요. <소설 콘스탄티누스>(인물과 사상사. 2008)는 기독교의 정통 교리가 예수의 가르침과는 매우 다르며, 로마 황제의 정치 의도에 따라 크게 왜곡되었다는 점을 알리는 역사소설이지요. 사실에 기초하여 이야기를 꾸미고 해석한 실화소설이지요.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공인받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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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콘스탄티누스는 로마 황제의 정치 야심과 종교 권력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기독교가 국교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지요. ⓒ 인물과 사상사

소설 콘스탄티누스는 로마 황제의 정치 야심과 종교 권력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기독교가 국교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지요. ⓒ 인물과 사상사

때는 3세기 후반, 로마제국은 끝없는 쿠데타가 일어났고 백성들은 참상을 겪지요. 정국은 극도로 불안정해졌고 이민족의 침입과 강탈로 민생은 말할 수 없이 피폐해졌지요. 피의 악숙환을 끊으려고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293년 로마제국을 4명의 황제와 함께 공동통치를 시도하지요. 크게 4개의 자치권으로 나누어진 연방 국가의 형태를 띠게 되었지요.

 

305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은퇴함에 따라 로마제국은 다시 혼란에 빠지죠. 콘스탄티누스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이에 반발한 사람들이 나타나 여섯 황제나 생겨나게 되지요. 콘스탄티누스는 장인과 처남, 이복누이의 남편까지 죽이며 유일한 황제에 오르지요. 게다가 심성이 착한 친아들까지 죽이며 로마제국의 안정을 가져오려고 하네요.

 

303년 기독교 대탄압을 하는데 앞장선 콘스탄티누스였지만 권력을 쥐게 되자 기독교가 가진 양면성에 주목하지요. 지독한 독선과 편협성, 잔혹성도 있지만 로마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세련된 정신도 찾아낸 것이죠. 기독교는 통치자의 권위를 인정하는 종교이기에 제국의 구심점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하여 313년 밀라노 칙령을 공포하여 기독교를 공인하지요.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하였지요. 로마인을 하나로 묶어줄 새로운 국가이념이 필요했고 기독교로 제국의 안정과 평화를 꾀하려 했지요. 325년 니케아 공인회을 열어서 삼위일체설을 정통으로 삼고 반대파를 이단으로 단죄하여 자신의 정치 안정을 도모하지요. 기독교 교리를 보면 모든 권세는 하느님께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느님께서 세워준 것이기에 황제에게 도전하는 것은 곧 신에게 도전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죠.

 

예수를 신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기독교인들과 정치권력이 짬짜미를 하여 사람의 아들을 선언했던 예수를 300여년 만에 신으로 올리고 민중의 종교는 제국의 종교로 바뀌게 되었지요. 마치 고려시대에 불교를, 조선시대에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쓰듯이 기독교는 혼란한 로마제국의 터를 다지는 도구로 쓰이게 되네요.

 

기독교 교리가 잘못이 하나도 없는 신의 계시라고?

 

지은이 류상태는 소설 속 인물들의 입을 빌려 기독교의 여러 부분을 날카롭게 꼬집지요. 기독교인들의 신념과 예수의 가르침이 다르다고 자세하게 풀어 놓지요. 기독교는 경전과 전통, 교리에 집착하면서 예수를 배반하지요. 경전이란 것은 대부분 교회 입맛에 맞게 걸러지고 원치 않는 내용이 담긴 책은 위서로 간주되어 폐기되어왔지요. 처음부터 교회의 입김이 작용되었고 당시 기록물이 그렇듯 손으로 베껴 쓰다 보니 추가되거나 수정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경전에 신의 절대 계시가 담겨 있으며 교리 역시 오류가 없다고 믿고 있지요. 상식에 따른 궁금증을 불경하다고 여기고 ‘정신 노예’가 되어 경전에 기록된 내용을 합당하게 분석하거나 비판하는 일은 엄두를 못 내지요. 신이 사람으로 내려와서 사람으로 살았다가 다시 신으로 돌아갔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지요.

 

지은이는 예수와 교회를 하나로 묶어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하네요. 기독교를 포함해서 모든 종교의 교리는 틀이고 그릇일 뿐이죠. 예수는 그 틀이라는 수단에 매이지 말고 본질을 보라고 가르쳤지요. 그릇을 씹지 말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을 맛보고 완성되어 가는 참사람이 되라 했지요. 안타깝게 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가야만 예수를 만날 수 있다고 믿고 있지요.

 

죽기 전날 밤의 예수가 혼신의 힘을 다해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이야기한 뒤,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하지요. “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다, 너희가 내가 말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라며 사랑을 실천하라고 당부하지요. 자신에게 경배 드리고 ‘주님’으로 모시라고 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여 ‘친구’가 되라고 했지요.

 

그러나 현재 교회는 황당무계한 교리를 믿기만 하면 천국도 갈 수 있고 영원한 생명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요. 예수는 이제 사람들이 따라야 할 모범이 아니라 믿어야 할 대상이 되었지요. 그를 믿기만 하면 모든 죄가 용서되고 구원을 받으며 죽음에서 부활하여 영원히 살게 된다고 착각하고 있지요.

