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한자말 덜기 (56) 이상以上

[우리 말에 마음쓰기 493] ‘인간인 이상’, ‘취미 이상’, ‘4반세기 이상’ 다듬기

등록 2008.12.08 12:05수정 2008.12.0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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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인간인 이상

 

.. 고전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인간인 이상 누구나의 가슴에 와닿을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진 것이다 ..  《가와이 에이지로/이은미 옮김-대학인, 그들은 대학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유원,2003) 17쪽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을 초월(超越)해서”는 “때와 곳을 넘어서”로 다듬습니다.“누구나의 가슴에 와닿을 수 있는 보편성(普遍性)을 가진 것이다”는 겹말이므로, “누구한테나 가슴에 와닿을 수 있다”나 “누구한테나 가슴에 와닿는 책이다”로 손질합니다.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고쳐씁니다.

 

 ┌ 이상(二上) : [문학] 시문(詩文)을 평하는 등급에서 둘째 등급의 첫째

 ├ 이상(二相) : [불교] 그 자체만이 가지는 자상(自相)과 다른 것과도 함께 가지고

 │     있는 공상(共相)을 통틀어 이르는 말

 ├ 이상(二相) : [역사] 조선 시대에, ‘우찬성(右贊成)’을 달리 이르던 말

 ├ 이상(以上)

 │  (1) 수량이나 정도가 일정한 기준보다 더 많거나 나음. 기준이 수량으로

 │     제시될 경우에는, 그 수량이 범위에 포함되면서 그 위인 경우를 가리킨다

 │   - 키 158cm 이상 / 만 20세 이상 / 기업체 부장 급 이상 / 주 3회 이상 /

 │     보통 이상의 관계 / 평균 이상의 실력 / 십 년 이상 근무하다

 │  (2) 순서나 위치가 일정한 기준보다 앞이나 위

 │   - 이상에서 살핀 바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     이상이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의 전부다/ 이상으로 중계방송을 마치겠습니다

 │  (3) 이미 그렇게 된 바에는

 │   - 시작한 이상 끝까지 해야 한다 / 네가 그 일을 맡은 이상 최선을 다해라

 │     / 어쨌든 아비인 이상, 나는 너를 훌륭한 시민으로 키울 책임이 있다

 │  (4) 서류나 강연 등의 마지막에 써서 ‘끝’의 뜻을 나타내는 말

 │   - 이것으로 훈시를 마친다. 이상

 ├ 이상(李箱) : 시인, 소설가(1910~ 1937)

 ├ 이상(泥狀) : 진흙 덩어리와 같은 모양

 ├ 이상(泥像) : [고적] = 이소인(泥塑人)

 ├ 이상(理想)

 │  (1)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태

 │   - 이상을 향한 열정 / 높은 이상을 품다 / 이상을 실현하다

 │  (2)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상태. 절대적인 지성이나 감정의 최고 형태

 │ 로 실현 가능한 상대적 이상과 도달 불가능한 절대적 이상으로 구별할 수 있다

 ├ 이상(異狀)

 │  (1) 평소와는 다른 상태

 │   - 이상을 발견하다 / 몸에 이상이 나타나다 / 기체에 이상이 생기면

 │  (2) 서로 다른 모양

 ├ 이상(異相)

 │  (1) 보통과는 다른 인상이나 모양

 │  (2) 사상의 하나

 │  (3) 육상의 하나

 ├ 이상(異常)

 │  (1) 정상적인 상태와 다름

 │   - 이상 기류 / 이상 저온 / 정신 이상 / 기계에 이상이 생기다 /

 │     그는 몸에 이상을 느끼고 병원을 찾았다

 │  (2)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름

 │  (3) 의심스럽거나 알 수 없는 데가 있음

 ├ 이상(異象)

 │  (1) 이상한 모양

 │  (2) 특수한 현상

 ├ 이상(貳相) : [역사] 조선 시대에, ‘좌우찬성’을 달리 이르던 말

 ├ 이상(履尙) : 품행이 고상함

 ├ 이상(履霜) = 이상지계

 │

 ├ 인간인 이상

 │→ 사람이라면

 │→ 사람인 만큼

 │→ 사람이기 때문에

 └ …

 

 국어사전에 실린 ‘이상’은 모두 열다섯 가지입니다. 여기에서 네 가지만 쓰이고 나머지 열한 가지는 안 쓰인다고 보아야 옳습니다. 또한, 사람이름이나 역사 이야기는 국어사전에서 덜어내야지 싶어요. 사람이름은 인명사전에 싣고, 역사 이야기는 역사사전에 실을 노릇입니다.

