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입학실 날 엄마와 내 모습
한혜미
그런 엄마, 도저히 내가 닮을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나도 엄마가 됐다. 지난 10월, 반나절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진통 끝에 결국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은 것.
수술 후 회복이 늦은 탓에 나는 사흘이 지난 뒤에야 아기를 겨우 안아볼 수 있었다. 얼굴이 울긋불긋한,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몸이 자그마한 아기였다. 눈을 뜨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아기에게 처음으로 젖을 물렸다. 그 기분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경이로운 출산과 첫 수유에 이어 나는 고단하지만 피할 수 없는 육아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루에 열 번씩 기저귀를 갈고, 여덟 번씩 젖을 물리고, 네 번씩 젖병을 소독하고, 두 번씩 빨래를 한다. 이런 일상 속에서 '아기를 낳고 나면 세상이 참 다르게 보일 거야'라던 엄마의 말대로 내 시선은 조금 더 깊게 그리고 넓게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산후조리 기간 동안 친정엄마 대신 조리원과 시어머니의 힘을 빌었다. 일하는 우리 엄마가 손주를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원망할 법도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 역시 곧 일하는 엄마가 될 테니까. 아픈 아이를 두고 회사에 꾸역꾸역 갈 일도 있을 것이고, 어린이집 행사에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크는 동안 엄마가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나 역시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안해하지 않으련다. 왜냐하면 지금의 엄마를 보면 자랑스러우니까.
그녀를 닮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지난 8월 엄마가 새 피아노를 장만했다. 피아노는 내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친정집 작은 방에 놓였다. 엄마는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곧 시작될 성당 성가대 반주를 위해 스무 살의 음대생에게 피아노 교습을 받는다. 날렵했던 손가락은 단단히 굳었고, 흐릿해진 시야 때문에 악보 속 움직이는 음표를 따라잡기 힘들다는 엄마. 하지만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이런 엄마를 닮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환갑을 넘긴 지금까지도 아침 여섯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일터로 향하는 그 부지런함을, 까맣게 잊었을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새로 연습을 시작한 그 열정을, "중고로 사려다가 우리 손자 나중에 줄까 싶어 좋은 걸로 샀지" 하며 활짝 웃어 보이는 그 포근함을 꼭 닮고 싶은데 말이다.
곧 출산휴가도 끝이 난다. 회사 복직을 앞둔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아기를 두고 어딜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어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품에 안으면 두 번도 말아 들어갈 듯 작은 아기를 떼어놓기가 아쉬워 벌써부터 꼭, 아주 꼭 품에 안는다.
이제야 비로소 어릴 적 나를 떼어놓고 힘겹게 뒤돌아 일터로 향했던 했던 엄마의 심정이 되어본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날, '으앙' 하고 울던 내 눈동자에 비친 엄마의 낮고 슬픈 눈빛과 다시 마주할 수만 있다면 난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엄마, 즐겁게 다녀와. 내 걱정은 하지 말고요. 엄마 마음 다 아니까."[최근 주요 기사]☞ '3월 위기설' 실체, 청와대에 있다☞ 신지호 의원님, 누가 '반대한민국'입니까?☞ 사시 준비 그만두고 로스쿨이나 한번?☞ [대연합] '반대' 진중권, 대안 뭔가 ☞ [대연합] 노회찬 "민주당 강화론일 뿐이고..." ☞ [엄지뉴스] 한우 아니면 정말 벤츠 1대 줄건가요?☞ [E노트] 강만수 "이런 때 CEO대통령 가진 것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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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안 봐주는 엄마, 그래도 닮고 싶은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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