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양각색 다른 빛깔로 커가는 아이들

부곡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 "11월을 보내며 우리는"

등록 2008.11.29 19:59수정 2008.11.2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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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잘 놀아야 잘 큰다. 당연한 얘기다. 그래야 몸도 건강해지고 마음도 말갛게 자란다. 봄가을은 말한 것도 없고, 가마솥 불볕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운동장을 팡팡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 살맛이 난다. 이만한 더위쯤이야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여름아이들은 살갗이 가무잡잡하게 그을리고, 얼굴이 새까매도 건강타. 함박눈 내리는 겨울도 마찬가지다. 잘 노니까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옷을 그렇게 두툼하게 차려 입지 않아도 이깟 추위에 발발 떨지 않는다.

 

우리 반 아이들의 일상은 잘 노는 게 먼저다. 늘 쉬는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다. 채 수업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궁둥이가 들썩인다. 벌써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매일 떼쓰는 개구쟁이들에 쏠릴 턱이 없다. 모른 채하고 쉬는 종이 쳤음에도 수업을 계속 이끌어간다. 그런데 이 녀석들, 조급증에 오금이 저린지 대개가 딴청을 부려댄다. 그 모습이 앙증맞다. 더 이상 수업은 의미가 없다, 애써 져 준다.

 

아이들은 잘 놀아야 잘 큰다

 

우르르 운동장에 나간 아이들의 ‘와와’하는 함성소리가 드높다. 연방 내차는 공들이 하늘 높이 솟구친다. 아이들이 건강하다는 것은 저렇게 구김살 없이 뛰어놀 때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농촌지역임에도 학교를 파하면 학원과외로 붙들어 매인다고 앙다문 두 볼에 불만이 가득하다. 물론 도회지 아이들이야 실컷 놀고 싶어도 마땅하게 놀만한 장소가 없을 터지만, 시골 아이들은 다르다. 어둠살이가 운동장 가득 채워도 아이들은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있다.

 

3월,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해 본다. 고만고만한 몸집, 여린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면 언제 야물어지겠나 싶었는데 그새 많이 자랐다. 키 큰 것만큼 생각가지도 부쩍 많아졌다. 터놓고 얘기하다 보면 당차다. 스스로 제 할 일에 신실하다. 틈틈이 챙겨주었던 논술과제도 빠짐없이 척척해낸다. 좋은 생각들이 많다. 책도 즐겨 읽었다. 그런 까닭에 요즘은 어떤 시제를 안겨도 원고지 네댓 장은 한달음으로 휘갈겨 놓는다. 똑같이 어우러져 생활해도 글 향기가 다 다르다. 그게 우리 반 아이들이 사는 법이다.

 

우리 반 아이들이 사는 법

 

오늘도 ‘11월을 보내며 우리는’이란 글제로 자기 생각을 밝혀봤다. 초등학교를 마무리 짓는 때라 자못 알맹이 두둑한 글들이 많았다. 혼자 보기 아까워서 그 중 몇몇 글들을 소개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요즘 아이들은 어떤 계절감각을 가질까. 우리 반 아이들이 세상사는 법은 무얼까. 크게 기대해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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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이 정우성 어린이는 지난 학예회 때 사회를 보았다. ⓒ 박종국

▲ 우성이 정우성 어린이는 지난 학예회 때 사회를 보았다. ⓒ 박종국

와~, 벌써 11월 한 달이 다 지나갔다. 이제 몇 달만 지나면 나와 친구들은 중학교에 입학한다.

선생님도 이제 50대가 된다.

 

시간은 참 빠른 것 같다. 하루 24시간이 금방금방 지나간다. 자리도 바꿨다. 나는 재용이와 짝이 되었다. 우리는 맨 뒷자리에 앉았다.

 

내 앞자리는 지민이다. 자리를 바꾸고 며칠 동안은 수업시간에 지민이 머리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의지를 좀 낮추어 달라고 했다. 이제는 잘 보인다.

 

올해도 한 달이 조금 더 남지 않았다. 우리가 졸업할 날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작년에 있었던 일도 엊그제같이 느껴지는데……. 우리가 졸업하고 나면 5학년 동생들이 우리 학교를 잘 이끌어갈지 걱정이 된다. 선생님! 이제 함께 할 날도 며칠 남지 않았군요. 남은 한 달도 열심히 할게요. _ 정우성 글

 

우성이는 6학년이지만 몸집이 장대하다. 또래들과는 머리 하나 더 크다. 그래서 조그만 부대낌에도 아이들은 못살게 군다고 고자질을 해댄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성이 말에 의하면 귀여워서, 그냥 좋아서 툭툭거려 본 것이란다.

