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파이터 루나 박, 한국 사람인가?

[자전거세계여행 아르헨티나3탄] 아르헨티나 베나도 뚜에르또

등록 2008.12.10 10:28수정 2008.12.1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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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13일부터 11월23일까지 자전거로 아르헨티나를 여행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아, 잘 잤다. 2시간 정도 잤나?'


모처럼 배 부르게 먹고 포도주까지 마셨더니 잠이 절로 쏟아졌다. 루이스 부부도 한 숨 자러 갔기에, 나도 모처럼 마음 놓고 푹 잘 수 있었다. 새가 둥지를 틀기 좋은 머리로 식탁에 앉자마자, 로사는 간식으로 케이크와 차에 우유를 조금 섞어서(생각보다 맛이 좋다) 내온다.

아직 소화가 진행 중이지만, 대답은 오늘도 한결같다.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정말 너무 배가 고파서 어떤 음식이든지 다 먹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권하는 음식 속에 마음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도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맛있게 먹는다는 것은 그 친구의 마음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 나라의 문화 또한 존중한다는 것이 아닐까?'라는 마음으로 '위'가 허락하는 만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최대한' 많이 먹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위대(胃大)한 여행자'가 되어가고 있다.

모처럼 필자가 낮잠을 실컷 잤던 방 ⓒ 박정규


루이스 집 뒤 마당(필자가 방문한 대부분의 현지인 집들은 앞 마당이 아닌 뒤 마당이 일반적이었다.) ⓒ 박정규


루이스는 한창 복싱경기에 빠져 있다. '어! 루나 박(RUNA PARK)?' 흑백화면으로 나오는 걸 보니 혹시, 과거 우리나라 선수와 아르헨티나 선수와의 경기를 보여주는 건 아닐까? 그런데 왜 이름이 스페인어지? 스페인어 권의 해외동포 2세일까? 한국식으로 이름을 바꾸면, '박달(스페인어로 RUNA는 달을 의미한다)'이 된다.

'옛날에 재미있게 봤던 TV 프로인 <순풍산부인과>의 아역배우 이름은 '미달'이고, 거친 사나이 세계를 동경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새기고 있을 영화, 필자가 무척이나 인상 깊게 봤던 <바람의 파이터> 주인공 이름이 '배달'이니까 '박달'에도 무슨 깊은 뜻이 있지 않을까? 세계를 접수한 '복싱의 파이터 루나 박!'은 아닐까?' 한창 상상의 나래를 피니, 머리가 아파온다. 모르면 물어보자!

"일본인이에요! 루나 박은 부에노스(수도)에 있는 스타디움 이름이고요…."
    

밝은 웃음이 좋았던 루이스 ⓒ 박정규


저녁은 외식!


"뭐 먹고 싶어요?"
"다 좋아요!"
"피자는요?"
"피자도 좋죠!"

주말이라 시내에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덕분에 차도 사람 걸음걸이 속도로 움직이니 순식간에 자가용 투어로 변신! '부웅-붕-부우웅-' 50cc 오토바이 무리가 자동차 사이를 요리저리 잘도 빠져 나가고, 고등학생, 대학생으로 보이는 친구들은 식을 줄 모르는 마음 속의 열기를 식히려는지 건물 출입구, 가게 앞 여기저기에 자유롭게 모여 이야기 꽃을 한창 피우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친구들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일주일 동안은 교복과 정해진 시간의 틀 속에서 살아가다가 모처럼 주말해방을 맞이한 같은 동지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응원구호가 생각났다. '쉬어! 쉬어! 쉴 때는 쉬어야지!' 그런데, 이왕 쉬는 거 더 좋은 곳에서 쉬면 안 되겠니? 

