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영어 선생님이 사라졌어요"

'해외 영어봉사 장학생' 포기자 3개월 만에 32명... "만족도 높다"는 반론도

등록 2008.12.01 10:55수정 2008.12.01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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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에 있는 ㄴ초 교장과 교감, 교사, 그리고 85명의 시골 초등학생들은 최근 황당한 일을 겪어야 했다.

교포와 외국 대학생을 한국 초등학교에 불러들여 '선생님'을 맡도록 한 대통령 초청 해외영어봉사 장학생(TaLK, Teach and Learn in Korea)이 지난 9월 17일 돌연 줄행랑을 쳤기 때문이다.

이날 이 학교에 TaLK 교사 대신, 도착한 것은 몇 줄짜리 전자메일뿐이었다. "지금 인천공항인데 개인 사정으로 고향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9월 1일 발령 뒤 2주 남짓 학생들을 가르친 뒤 생긴 일이다.

"참 황당하고 난감했습니다. 그렇지만 스무 살 대학생이 부모 떨어져 살다가 집에 가겠다는 데 어쩝니까?"

이 학교 조아무개 교감의 말이다.

출근 하루 만에 TaLK 일을 '때려치운' 경우도 있다. 지난 8월말 충북 옥천 ㅅ초에서 생긴 일이다.

이 학교 정아무개 교장의 사택에는 포장도 뜯지 않은 침대, 옷장, 전자제품 따위의 생활용품이 쌓여 있었다. 다음은 정 교장의 전언이다.


"TaLK 교사가 예비소집 날, 자기 살 집을 보더니 못 살겠다고 그냥 가더라고요. 서양식 음식이 없다고 투덜대기에 '대전 가서 사다가 주겠다'고 했는데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석 달 사이에 400명 중 32명 중도 포기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청와대

11월 26일 현재, 이처럼 중도 포기한 TaLK 교사는 모두 4명이다. 당초 6개월, 1년 두 종류의 계약과 달리 올해 '12월 중 귀국' 등을 요청한 이도 8명이다. "20여 명은 TaLK에 합격해놓고도 한국행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고 교과부와 국제교육진흥원 관계자는 밝혔다.

전체 인원 400명 가운데 중도 포기 학생이 모두 32명인 것이다. 

교과부가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한국에 온 TaLK 교사를 한 달여 간 연수시킨 뒤 일선 초등학교에 발령낸 때는 올해 9월 1일. 이들이 일을 시작한 지 석 달 만에 중도 탈락(예정)률이 8%에 이르는 셈이다.

TaLK 대상자들은 대부분 교사자격증을 갖고 있지 않다.

일주일에 15시간 방과후학교 수업을 맡는 이들 한 명에게 한 해에 들어가는 돈은 내년 교과부 예산안을 보면 3486만원(한국 도우미 대학생 급료 600만원 포함)이다.

교과부는 내년에는 TaLK 교사를 700명으로 늘리고,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1000명으로 유지하는 계획을 마련해놓고 있다.

외국 대학생에 한 해 3486만 원... '실용' 정부 맞나

이들이 배치된 13개 시도교육청 담당 장학사들은 "초등학생들의 만족도가 무척 높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교과부 영어교육강화추진팀 중견관리도 "이 사업은 농산어촌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영어 격차 해소 사업"이라면서 "학업 때문에 귀국하는 경우가 많지만 73명이 계약을 연장한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높은 중도탈락률'과 '무자격자의 영어수업'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있다.

방대곤 전교조 초등위원회 정책국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말 잘한다고 아무나 국어교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영어만 잘한다고 아무나 영어교사로 만든 일은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정식 원어민 교사보다도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이런 사업을 벌이는 게 실용주의 정부 맞습니까?"

이 대통령의 TaLK는 헛방?...무자격 '교사'들 1000명 확대
교과부는 지난 8월쯤 올 초부터 써오던 '대통령 초청 해외 영어봉사장학생'(TaLK)이란 사업 명을 슬그머니 변경했다. '대통령'이란 말을 '정부'란 표현으로 바꿔 쓰기 시작한 것이다.

교과부 영어교육강화추진팀 중견 관리는 "대통령이란 말이 들어가면 대통령 주도적이라는 어감이 강하기 때문에 사업명이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TaLK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이 주도한 일이다. 이 사업은 올 1월 "영어봉사를 하겠다는 교포들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 영향을 받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영어 공교육 강화방안' 가운데 하나로 계획한 것이었다.

'대통령 표' 장학생은 특혜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들은 한 주 15시간 수업 기준으로 월 190만원(주거지원 40만원 포함)의 사례비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액수는 한 주 22시간 수업 기준으로 220만원(주거지원 30만원 포함)을 받는 원어민 교사(급료가 제일 싼 서울을 뺀 15개 시도교육청 공동 책정 학사학위 소지자 기준)보다 시수 당 1.27배 더 많다. 한시간당 급료는 주로 대학생 자격인 영어봉사 장학생이 3만1666원인 반면, 원어민 교사는 이보다 적은 2만5000원이다.

영어봉사 장학생이 받는 특별대우는 이 뿐만이 아니다. 돌아갈 때는 '대통령 영어봉사 장학생 인증서'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영어 수업과 생활에서 국내 대학 '도우미' 학생들의 맨투맨 식 도움을 받는 특전도 제공받는다.

올해 교과부가 영어봉사 장학생 한 명을 운용하기 위해 책정한 나랏돈은 한 사람마다 4500만원이다. 우리나라 신규 영어교사의 연봉은 2600만원 정도. 정식 영어교사 보다 더 많은 액수가 투입되는 셈이다.

교과부는 내년 TaLK 교사 수를 올해보다 300명 늘어난 700명으로 정했다. 이를 위해서는 202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지만 교과부 예산은 101억원으로 잡았다. 나머지는 시도교육청의 몫이 되는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2010년부터는 TaLK 교사 수가 1000명으로 늘어난다.

"원어민이 없는 농어촌 초등학교에 배치해 영어격차해소에 기여 한다"는 정책 목표 또한 현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TaLK 교사 17명을 받아들인 제주도교육청 소속 농어촌 초등학교의 원어민 교사 배치율은 100%였다. 이 밖에도 경기 등 다른 지역에도 이미 원어민 교사가 배치된 학교에 TaLK 교사를 할당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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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교육희망>(news.euhope.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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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영어장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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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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