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60) 어린날

[우리 말에 마음쓰기 483] '차나들이-자동차마실'과 '드라이브'

등록 2008.11.25 13:50수정 2008.11.2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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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어렸을 때 / 어릴 적

 

.. 어렸을 때부터 썼던 말, 실제 입에서 나오는 말을 쓰고 싶었던 것이 틀림없다 ..   《이 오덕-우리글 바로쓰기 (3)》(한길사,1995) 207쪽

 

 ‘실제(實際)’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으레’나 ‘늘’이나 ‘여느 때’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싶었던 것이”는 “싶었음이”로 손봅니다.

 

 ┌ 어린 시절(時節) / 유년(幼年) 시절(時節)

 ├ 소년(少年) 시절(時節) / 소녀(少女) 시절(時節)

 ├ 유아기(幼兒期) / 유년기(幼年期)

 └ …

 

 어떤 새로운 말이 아닌 ‘어렸을 때’입니다. 이 말투와 비슷하게 ‘어렸을 적’과 ‘어릴 때’와 ‘어릴 적’을 씁니다. ‘어린 날’과 ‘어린 나날’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는 많은 분들은, 또 말하기로 밥그릇을 채우는 많은 분들은 ‘어렸을 때-어렸을 적-어릴 때-어릴 적-어린 날-어린 나날’ 같은 말을 잘 안 씁니다. 으레 ‘어린 시절’입니다. ‘유년 시절’도 자주 씁니다. ‘소년 시절/소녀 시절’도 쓰고 ‘유아기’와 ‘유년기’라는 말도 흔히 써요.

 

 ┌ 어렸을 때부터 썼던 말

 ├ 어릴 때부터 썼던 말

 ├ 아이 때부터 썼던 말

 ├ 예전부터 썼던 말

 ├ 어려서부터 썼던 말

 └ …

 

 있는 그대로 쓰면 되는 말이고, 느끼는 그대로 적으면 되는 글입니다. 살아가는 그대로 쓰면 되는 말이고, 부대끼는 그대로 적으면 되는 글입니다. 우리는 아기로 태어나 어린이로 크다가 푸름이를 거쳐 젊은이가 되고, 한창 무르익는 나이를 보내고서 차츰 늙은이가 되어 갑니다.

 

 ― 어린 날 / 젊은 날 / 늙은 날

 

 통일운동에 몸바친 백기완 님은 《젊은 날》이라는 시모음을 펴낸 적 있습니다. 젊었을 적을 보낸 이야기를 담았으니 ‘젊은 날’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늙은 삶을 보내는 이야기를 적바림하면 ‘늙은 날’이 되고, 아직 철이 덜 들던 어린이 때 이야기를 그러모으면 ‘어린 날’이 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이 ‘어린이-젊은이-늙은이’라는 낱말을 지어서 쓰듯, ‘어린날-젊은날-늙은날’이라는 새 낱말을 지어서 쓸 수 있구나 싶습니다. ‘어린때-젊은때-늙은때’라는 새 낱말을 지을 수 있고, ‘어린꿈-젊은꿈-늙은꿈’ 같은 새 낱말을 지을 수 있으며, ‘어린삶-젊은삶-늙은삶’과 같은 새 낱말을 지을 수 있습니다.

 

 ┌ 어린- : 어린풀 / 어린나무 / 어린꽃

 ├ 젊은- : 젊은풀 / 젊은나무 / 젊은꽃

 └ 늙은- : 늙은풀 / 늙은나무 / 늙은꽃

 

 풀이나 나무나 꽃을 두고 ‘어린풀-젊은나무-늙은꽃’이라 하면 좀 안 어울릴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린-’은 풀이며 나무며 꽃이며 가리키는 자리에 으레 씁니다. ‘젊은-’과 ‘늙은-’을 붙이는 풀이랑 나무랑 꽃이랑 잘 안 쓸 뿐입니다.

 

 가만히 보면, ‘어린사람’이 있듯 ‘젊은사람’과 ‘늙은사람’이 있습니다. 풀이 어린날을 보내면 ‘젊은날’을 맞이할 테고, 풀마다 제 목숨을 마칠 무렵이면 누렇게 시들면서 ‘늙은날’을 마무리짓는 셈입니다.

 

 

ㄴ. 차나들이

 

 몇 해 앞선 때입니다. 인터넷모임에 올라온 글을 죽 읽다가 어느 분 글에 쓰여진 ‘차나들이’라는 낱말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차를 타고 나들이를 한대서 ‘차나들이’인가, 그러네,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를 한다면 ‘자전거나들이’일 테고, 버스를 타고 나들이를 하면 ‘버스나들이’가 될 테며, 기차를 타고 나들이를 떠나면 ‘기차나들이’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드라이브(drive)] : 기분 전환을 위하여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일

 

 언제부터인지 떠오르지 않지만, 아무래도 자동차가 우리 삶에 차츰 파고든 때부터일 텐데, 자동차를 타고 움직이는 일을 두고 ‘드라이브’라는 미국말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국어사전에도 ‘드라이브’라는 낱말이 실려 있습니다. 지금도 이 낱말은 두루 쓰이고 있으며, 앞으로도 오래도록 쓰이리라 생각합니다.

 

 ┌ (무엇) + 나들이 : 무엇으로 나들이를 하기

 │→ 차나들이 / 기차나들이 / 버스나들이 / 자전거나들이

 ├ (때) + 나들이 : 어느 때에 나들이를 하기

 │→ 봄나들이 / 여름나들이 / 밤나들이 / 저녁나들이

 ├ (곳) + 나들이 : 어느 곳으로 나들이를 하기

 │→ 들나들이 / 바다나들이 / 산나들이

 └ …

 

 꼭 ‘우리 말 다듬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드라이브’ 같은 낱말을 다듬어야 하지 않습니다. 굳이 새로운 낱말을 찾아서 써야 하지는 않아요. 다만,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이 땅에서 이웃과 오순도순 주고받는 말과 글로 우리 생각을 담아내고 우리 마음을 펼치며 우리 뜻을 넓히는 길을 찾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꾸밈없이 말하고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며 넉넉하게 어깨동무하는 삶을 헤아린다면, 차를 타고 나들이를 한대서 ‘차나들이’라 하고, 겨울날 나들이를 떠난다고 해서 ‘겨울나들이’라 하며, 나라밖으로 나들이를 가 본다고 하니 ‘나라밖나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드라이브

 ├ 자동차여행

 └ 차나들이 / 자동차마실

 

 생각을 키우는 ‘우리 말 다듬기’입니다. 생각을 키우지 않고 가둔다면 우리 말 다듬기가 아닙니다. 생각을 북돋우거나 일으키는 우리 말 다듬기입니다. 생각을 가라앉히거나 깔아뭉갠다면 우리 말 다듬기가 아닙니다. 삶을 다스리고 돌보고자 하는 우리 말 다듬기입니다. 삶을 내치거나 업수이 여기자면 우리 말 다듬기가 아닙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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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5 13:50ⓒ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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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쓰기 #한글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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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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