학생들이 쉴 때는 이런 곳에서 쉬었으면 좋겠다. ⓒ 박정규


"이곳은 빈부 격차가 커요. 농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죠."
"정부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나요?"
"정부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어요."
"나쁜 정부군요. 그런데 사람들은 왜 움직이지 않는 거죠?(항의용 피켓을 든 것처럼 두 손을 위 아래로 움직이며)"

땅이 너무 커서요. 대화하기가 힘들어요…. 부에노스 주에는 전체인구의 50%가(전체 인구는 3800만) 살고 있고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어요…. 남, 북 지역은 관광지여서 연중 많은 사람이 방문하지만 중부 지역은 별로 인기가 없어요.(바로 이곳이 중부지역이다.)"
"네…. 한국은 땅이 작아요. 하지만 인터넷 기술은 좋아요. 그래서 정부가 나쁜 행동을 하면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일 수 있어요…. 인터넷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물론 인터넷에도 어두운 부분이 분명 존재하지만, '건강한 인터넷 공동체'를 통한 올바른 사회 변화의 흐름을 만드는 일에는 무엇보다 탁월한 도구라는 건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공동체가 얼마나 많은가가 곧 그 나라의 국력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더 환한 미소를 가지고 있던 로사 ⓒ 박정규


로사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인근 가정 집에서 몸이 불편한 어르신을 도와 주는 일을 하고 있고, 루이스는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운전 대를(고기용으로 팔 소를 리오 꾸아르또로 운반한다) 잡고 오후와 일요일은 자전거 핸들을 잡는다.

로사는 일이 없는 토요일이면 남편의 일터(트럭 조수석)로 출근한다. 그렇게 드라이브&데이트를 한 지가 벌써 24년째라고 하니 이 부부의 금실을 알만하다. 주말이면 하나뿐인 시집간 딸과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함께 고기 구워먹고, 자전거 타러 다니고(루이스만), 다시 평일에는 열심히 일터로.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나와 함께하는 내내 웃음꽃이 지는 걸 보지 못했다.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 나그네를 초대하는 것.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둘 다 한번 시도 해볼만한 '도전'이다. 전자는 어떤 상황이든지 웃을 수 있게 해줄 것이고, 후자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 또한 또 다른 나그네로 초대 받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금 연습중인 루이스 ⓒ 박정규


루이스 부부와 함께(왼쪽부터 필자, 로사, 루이스) ⓒ 박정규


2008년 10월5일. 아르헨티나 베나도 뚜에르또에서(Venado Tuerto, Santafe)
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 박정규 올림.

희망 여행 여행노트

1. 이동경로.  
Arias -> Venado Tuerto, Santafe 
2. 주행기록.
주행거리: 49.92 km / 주행시간: 3시간 12분 / 평균속도: 15.6km/h
3. 사용경비: 4.9 PESOS ( 1U$ = 3 PESOS)
캔 음료: 4.3, 전화(지금 어디고 출발한다고만 말하고 순식간에 끊음): 0.60
4. 음식
아침: 빵과 코코아.   
점심: 아사도 배 부를 만큼, 포도주 두잔 
저녁: 피자 배 부를 만큼, 코카콜라 목 마르지 않을 만큼.  
5. 숙소: 초대 / 루이스 집(침대) 
6. 신체: 다리 근육통 증상(피로누적, 살짝 두드려도 통증), 발바닥도 비슷함. 
7. 위생: 샤워, 자전거 옷 세탁.
8. 길 정보: 리오 꾸아르또(Rio Cuarto)에서 베나도(Venado Tuerto) 가는 약240km 거리의
8번 도로는 1차선에 갓길이 좁은 편이지만 멘도사에서 부에노스로 이어지는 메인 도로인
7번 도로에 비해 큰 트럭의 소통 량이 적고 주말에는 휘파람을 불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한산하다.    
9. 후원물품: 루이스가 노란색 자전거 상의 한 벌 선물함.(지퍼 개방형)

덧붙이는 글 | bornincorea님에 의하면, 필자가 소개한 '루나 파크'(RUNA PARK)에 대한 내용은 정확하지 않으며, 세계적인 가수들이나 아르헨티나의 유명가수들이 공연을 많이 하는 공연장 'LUNA PARK'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bornincorea님에 의하면, 필자가 소개한 '루나 파크'(RUNA PARK)에 대한 내용은 정확하지 않으며, 세계적인 가수들이나 아르헨티나의 유명가수들이 공연을 많이 하는 공연장 'LUNA PARK'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아르헨티나자전거여행 #부에노스 #자전거세계여행 #스타디움루나박 #희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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