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인간] 김구 주석과 학도병 장준하의 만남

[김갑수 역사팩션 155] 3부 '열두 개의 눈동자' 편

등록 2008.11.20 10:07수정 2008.11.2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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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 장군 지청천

1945년 1월 31일 하오, 대륙의 끝까지 쫓겨 간 약소국의 임시정부 청사에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임정 청사는 암반을 등 대고 있는 5층 건물이었다. 한국 학도병 50명은 뜰에 2열 횡대로 정렬해 있었다. 지휘관은 따로 없지만 오와 열의 정확성은 어느 정예 군대 못지않았다. 그들의 침묵 속에는 벅차오르는 감격이 숨어 있었다. 학도병들은 펄럭이는 태극기를 신기한 눈으로 치어다보았다. 장준하는 태극기를 처음 본 순간 시간의 흐름이 정지하는 것 같은 환각에 빠져 버렸다.

특이하게도 일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늘은 저녁처럼 어두워졌고 태양은 가락지 형상으로 잠시 빛을 뿜더니 이내 제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학도병들은 숙연히 임정의 지도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준하는 7개월에 걸쳤던 대륙 횡단 6천 리의 장정이 완전히 끝났음을 비로소 실감했다.

진 교관이 청사 안으로 들어가자 마침 거세진 바람을 타고 태극기는 더욱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깃발은 마치 젊은이들의 험한 역정을 다 안다는 듯이 펄럭이고 있었다. 드디어 청사 가운데의 문이 열리고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군인이 진 교관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 나왔다. 그의 뒤로는 누런 군복을 입은 장정 6,7명이 따라 나오고 있었다.

선두로 나온 50대 후반의 군인은 광복군 사령관 지청천이었다. 약소민족 독립군 장군으로서 그의 삶은 투쟁과 역경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8세 때 일본인이 주는 돈을 받았다가 어머니에게 혼이 난 그는 일찍부터 민족의식을 지니고 성장했다. 그는 한국무관학교에 다니다가 을사늑약 후 정부 파견 유학생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이어서 그는 조국의 주권이 강탈당하던 해에 일본군 장교로 임관되었다. 그는 일본군 장교로 청도 상륙 작전에 참가하여 무공을 세우고 중위로 진급했다. 3·1 운동 후 일군 병영에서 탈출을 감행한 그는 만주에 있는 신흥무관학교를 찾아갔다. 그는 독립군 장군으로 만주 동북삼성 일대를 누비며 수많은 일본군을 도살한 바 있다.

장준하는 지청천이 앞에 이르자 부동자세에 더 힘을 보태며 장군에 대한 경의를 표시했다. 장군은 이마가 조금 튀어 나왔고 입술에는 매서운 투지가 담겨 있었다.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젊은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사열을 마친 그는 진 교관에게 쉬어 자세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그러더니 젊은이들 앞에 우뚝 섰다. 주름이 켜켜이 파인 노병의 입에서 이윽고 카랑카랑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고생들 했소이다. 여러분이…."

웬일인지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젊은이들을 본 순간 가슴이 미어졌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남모를 감회가 따로 있었음일까? 그의 눈에는 물기가 배어 있었다. 그는 몇 번 헛기침을 하면서 잠긴 음성을 되살려내려고 애썼다.

"앞으로 같이 지내실 것이니까 차차 얘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나는 어서 여러분에게 우리 정부의 주석을 만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

그가 말을 맺으며 고개를 들어 올려본 돌계단에서는 푸른 두루마기로 몸을 감싼 노인을 필두로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 7, 8명이 내려오고 있었다. 푸른 두루마기의 노인은 굵은 검은 테 안경 속에서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물론 그는 임시정부의 주석 백범 김구였다.

일본군이 혈안이 되어 사살하려 했던 백절불굴의 혁명가는 의외로 소탈하고 검소해 보였다. 망명길 30년의 풍상을 겪은 노인은 학도병들을 아들같이 보고 손자처럼 보았던 것일까? 아니면 사뭇 격정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일까? 그의 음성은 의외로 차분했다.

"젊은 동지들을 환영합니다. 나는 오랫동안 해외에 나와 있어서 국내 소식에 어둡습니다. 그동안 일제의 폭정 밑에서 온 국민이 모두 일본인이 된 줄 알고 염려했는데 그것이 한낱 기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조국을 위해 할 일이 주어질 것입니다."