 

힘들고 어려운 일은 예수가 모두 대신해 주었다고 믿기만 하면 되지요. 현실은 어둡지만 저 하늘나라에서 주님 품에 안기면 그 모든 고통과 애곡과 눈물이 다시는 없는 세계로 누구나 들어갈 수 있게 되었지요.

 

진정한 믿음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믿음이란 것은 무엇일까요.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가서 헌금내고 찬송 부르다가 기독교 경전 몇 번 읽는 것이 믿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 누구도 진정한 믿음이 무엇이라고 해석하고 독점할 권리는 없겠지요. 다만 예수에 기대는 것만으로 충분하며 굳이 예수처럼 지극히 애를 쓰며 살지 않아도 된다고 꼬드기는 개신교가 제대로 믿고 있다고 느껴지지는 않네요.

 

예수가 원한 것은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이었지요. 예수는 2000년 전이나 되는 먼 과거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인물이고 실제로 살았는지 여부도 불확실하지요. 또한 예수는 한 사람이 아니라 한 흐름이며 한 인격체로서 예수는 여러 예수들이 한 인물로 합쳐져서 전승되었다는 주장도 있지요. 기독교 경전을 보여지는 다양한 예수의 성격과 특징들은 보기로 들면서 예수가 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하네요.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다고 지은이는 얘기하네요. 예수라는 개인이 없었을지 몰라도 예수운동은 분명히 있었고 게다가 예수정신은 너무나 또렷하다고. 예수가 오기 전부터 힘없고 가난한 백성을 붙들어주고 일으켜 세워주며 그들에게 희망을 부어주던 수많은 예언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벌인 예언자 운동이 예수 운동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하네요.

 

억누르고 고통 받는 자들에게 스스로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힘을 주는 것이 종교지요. 예수처럼 불의에 항거하고 참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 기독교 정신이겠지요. 기독교 정신을 잇지 못하고 엉망으로 세상을 살면서 천국티켓을 거머쥔 것처럼 믿고 사는 개신교인들의 모습은 누구 책임일까요. 신도들을 기복신앙에 수준에 머무르게 하고 국가가 주는 혜택은 꼬박꼬박 받아먹지만 시민으로서 의무는 소홀히 하는 목회자들이 자주 뉴스에 오르내리네요.

 

콘스탄티누스, 부시 그리고 이근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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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대상자들을 불법 감금·고문한 혐의로 수감됐던 이근안씨가 지난 2006년 11월 징역 7년의 형기를 마치고 경기도 여주교도소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영근

수사대상자들을 불법 감금·고문한 혐의로 수감됐던 이근안씨가 지난 2006년 11월 징역 7년의 형기를 마치고 경기도 여주교도소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영근

예수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종교조직체가 아니라 사람이고 삶이고 세상이었지요. 그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끝없는 갈등을 심는 종교라는 괴물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하고 싶어 했지요. 당시 유대 종교 조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던 지도자들은 예수를 불편하게 여겼고 그를 처형하는데 동조하지요.

 

돈을 훔치는 자는 작은 도둑이요, 생명을 훔치는 자는 큰 도둑이지요. 작은 도둑에는 민감하게 법의 칼날을 들이대면서 큰 도둑들에게는 꼬리를 내리기 일쑤였지요. 국가보안법을 씌워 선량한 어부를 간첩으로 몰아세우기는 쉽지만 ‘성전’을 외치며 중동 사람들의 생명을 훔치는 부시에게 저항하기는 어렵지요. 가난한 자를 돕고 힘을 준다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 ‘폭탄 세례’를 퍼부으며 중동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고 있지요.

 

대충 살아도 마지막에 믿는 척하면 구원해주겠다는 종교보다 삶을 떳떳하게 살도록 힘을 주는 종교가 되어야겠지요. 수많은 사람을 고문하던 이근안씨가 늙어서 목사 이근안으로 변신하였다는 소식은 충격이지요. 그가 지난날을 뉘우치고 조용하게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면 다행이지요. 다만 아직 피해자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목사가 되어 당당하게 용서 받았다고 설교하는 일은 말도 안 되지요.

 

피바람을 일으켜 ‘신의 사나이’가 된 콘스탄티누스가 죽기 직전 세례를 받아 ‘성’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되듯이 자기들 입맛대로 ‘나쁜 유명인’을 끌어들여다가 종교 선전에 써서는 안 되지요. 암흑시대였던 유럽 중세시대 때나 만들어지던 대형 교회들을 만들어놓고 믿쑵니다!를 외치는 한국 교회들은 무엇을 믿고 있는 걸까요. 한국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붉은 십자가들이 무섭게 느껴집니다.

2008.11.17 16:39 ⓒ 2008 OhmyNews

소설 콘스탄티누스 - 신이 된 사나이

류상태 지음,
인물과사상사, 2008


#기독교개혁 #콘스탄티누스 #류상태 #이근안 #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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