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시티> 한 장면.
KBS
생각해보라. 저녁 8시 황금시간대에 연속극 대신 요일마다 다른 단막극이 줄줄이 편성되었고, 장르도 얼마나 다양했는지를. 현대멜로물·사극·시대극 외에 서민들 삶에 밀착된 서민드라마·어린이극·청소년물·농촌드라마·테마드라마 등 너무나 다양한 장르가 공존했다.
20년 넘게 장수한 <전원일기> 그리고 <암행어사> <사랑이 꽃피는 나무> 등이 그 당시 시작됐고, 거기다 <베스트셀러극장> <TV문학관> 등 문예물도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1986년에 처음으로 시도된 미니시리즈도 8부씩 한 달에 한편, 일년에 열두편의 다양한 내용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준다는 의도로 시작해서 그 다양한 소재와 빠른 전개로 많은 호응을 받았다. 그런데 그 뒤 16부·24부작의 기형적인 미니시리즈로 변질돼 버렸으니 ….
다양성은 사라지고 획일성만 남은 오늘 드라마 현실20여 년 전의 옛날 일을 꺼내는 까닭은 지금과 비교해보고 오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보고자 하는 이유에서이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지금의 우리 상황을 냉정히 돌아보자. 다양성은 사라지고 획일성만 남았다. 단막드라마는 다 사라지고 무한정 길기만 하고 극단적인 요소들만 모아놓은 연속극, 월화, 수목드라마, 그리고 주말드라마가 맞붙는 죽고살기식의 살벌한 편성. 네가 한다면 나도 한다는 식의 막가파식 발상. 소재주의에 빠져 자극적인 소재로 세상의 이목을 모아보자는 한탕주의. 이런 점에서는 공영 민영 할 것 없이 다 같이 동참했다. 이러다 보니 전까지는 무관심하던 고구려 소재 사극을 거의 비슷한 시기에 너도나도 거액을 들인 대작을 쏟아내어 '연개소문'이란 인물이 동시에 그것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화면을 휩쓸었던 기현상도 있었다.
마치 마주 달리는 기차와 같다. 이러한 끝없는 소모전은 국민들이 식상해지기 이전에 이미 제작진이 먼저 지친다. 아니 우리 분야를 황폐화 시킨다. 우리 방송, 드라마의 역사가 얼마인데 아직도 뚜렷한 방향감각 없이 70·80년대보다 못한 이런 발상으로 제작을 한단 말인가0! 결과는 공멸.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인류의 삶이 날로 나아져야하는 게 역사발전이라는 명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지만 과연 그런가 묻고 싶다. 드라마 분야에 있어서만은 후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한류. 한동안 우리는 이 단어에 열광했고 고무되었다. 한류를 주도했던 드라마의 새 희망으로 믿었다. 우리 뿐만이 아니라 온 나라가 흥분하여 떠들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저기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물론 한류에 성과가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일본, 중국, 동남아에서 놀라운 성과를 올렸고, 아직도 그 효과는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나 자랑스러웠던 그 불빛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음을 본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한류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 믿음이 우리를 필요 이상으로 들뜨게 만들고 자만에 빠지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더욱 겸손하게 우리의 콘텐츠 장점을 다듬고 키웠어야 했는데, 창의성 없이 자기복제만 반복한 결과는 아닐는지?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옛말이 있다. 소리만 요란한데 막상 가보니 묵 한 접시에 막걸리 한 잔 뿐이더라는. 또 차린 건 많은데 먹을 게 없다는 말도 있다. 그야말로 그럴 듯하게 차려지긴 했지만 막상 숟가락 갈 만한 곳이 없고, 먹고 나도 수입산 재료에다 인공조미료를 너무 친 탓인지 속이 느끼한 그런 음식을 누가 좋아할 것인가. 한 마디로 외화내빈. 실속이 없다는 것. 그 동안 우리 드라마가 바로 이런 꼴이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