 

몸집이 커서 괜한 일에도 오해받는 일이 많다면 우성이는 저대로 불만이 많다. 키가 큰 데 죄냐고? 담임으로서 달리 뜯어 말릴 재간이 없다. 그저 허허대며 하이들이 하는 양을 지켜볼 수밖에는. 허나 우성이는 전교어린이회장으로서 맡은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며, 학우들을 잘 이끌고 배려하는 마음씀씀이가 살갑다. 드러내놓고 그 다부짐을 칭찬하고 싶은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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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이 김현정이는 자그마한 몸집에도 야무지다. ⓒ 박종국

▲ 현정이 김현정이는 자그마한 몸집에도 야무지다. ⓒ 박종국

내일만 지나면 이제 2008년 마지막 달 12월이 된다. 11월 달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억울한 일, 속상한 일, 울고 싶었던 일, 좋은 일, 나쁜 일 등 많은 사연과 추억이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6학년이 빨리 지나 중학교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6학년 1학기로 돌아가 좋았던 추억을 다시 되찾고 싶다.

나는 안타까운 게 있다.

 

2008년 새해 첫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월이라니 요즘 들어 나는 한 주일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아쉽다.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 것일까? 내가 하루를 잘 보내서 그런 것일까? 정말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나는 이번 11월 달은 다른 달에 비해서 아주 잘 보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져서 그런 것일 게다. 이제 마지막달이 남았으니 최선을 다해 6학년 마무리를 잘 하고 싶다. _ 김현정 글

 

현정이는 우리 반 공주다. 그것도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지극한 공주병 소유자다. 자칭 우리 반에서 자기만큼 잘 생긴 사람이 없단다. 공개적이다. 그런데 반 아이들의 반응은 의외다. 모두들 인정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체구는 작지만 야무져서 어느 것 하나 빈틈이 없다. 방송부원으로, 영어연극으로, 사물놀이로 바쁘다. 그렇지만 그런 와중에도 현정이는 언승이를 참 좋아하는 눈치다. 오늘 둘째시간에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발표할 때도 언승이에게 주는 글을 써서 발표했다. 참고로 언승이는 성격이 좋아 누구나 호감을 가지는 아이다. 이처럼 요즘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밝히는데 주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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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이 김대현이는 친구를 위하는 마음이 너그럽고 따스하다. ⓒ 박종국

▲ 대현이 김대현이는 친구를 위하는 마음이 너그럽고 따스하다. ⓒ 박종국

11월에 한자급수시험을 쳤다. 그래서 난 새로운 경험을 했다. 또 좋은 사람들과 많은 만남을 통해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 가족이 한데모여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 난 즐거웠다. 11월 동안 나는 많은 책을 읽었다.

 

그만큼 지식이 풍부해졌다고 자신한다. 선생님과 친구들과도 두고두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도 만들었다. 또한 나보다 힘든 사람을 보고 동정심도 생겼다.

 

이제 선생님과 헤어져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 아쉽다. 이제야 우리 선생님이 얼마나 좋은 선생님인 줄 알겠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나의 새로운 계획을 세워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할 거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만남이 있고, 또 무수한 헤어짐이 있는 것 같다. 졸업이 그것이다. _ 김대현 글

 

대현이는 다소 철학적이다. 꼬마 철학자. 그게 대현이한테 꼭 들어맞는 얘기다. 생각이 깊다. 그래서 친구들을 위하는 마음이 도탑다. 특히 여자친구들에게는 인기가 대단하다. 오죽했으면 여자 아이들이 그런 대현이를 ‘밥’(?)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특히 내가 쉬는 시간을 까먹어가면서 공부를 한답시고 능청을 떨면 “선생님 밤길 조심하세요”라고 살짝 귀띔을 해줄 만큼 순수하다. 그런 까닭에 나는 교사로 사는 지금이 더없이 행복한 거다.  

2008.11.29 19:59 ⓒ 2008 OhmyNews
#친구 #철학자 #인기 #공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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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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