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의 세계인권선언 캠페인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 화면캡쳐
내 살은 여전히 '살색'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살색'이 없어진지 오래다. '살색'은 이미 '살구색'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살구색'이다. 2002년 8월 1일 인권위가 그렇게 권고키로 결정했다. 2005년 5월 17일 기술표준원은 드디어 '살색'을 '살구색'으로 바꿨다. '살색'이라는 단어 속에 내재한 차별, 인종주의를 비로소 내던진 것이다.
내 아이는 초등학생이다. 더 이상 선생님께 일기장 숙제검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비록 어린아이지만 자신만의 비밀이 있다. 선생님과 부모님께도 차마 말하기 싫은 비밀이 있고 비밀글이 있다. 선생님께 보여드리는 일기 따로, 내 마음 속 일기 따로, 내 수첩 속 일기 따로 이런 식의 '이중일기'를 더 이상 작성할 필요가 없다. 인권위의 결정 덕분이다. 2005년 4월 7일 인권위는 교육부총리에게 개선해달라는 의견을 보냈다.
인권위의 관심은 촛불집회에도 미친다. 이라크 파병결정에도 관심이 있다. 국가보안법도 그렇다. 장애인이나 동성애자, 교도소 수용자,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그렇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북한 인권도 관심대상이다. 또한 인권위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살색'이 갖는 인종적 차별성, 숙제검사로서 일기장 검사가 갖는 양심의 자유에 대한 침해, 검열제도의 위험성에 대해 염려한다. 이것이 바로 그 증거다.
국가는 왜 존재할까?낙인이론이 있다. 범죄학이론이다. 엉뚱하게도 낙인이론이 정치권에서 남용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다른 결정을 내렸다는 이유만으로, 존재가치가 사실상 부정되는 일이 벌어진다. 여기에 색깔이 더해진다. 그 순간 독립적이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국가기관마저 부정적 의미로서 정당만도 못한 정치기관으로, 때로는 이념적 시민단체 중 하나 정도로 낙인찍힌다. 한 번 낙인찍히고 나면 그 순간 그는 영원히 전과자다. 퇴행적 역사관 앞에서, 왜곡된 헌법관 앞에서 살아남기조차 어렵다.
필자는 올해 들어 때때로 필자가 가진 헌법적 사유체계가 과연 옳은 것인지 의심이 들 때가 많다. 나는 이렇게 배웠다. 자유주의의 기초는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 자유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유, 양심, 철학과 종교가 소중하다. 이것이 절대주의와 다른 점이다. 민주주의는 여러 가지 측면도 있겠지만 1인 1표제를 통해 시장만능주의가 갖는 불평등을 교정해준다. 각자 독자적인 주권을 가지고 행정부와 입법부 구성을 결정하고 정책을 결정한다. 선거를 통해 위임했다 하더라도 절차적 정의는 끊임없이 지켜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는 사이비 민주주의요, 자칫 위임독재로 흘러갈 수 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보수주의만 해도 그렇다. 특히 보수주의는 자기 스스로 정보를 획득하고,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대신 자신이 책임을 지는 이념성을 보유한다. 국가주의와는 사실상 정반대 개념이다.
지극히 단편적인 측면에서 정리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보수주의의 공통점이 있다. 두 가지다. 하나는 '국가의 존재이유'다. 국가는 오로지 시민을 위해서, 시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 시민의 인권 보장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둘은 '인간의 존엄성', 인권의 가치야말로 절대적으로 양도가 불가능하고 절대적으로 훼손이 불가능하다는 명제에 대한 그야말로 절대적 동의이다.
인권은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고, 침해당해서도 안 되며, 모든 국가기구는 자신들의 모든 노력을 경주해서 오로지 인권을 보호하는 한도 내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자유주의 헌법이론가의 대표 격이자 신자유주의의 초기 이론가인 노벨상 수상자 프리드리히 하이예크(Friedrich A. von Hayek)도 권력 분립을 통해 입법 사법 행정부가 서로 견제함으로써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자유는 곧 자유권이요, 자유권은 곧 기본권이요, 기본권이 곧 기본적 인권이다. 결국 인권이다.
우리 헌법을 해석하는 최종적 기관인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통치행위를 포함하여 모든 국가작용은 국민의 기본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한계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헌재결 1996.2.29 93헌마186)" 국민의 기본권적 가치가 무엇인가? 기본권이다. 기본권이 무엇인가? 다시 말하지만 기본적 인권이다. 곧 인권이다. 모든 국가작용은 인권을 보호하라는 준엄한 해석이다.
보수주의 헌법이론가인 허영 교수도 마찬가지다.