 

 한자를 밝혀 적든 아예 한자로만 적든, 우리는 ‘泥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며 안다 한들 이와 같은 낱말을 쓸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진흙덩이’나 ‘진흙 모양’이라 하면 되니까요. ‘履尙’도 마찬가지이고, ‘履霜’도 매한가지입니다. ‘二相’이라 적거나 ‘이상(二相)’이라 적는다 한들, ‘泥像’으로 적거나 ‘이상(泥像)’으로 적는다 한들, 누가 얼마나 알아차릴 수 있겠습니까. 매무새가 반듯하면 ‘반듯하다’고 할 일이고, 매무새가 훌륭하면 ‘훌륭하다’고 할 일이며, 매무새가 다소곳하다면 ‘다소곳하다’고 할 일입니다.

 

 보기글에 나오는 ‘이상’은 ‘以上’입니다.

 

 ┌ 키 158cm 이상 → 키 158cm 넘음(넘는)

 ├ 만 20세 이상 → 꼭 스무 살 넘음(넘는)

 ├ 주 3회 이상 →  한 주에 세 번 넘음(넘게)

 ├ 보통 이상의 관계 → 보통이 넘는 사이

 ├ 평균 이상의 실력 → 평균을 웃도는 실력

 ├ 십 년 이상 근무하다 → 열 해 넘게 일하다

 │

 ├ 이상에서 살핀 바를 → 여기(지금)까지 살핀 바를

 ├ 이상이 내가 알고 있는 →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 이상으로 중계방송을 마치겠습니다 → 여기서 중계방송을

 │

 ├ 시작한 이상 끝까지 해야 한다 → 하기로 한 만큼(하기로 했으니)

 ├ 네가 그 일을 맡은 이상 → 네가 그 일을 맡은 만큼(맡았으니)

 │

 └ 이것으로 훈시를 마친다. 이상 → 훈시를 마친다. 이만

 

 한자말 ‘以上’은 모두 네 가지 쓰임새가 있다고 합니다. 이제까지는 네 가지 쓰임새이지만, 앞으로 다섯 가지 여섯 가지 쓰임새로 늘어날 수 있어요. 우리 스스로 우리 씀씀이를 찾지 않거나 우리 스스로 우리 씀씀이를 밀어놓는다면, 자꾸자꾸 얄궂은 또다른 ‘이상’이 생겨나면서 국어사전에 실릴 테고, 우리 말살림은 그지없이 쪼그라들거나 주눅들게 되리라 봅니다.

 

 

ㄴ. 취미 이상

 

.. 정년을 코앞에 두고 있었던 동료 교사는 정원 가꾸는 솜씨가 취미 이상이었다 ..  《하이데마리 슈베르머/장혜경 옮김-소유와의 이별》(여성신문사,2002) 22쪽

 

 ‘정년(停年)’은 그대로 두어야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물러날 때’로 다듬을 수 있고, 보기글에서는 뒷말과 묶어서 “앞으로 몇 해 뒤에는 학교를 떠나게 될 동료 교사는”처럼 풀어낼 수 있습니다. ‘정원(庭園)’은 ‘뜰’이나 ‘앞마당’이나 ‘꽃밭’으로 손봅니다.

 

 ┌ 솜씨가 취미 이상이었다

 │

 │→ 솜씨가 취미를 넘어섰다

 │→ 솜씨가 취미를 넘어서 있었다

 │→ 솜씨가 취미라고 하기 어려울 만큼 훌륭했다

 │→ 솜씨가 그저 취미라고 할 수 없었다

 └ …

 

 즐기려고 하는 일을 ‘취미(趣味)’라고 합니다. 즐기려고 하는 일이니, 잘하건 못하건 그리 따질 대목이 아닙니다. 못하면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고, 아주 뛰어나게 잘해서 전문직업인보다 대단하다고 할지라도 그저 즐기기만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즐기는 마음이라고 할 때에는, 일도 즐기고 놀이도 즐깁니다. 반드시 큰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라, 먹고살기에 알맞춤하게 하는 일이 됩니다. 꼭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밭을 일구고 내 이웃들과 어깨동무하는 기쁨이 크기 때문에 하는 일이 되어요.