김구는 임정의 각료들을 학도병들에게 소개하기 시작했다. 김규식, 이시영, 조소앙, 최동호, 신익희, 엄항섭, 차이석, 조완구, 유동열 등이 차례대로 소개되었다. 학도병들은 독립운동가들에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경의를 표했다. 식을 마친 젊은이들은 내무부장 신익희의 안내를 받아 5층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 늦게 만찬을 겸한 환영연이 열렸다. 중국 정부로부터 재정 원조를 받고 있는 임시정부의 차림상은 궁색했다. 하지만 젊은이들을 맞이한 임정 사람들의 움직임은 생기에 넘쳤다. 장준하는 상차림을 지휘하고 있는 몸집 작은 아낙네에게 눈이 끌렸다. 어머니 또래의 조선 여인이었다. 그런 나이에 명민하고 절도 있어 보이기란 쉽지 않은 법이었다. 그녀는 바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젊은이들에게 아주 친절하고 자연스럽게 대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임정 자금을 구하려고 국내에 단신으로 여러 번 잠입한 적이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였다. 그녀의 시아버지는 동농 김가진으로 임정의 최고령 어른이었다고 했다. 동농은 70을 넘긴 나이에 총독부가 준 남작 작위를 팽개치고 상해에 망명해 화제가 된 인물이었다. 그녀의 남편도 독립운동가로서 임정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이름은 정정화였는데 지금은 임정의 안살림을 맡고 있다고 했다.

상에는 배추절임을 비롯한 소채 안주 몇 가지에 배갈 병이 놓여 있었고 그나마 잔도 없어 뚝배기에 돌려가며 마시도록 되어 있었다. 김구는 자애로운 억양에 혁명가의 의지를 숨기고 있었다.

"여러분이 왜놈에게 항거하여 용감히 병영을 탈출, 여기까지 와 주었으니 나는 더할 나위 없이 고맙습니다. 착잡했던 나의 마음이 오늘 저녁 씻은 듯이 가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숭엄한 조국의 혼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 이외의 아무것으로도 결코 변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 증거로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지금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이 모두 일인이 되기를 원하며 한국말조차 못한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내일 이곳에 있는 세계 각국의 신문기자들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너무도 자랑스러워 다 함께 시내로 뛰쳐나가 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망국민의 슬픔, 울음 바다가 된 환영회장

장준하는 학도병 대표로 답사를 했다.

"저희들은 왜놈들의 통치 아래서 태어난 신세대들입니다. 저희는 그들에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우리나라의 국기조차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때 임정요인의 좌석 한 귀퉁이에서 '흐윽'하는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잠시 사이를 두었던 장준하는 답사를 이어 나갔다.

"저희는 철이 들면서 일장기가 우리나라의 국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조국의 현실입니다. 저희는 조국의 국기가 보고 싶었습니다. 전국에 나부끼는 일장기가 우리 국기라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희는 오늘 오후 이 임정 청사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치어다보며 잠시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곧 슬픔이 조수처럼 밀려왔습니다. 내 국기, 내 나라의 국기를 보는 일이 그토록 어려웠던 일이었을까요? 우리 조국은 얼마나 못났기에 청년들에게 국기 하나를 보여주려고 6천 리를 걷게 만든다는 것입니까? 우리의 슬픔은 지금 일제를 향한 분노로 바뀌고 있습니다.

한편 저희는 지금 이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가지고 몸 바칠 곳을 찾았다는 기쁨에 떨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아무런 한이 없습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그리고 평생 고초를 겪어 오신 선배 독립운동가들의 노고에 보답이 된다면 무엇이든 하라시는 대로 하고 어디든지 가라시는 대로 갈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런 각오를 피력하는 것으로 답사를 대신합니다."

답사를 끝낸 장준하는 자리에 앉지 못하고 숙연한 표정으로 임정요인들을 보고 있었다. 김구를 비롯한 대부분의 노인 각료들이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준하는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그의 눈에도 이윽고 눈물이 맺혀졌다.

급기야 '흑'하는 김구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70을 바라보는 주석의 울음은 환영회장을 삽시에 울음바다로 바꾸어 버렸다. 울음은 통곡으로 변해갔다. 음식을 가지고 들어오던 아낙네 몇이 멍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슬그머니 음식 용기를 바닥에 놓더니 함께 울기 시작했다.

식탁을 주먹으로 치는 사람도 있었고 식탁 다리를 잡고 마구 흔들며 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망국인이 아니면 체험할 수 없었던 차별과 고초의 묵은 비애를 마음껏 터뜨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하는 데 기여하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덧붙이는 글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하는 데 기여하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김구 #중경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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