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8.12.09 09:41수정 2008.12.09 09:41
이른 저녁식사를 마친 헤이리 주민들이 헤이리의 마음회관격인 다용도 복합 공간, 커뮤니티하우스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두어 시간 서로 머리를 맞대며 숙고하고, 때로는 격론하고, 그래도 서로간의 팽팽한 주장으로 쉬이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은 투표를 하면서까지 헤이리의 어둠을 밝혔습니다.
헤이리에 비교적 일찍 이사 오셔서 헤이리의 각종 전시에 도움을 주고 계신, 미술평론가 이주헌선생님이 사회를 맡고, 헤이리 사무국에서 일하고 계신 시인 윤성택 과장님과 기획팀의 안은지님도 퇴근을 미루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헤이리에서 잦은 풍경입니다.
이번 주민들의 초저녁 미팅은 명년 축제를 어떻게 할까, 하는 축제기획모임입니다.
헤이리는 집이 지어지기 전부터 이 땅에 예술행사를 의식(儀式)처럼 치러왔습니다. 헤이리에 집이 지어지고 마침내 마을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고부터는 봄과 가을로 나누어 예술축제형식으로 개최되었습니다. 몇 해 전부터는 '헤이리판페스티벌'이라는 고유한 축제의 명칭을 사용해왔습니다.
헤이리는 마을 만들기를 마음먹은 때부터 '나눔'을 마음속에 두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창작인들이 모여 자신들만의 삶을 꾸리는 마을 주민들만을 위한 담장 높은 성(城)같은 마을은 생각지 않은 것입니다. 그 나눔의 한 방식이 예술축제인 것이지요. 그 때는 가능한 한 많은 미술 관람과 음악공연 등이 무료로도 가능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읍니다.
작가들은 자신의 사적인 스튜디오를 개방하고 평소에는 일반 방문객들의 접근 불가능했던 곳의 탐방을 허락하기도 합니다. 방문객들은 작가들의 내밀한 세계를 탐방하면서 이웃 새댁의 신혼 방을 엿보는 듯한 재미와 흥미뿐만 아니라 작가들과 직접 대면하는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웃 분들과 내년 축제를 위한 격론에서 잠시 흥분이 가라앉으면 다시 기분이 고양되는 흥분을 느낍니다. 그것은 야심하도록 머리를 맞대는 일이 아파트의 값을 올리기 위한 담합의 회의가 아니라 다가오는 해에 모두가 기뻐할 축제를 기획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눈부시게 환한 날들만을 꿈꾸지만 꿀꿀한 흐린 날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일상에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은 축제로 위안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축제가 있는 곳에서는 흐린 날 조차도 마음은 눈부시게 환한 날일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일상을 축제로 만들 권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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