 

 우리가 우리 말과 글을 다루는 데에서도 ‘즐기는 마음’이 맨 먼저입니다. 내 말마디 하나를 얼마나 더 슬기롭게 여미고, 내 글줄 하나를 어떻게 더 아름다이 엮어내느냐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빈틈없이 옮겨내는 일을 넘습니다. 내 생각을 말로 나누는 즐거움을 찾고, 내 뜻을 글로 펼치는 기쁨을 찾을 노릇입니다.

 

 ┌ 솜씨를 보니 그냥 즐기는 일이 아니었다

 ├ 솜씨를 보니 아주 대단했다

 └ …

 

 이러저러하게만 써야 하는 말이 아니요, 몇 가지 토박이말 틀거리에 따라야만 하는 글이 아닙니다. 삶을 발목잡는 기울어진 매무새를 벗어던지는 말씀씀이여야 합니다. 생각을 얽매는 굴레를 털어내는 글씀씀이로 나아가야 합니다.

 

 

ㄷ. 4반세기 이상 / 이 이상

 

.. 4반세기 이상을 ..  《엘리엇 고온/이건일 옮김-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마더 존스》(녹두,2002) 25쪽

 

.. 나는 이 이상 더 할 말이 없지만 ..  《페스탈로찌/홍순명 옮김-린하르트와 겔트루트》(광개토,1987) 5쪽

 

 참으로 많이 쓰이고 쉽게 들을 수 있는 한자말 ‘이상’입니다. 저는 이 말을 쓰지 않으나, 저를 뺀 다른 분들은 이 말을 아주 널리 흔하게 쓰고 있습니다.

 

 ┌ 4반세기 이상을

 │→ 4반세기가 넘도록

 │→ 4반세기 넘게

 │→ 4반세기 지나도록

 │

 ├ 이 이상 더 할 말이 없지만

 │→ 여기서 더 할 말이 없지만

 │→ 이제(는) 더 할 말이 없지만

 └ …

 

 워낙 많은 사람들이 쓰고, 온갖 곳에 쓰기 때문에 ‘이상’과 같은 한자말을 안 쓰면 자기가 나타내려는 뜻을 못 나타내게 된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슨 뜻을 나타내고 싶기에, 무슨 생각을 드러내 보이고 싶기에, 반드시 ‘이상’과 같은 한자말을 써야만 할까 궁금합니다.

 

 우리한테 ‘이상’이라고 하는 한자말이 들어오기 앞서도 우리 옛사람들은 당신들 뜻이나 생각을 드러내지 못했을까요. 한문을 쓰지 않던 낮은자리 여느 사람들은 당신들 느낌이나 마음을 나타내지 못했을까요. 아직 ‘이상’이라고 하는 한자말을 들은 적이 없고 배운 적이 없는 어린이들은 제 느낌이고 마음이고 생각이고 뜻이고 보여주지 못할까요.

 

 말이건 글이건 익숙해진 말을 쓰고 길들어진 글을 씁니다. 흔히 들으면서 배우게 된 말을 쓰지, 제대로 모르는 말을 함부로 쓰지 못합니다. 자주 보면서 익히게 된 글을 쓰지, 어렴풋하게 보거나 읽은 글을 섣불리 쓰지 못해요.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말을 쓸 수 있는 우리들이지만, 짓궂거나 돼먹지 못한 글을 쓸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투가 어떠한가 돌아보아야 하며, 우리 스스로 우리 글투가 어떠한지 되새겨야 합니다. 천 리 길도 첫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듯, 자기도 모르게 써 온 얄궂은 한자말이나 잘못 쓰는 한자말을 깨달아서 하루에 한 가지씩, 또는 한 주나 한 달에 한 가지씩 털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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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8 12:05ⓒ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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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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