"
통치질서 내의 모든 권능은 어디까지나 기본권실현의 수단이고 기본권에 봉사하는 기능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통치권능은 절대로 ‘자기목적적’인 것일 수 없다.(한국헌법론, 602면)"그래서 인권보호작용은 철저히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 오로지 인간의 존엄이라는 가장 기본적 가치에서 출발해야 하고, 역시 인간의 존엄이라는 최후의 가치에서 끝나야 한다. 인권은 특정 정파나 특정 정권이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인권은 대의민주정을 실현하고 있는 모든 기관, 모든 통치작용이 나서야 한다. 인권은 양지보다는 음지에 있다. 다수파보다는 소수자에게 더 필요하다. 다수 의견보다는 소수의견을 존중하는 데 있다. 기득권자보다는 소외된 곳에 깃든다. 그래서 인종과 계급 차별을 풍자한 문학대가인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자신이 다수의 편에 서 있음을 발견할 때는 언제나 잠시 멈춰 서서 성찰할 시간입니다."검찰도 있고, 법원도 있고, 경찰도 있고, 국정원도 있고, 국민권익위도 있고, 법무부도 있고, 감사원도 있다. 헌법도 있고, 민법도 있고, 형법도 있다. 모든 기관과 모든 법이 인권 보장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아직은 인권에 낯선 곳이 있고, 인권적 감수성으로부터 버림받은 곳이 있다. 그곳에 바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존재해왔다.
법치주의가 곧 인권보호다올 들어 특별히 기초질서 확립이나 법치가 강조된다. 법의 지배를 거부할 만한 명분은 어느 곳에도 없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법의 존재가치는 인권보장을 위해서다.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개인의 이익 보호를 위해서, 혹은 공적 이익 보호를 위해서 존재한다. 법의 이익, 법익이 곧 권리의 이익이고, 권리의 이익이 인권이다. 그래서 법에 인권보장이 종속되는 사태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더 이상 악법은 법이 아닌 것이다. 소크라테스도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렇게 본다면 인권과 법치주의는 결코 모순될 수 없다. 충분히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다시 하이예크다. 굳이 하이예크를 강조하는 이유는 하이예크 이론이 현 정부에게 여러 측면에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이예크는 그의 저서 <법, 입법 그리고 자유>에서 "자유는 법의 목적이며, 법은 자유를 가능케 하는 수단"으로 상정된다. 그리하여 법은 가장 중요한 수단이며 자유의 필수조건이라고 했다(박종현, <케인즈&하이에크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124면). 현 정부가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은, 인권과 법의 지배는 어느 한 구석도 충돌하지 않는다. 충분한 규범조화적 해석과 운용이 가능하다.
현 정부의 또 하나의 이론적 기반인 선진화는 곧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다. 우리가 꿈꾸는 선진질서가 단순한 경제적 성공만을 의미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자유의 선진화, 민주의 선진화, 인권의 선진화, 삶의 선진화가 곧 선진화의 최종목표일 것이다. 그렇다면 현 정부의 이념적 기반이 되고 있는 '선진화'와 인권에 대한 무한정 존중 또한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권을 존중하기 위한 국가기구는 당연히 확장되어야 하고, 이전 정부들보다 더 존중되어야 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이명박 행정부도 지난 10월 발표한 <이명박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서 '인권'외교를 강조했다. 인권의 가치, 민주주의의 가치를 존중하고 세계와 함께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체적 과제로 '유엔 인권이사국으로서 활동을 강화'하고 '인권과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했다. 필자가 지금까지 말한 이론적 근거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실행방침을 내놓은 것이다.
인권위에 갔던 사람들, 어디로 가야 할까 인권위의 한 해 예산은 얼마나 될까? 2009년 예산이 234억여 원이다. 이에 비해 법무부의 예산 중 교정활동 예산만 하더라도 1708억여 원이다. 인권위 예산의 7배가 넘는다.
2008년 11월 15일 현재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상담건수는 21만4621건이다. 이는 2001년 3003건에서 15.4배나 증가한 수치다. 진정사건 중에서는 인권침해 구제에 대한 요구가 2만7443건이고, 차별시정 요구가 5205건이다. 1년에 평균 3660명, 하루 평균 84명이 국가인권위를 찾아온 셈이다.
왜 이들은 인권위를 찾았을까? 어떤 인권을 침해당했을까? 누구로부터 침해당했을까? 어떤 인권을 회복하길 갈망하고 있을까? 인권위가 없다면 이들을 어디로 보내야 할까?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누구에게 가서 자신의 인권 침해를 호소할까? 검찰청으로 가야 할까? 당연히 형사사건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곳으로 보낼 것이다. 경찰청으로 가야 할까? 역시 마찬가지다. 고소 고발장을 작성해야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면 법원으로? 소송으로서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했을 것이다.
다시 '살색'으로 돌아가 보자. '살색'이 갖는 인종차별적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하나? 경찰? 검찰? 법원? 아무도 여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일기장 검사가 갖는 위험성, 어디로 갔어야 했나? 법무부로? 국회로? 청와대로? 아마 이랬을 것이다. 이런 걸 가지고 뭘 여기까지 오십니까? 누가 들어주었나? 누가 대답해주었나? 누가 해결해주었나? 국가인권위원회였다. 헌법적 가치질서를 실현하기 위한 독립적 인권보호기구로서 인권위의 권한과 조직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것도 법이 아닌 행정부의 직제령으로 말이다. 이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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