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샘이 선생님 물건 버리래요"
 서러운 내 새끼들에게 난 돌아가리

[기고] 17일 해임된 청운초교 김윤주 교사

등록 2008.12.18 12:03수정 2008.12.1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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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에 반대해 학생들의 대체수업을 허락한 교사 7인에게 파면 및 해임 처분 결정이 17일 최종 통보됐다. <오마이뉴스>는 징계를 받은 7인의 교사 가운데 한 명인 청운초등학교 김윤주 교사가 보내온 글을 싣는다. <편집자말>

"당신네 반 애들 문자 오고 난리났다."

 

신랑 목소리에 잠을 깬다. 해직통보가 이렇게 빨리 올 줄 모르고 며칠 전에 12월 17일자로 연가신청을 했다. 그러니깐 난 해직통보서를 받은 12월 17일, 연가 중이다.

 

반사적으로 눈을 번쩍 뜨고 남편으로부터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선생님, 다시 돌아오세요, 보고 싶어요." 

"선생님 가지 마세요, 전 항상 도울 거예요."

"오늘 오신다고 하셨잖아요."

"선생님 칠판에 편지 봤어요. 어제 유희왕 카드 갖고 조른 거 죄송해요."

 

그렇다. 난 어제 해직되었다. 해직자 주제에 지금 연가 중이다.

 

연가 중에 날아든 해직통지서

 

 일제고사에 반대해 학생들의 대체수업을 허락한 교사들에 대해 중징계처분이 내려진 가운데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초등학교에서 해임된 김윤주 교사가 학생들을 부둥켜 안으며 인사를 하고 있다. 김윤주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담임선생은 지난 10월 일제고사 대신에 체험학습과 대체수업을 허락했다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해임통보를 받았다.
일제고사에 반대해 학생들의 대체수업을 허락한 교사들에 대해 중징계처분이 내려진 가운데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초등학교에서 해임된 김윤주 교사가 학생들을 부둥켜 안으며 인사를 하고 있다. 김윤주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담임선생은 지난 10월 일제고사 대신에 체험학습과 대체수업을 허락했다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해임통보를 받았다.유성호
일제고사에 반대해 학생들의 대체수업을 허락한 교사들에 대해 중징계처분이 내려진 가운데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초등학교에서 해임된 김윤주 교사가 학생들을 부둥켜 안으며 인사를 하고 있다. 김윤주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담임선생은 지난 10월 일제고사 대신에 체험학습과 대체수업을 허락했다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해임통보를 받았다. ⓒ 유성호

17일 오후 1시 50분. 서울시 교육청에 다다르자 한 무더기의 아이들이 우르르르 몰려와 나를 에워싼다. 이게 누구야? 내 새끼들이다! 아. 어제까지도 그토록 일상적이었던 이 얼굴들이 이산가족마냥 차오르는 그리움의 존재가 되어 애틋하게 내 가슴을 친다.

 

아이들도 그러하였는지, 나를 보자마자 너나없이 눈물을 터뜨린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택시를 타고 왔으며, 교감 샘이 담임이 되었으며, 교감 선생님이 선생님 물건을 버리라고 하였으며, 그래서 자기네들이 교감 샘 모르게 내 물건을 여기저기 빼돌려 챙겼으며, 선생님이 칠판에 남긴 편지를 교감 샘이 지워버렸으며, '지우지 말라'며 울었지만 교감 샘이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얘기했으며, 선생님 컴퓨터 하드도 교감 샘이 백업 받는다고 덜어냈으며….'

 

끝도 없이 오늘 하루의 일을 울며 성토한다.

 

서러움.

 

아이들의 모습에서 읽히는 마음은 바로 서러움이었다.  내 새끼들은 지금 서럽다. 자기들이 체험학습을 갔다 왔다고 담임선생님이 잘리고, 학교의 일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흘러가고, 누구도 아이들의 마음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다.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차가운 한마디에 울음조차 삼켜야 하고, 피켓시위조차 "너희가 이러면 담임 선생님이 더 곤란해진다"는 말 한마디에 이틀 만에 접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제고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 대가로 선생님을 잃었다. 서러울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서러움을 보듬어주고, 들어주고, 반응해주는 일밖에 없다. 아이들 앞에서 교감 선생님한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애들 마음에 이런 상처를 줄 수가 있느냐, 빈말이라도 '너희들 마음 이해한다, 선생님 돌아올 수 있도록 나도 노력할게, 잘되실 거야'라고 다독여서 위로해줬어야지, 어떻게 아이들한테 '현실을 인정하라'는 말을 내뱉느냐, 선생님이 말하는 '현실'이 어떤 거냐, 튀면 결국 자기만 손해라는 현실이냐. 그게 교육자가 할 소리며, 그러고도 '새 담임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냐, 우리 반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그렇게 대한다고 교육청에서 인정 좀 더 받느냐."

