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중앙><조선>마저 대통령 발언 문제라고 할까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하지만 이대통령 결코 '실언'은 아니다

등록 2008.11.26 12:57수정 2008.11.2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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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G20 금융정상회의와 APEC 정상회의를 마치고 리마에서 LA로 향하는 기내에서 23일 오후(현지시각) 수행기자 간담회를 갖고 방문 성과와 국내 상황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보희

이명박 대통령이 G20 금융정상회의와 APEC 정상회의를 마치고 리마에서 LA로 향하는 기내에서 23일 오후(현지시각) 수행기자 간담회를 갖고 방문 성과와 국내 상황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보희

"제대로 된 국가원수의 입에서 나올 만한 내용도 표현도 아니다." "표현은 경박하고 논리는 상충한다."

 

<중앙일보> 26일자 사설 '대통령의 말, 보다 진중해야'의 한 대목이다.

 

결국 <중앙일보> <조선일보>까지 이명박 대통령의 경박하고 부적절한 발언을 비판하고 나섰다. <중앙일보>가 특히 그렇다. 작심하고 할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만큼 위기의식이 크다는 말일 수 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었나 보다. 이 대통령이 LA동포간담회에서 "지금 주식 사면 1년 안에 부자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사설 제목은 그래도 점잖은 편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매섭다. "앞뒤 따지지 않고 허세를 부리는 사업가의 허언처럼 들린다"고도 했다.

 

<조선일보>도 사설 '대통령의 주식 이야기 듣기 거북하다'에서 "적절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대선 당시 "정권교체하면 내년 주가지수 3000을 돌파하고 임기 안에 5000까지 갈 것"이라는 했던 말까지 상기시켰다.

 

대통령의 '주가발언'이 주가만큼이나 그 신뢰도가 '폭락'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경고다.

 

MB 주식 발언, 근원적 물음 비켜간 <조선> <중앙>

 

하지만, 이 두 신문은 이명박 대통령이 왜 이처럼 '부적절한 발언'을 이처럼 대책없이 내놓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진 않았다. 되레 "미국발 금융위기로 국내주가가 덩달아 주저앉고 실물경제마저 얼어붙는 현실이 안타까워서"(<조선일보>)라고 좋게 보아주거나, 혹은 "국가원수의 자리를 가볍게 봐선 안된다"고 에둘러 짚는 수준에 그쳤다.

 

그런 점에선 <경향신문>의 지적이 예리하다. <경향신문>은 사설 '차마 전하기 두려운 대통령의 허언'에서 이대통령의 "지금 주식투자하면 1년 안에 돈 벌 것"이라는 발언에 대해 "명색이 대통령이 '평생에 한번 올까말까 한'이라고 진단한 경제위기를 재산 증식의 기회라고 남의 얘기하듯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면서 "10% 부자들의 세상에 갇힌 대통령의 인식 수준을 또 한번 보여주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사설의 이 대목이야말로 이대통령 발언의 '배경'과 '문제점'을 적확하게 짚은 것이라 할 만하다.

 

대한민국에서 주식 투자는 더 이상 특권계층만의 재테크가 아니다. '범국민 재테크'가 됐을 정도로 일반화된 재테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주식투자가 기본적으로 '사행성'이 있다는 속성까지 망각할 일은 아니다. 게다가 지금 같은 '유동성 위기' 국면에서 여유있게 주식에 투자할 있는 여력을 갖고 있는 국민 계층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지금과 같은 주식 장세가 절호의 투자기회일 있는 사람들은 <경향신문>이 지적했던 것처럼 "10% 부자" 축에 드는 사람들일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따라서 결코 '실언'이 아니다. 이대통령이 경제를 바라보고 있는 '철학'과 '시각'이 정직하게 투영된 발언이다. 그래서 문제다.

 

합리적 보수들의 행동 주문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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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 오전 장중 주가 1,000선이 붕괴된 가운데 오후 1시 16분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시황판에 코스피지수가 951.63으로 표시되고 있다. ⓒ 권우성

10월 24일 오전 장중 주가 1,000선이 붕괴된 가운데 오후 1시 16분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시황판에 코스피지수가 951.63으로 표시되고 있다. ⓒ 권우성

어떻게 해야 할까. <한겨레> 성한용 선임 기자가 26일 기명칼럼 '이 땅의 보수는 다 얼어죽었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일은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잘 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개과천선을 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는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한용 선임기자가 내놓은 해법은 이렇다.

 

"생각있는 보수, 합리적 보수가 이제는 나서야 한다. '사이비 보수'와의 권력투쟁을 두려워하면 안된다. 가짜를 쫓아내고 이명박 대통령을 바로 세워야 한다. …진짜 보수의 분발을 기대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처럼, 지금처럼 당파성이 강한 세태에선 '적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보수정권(혹은 세력)의 정치적·사회적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보수들에게 달렸다. 진보나 개혁정권이나 그 세력의 성공 여부 역시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권이 성공하자면 결국 진짜 보수의 분발, 그 중에서도 진짜 보수 언론이 잘 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이대통령이 귀를 기울일 언론은 이들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보수언론들이 이런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오늘 다수의 보수언론들은 대통령이 해서는 안될 발언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그냥 넘어가려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나마 발언에 나선 <조선일보> 사설에선 자제의 노력이 역력해 보인다. 평소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거침없는 성토에 비하자면 너무 점잖다. 눈치를 보는 것일까.

 

<중앙일보> 정도가 그래도 오늘 할 말을 분명하게 했을 뿐이다. 비록 '부자의 시각'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다고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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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6 12:57 ⓒ 2008 OhmyNews
#이대통령 실언 #성한용 #권력과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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