 

생각나는대로 지껄이다 끊고 나니 아이들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다.

 

"선생님 쵝오 짱짱짱!!!"

 

세상과 단절된 기형적 풍경

 

 일제고사에 반대해 학생들의 대체수업을 허락한 교사들에 대해 중징계처분이 내려진 가운데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초등학교 앞에서 학생들이 부당한 징계에 반대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윤주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담임선생은 지난 10월 일제고사 대신에 체험학습과 대체수업을 허락했다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해임통보를 받았다.
일제고사에 반대해 학생들의 대체수업을 허락한 교사들에 대해 중징계처분이 내려진 가운데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초등학교 앞에서 학생들이 부당한 징계에 반대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윤주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담임선생은 지난 10월 일제고사 대신에 체험학습과 대체수업을 허락했다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해임통보를 받았다.유성호
일제고사에 반대해 학생들의 대체수업을 허락한 교사들에 대해 중징계처분이 내려진 가운데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초등학교 앞에서 학생들이 부당한 징계에 반대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윤주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담임선생은 지난 10월 일제고사 대신에 체험학습과 대체수업을 허락했다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해임통보를 받았다. ⓒ 유성호

담임을 잃은 아이와 학부모가 담임선생님을 돌려달라며 하는 무언의 시위조차도 "학교 명예실추" 운운하며, 언론이 다 떠드는 내 이야기를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못하도록 압력을 넣는 기형적 풍경. 나도 속이 다 후련하다.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다.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던가.

 

표현하지 못하는 서러움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이 말 하면 선동이고, 저 말 하면 배후조종이고, 요 말 하면 중립적이지 못하고, 고 말 하면 아이들을 동요시키며, 조 말 하면 교장 선생님이 입장이 곤란해지며, 그 말 하면 학교 분위기가 안 좋아진다는 학교 사회의 이상한 풍토.

 

세상이 온통 광우병 쇠고기 반대로 뒤집혀 있는데, 학교에서만 금기어였다. 세상이 온통 이 이야기로 떠들썩해도 정작 학교에서는 하지 못한다. 그러니 교사모임은 남편·시부모·자식·신상품 따위의 신변잡기 이야기로 채워지고, 점점 더 세상과는 투명한 유리막을 친 채 세상사람들 눈에 전시되어 버리는 것이다.

 

침묵과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보신주의를 '잡음없음의 명예'로 인식하는 교육계의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 한 나는 줄곧 트러블메이커일 것이지만, 나는 이렇게 사는 내가 좋다. 솔직귀를 막고 입을 막은 채 속 터지게 사느니 할 말 하고 욕도 먹고 박수도 받고 뜨거운 동료애도 느끼며 고통도 환희도 송두리째 삶의 행로로서 여행하듯 즐기리. 그리고 언젠가는 내 집 내 학교로 돌아갈 것이다.

 

 일제고사에 반대해 학생들의 대체수업을 허락한 교사들에게 파면 및 해임 처분 결정이 최종 통보된 가운데 17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서울시민 촛불 기자회견'에서 전교조 교사, 학부모, 시민단체 회원들이 부당한 징계 철회와 일제고사 거부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일제고사에 반대해 학생들의 대체수업을 허락한 교사들에게 파면 및 해임 처분 결정이 최종 통보된 가운데 17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서울시민 촛불 기자회견'에서 전교조 교사, 학부모, 시민단체 회원들이 부당한 징계 철회와 일제고사 거부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유성호
일제고사에 반대해 학생들의 대체수업을 허락한 교사들에게 파면 및 해임 처분 결정이 최종 통보된 가운데 17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서울시민 촛불 기자회견'에서 전교조 교사, 학부모, 시민단체 회원들이 부당한 징계 철회와 일제고사 거부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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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8 12:03ⓒ 2008 OhmyNews
#일제고사 #해임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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