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오후 경기도 과천정부종합청사에서 내년도 경제운용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정부는 미래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연일 위기 관련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내년 경제 운용 방향도 일찍 내놨다. 성장률 3%, 소비자물가 3%, 경상수지 100억 달러 이상 흑자, 취업자 10만 명 이상 증가 등이다.
강만수 장관 스스로 3% 성장을 두고 "열심히 노력해 (이룩)하겠다는 목표치"라고 할 정도였다. 대다수 경제전문가들은 한마디로 "달성하기 어려운 수치",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잘라 말한다.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현실성 없는, 낙관적인 수치만 내놓을 뿐 구체적인 정책수단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규모 재정지출과 감세를 통한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지만, 실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경기부양을 위한 수단 역시 '녹색성장'과 '한국형 뉴딜'이라는 각종 수식어를 갖다대며, 4대강 정비사업 등 주로 건설·토목공사에 치중돼 있다. 반짝 경기를 살릴 수 있을지 몰라도, 향후 지식경제기반의 성장 잠재력을 쌓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
유종일 교수는 "비효율적 건설투자로 경기 부양에 나섰다가는 과거 국가 재정의 빚만 늘어나게 만든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물론 이뿐만 아니다. 정부는 위기 극복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각종 주택과 토지, 기업, 환경 등의 규제를 대거 완화할 예정이다. 내년엔 서울 강남 등 부동산 투기 광풍의 핵심지역 등에 대한 투기지역 해제를 비롯해 분양가 상한제 폐지 등도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투기 조장과 무분별한 금융권 지원... 누구를 위한?규제 완화로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 역시 아직은 정부의 기대일 뿐이다. 경제침체와 위기 상황이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에서,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푼다고 해서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부실 건설사의 구조조정을 늦추고, '부동산 거래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나서 합법적으로 투기를 다시 조장해주는 꼴이 되는 셈이다. 물론 기업이나 경제의 체질 악화와 부작용은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또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 등이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30조원을 은행 등에 직접 지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 뻔한 공적자금에 대해 국회의 심의나 동의 절차 없이 진행됐다.
특히 정부는 최근 수년간 계속된, 무분별한 외형 확장과 무리한 주택담보대출 등으로 인한 은행 경영실패 책임을 제대로 묻지도 않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금융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최종 대부자로서 기능은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사실상 공적자금에 대한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도 없이 집행되는 것은 오히려 기업과 금융권의 구조조정 비용과 시간만 늘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부실기업과 부실 금융기관이 정부가 대주는 유사 공적자금으로 연명하는 상황에서는, 1980년대 말 버블 붕괴 이후 일본경제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도 장기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마지막 세 가지 제언김 교수의 말대로 한국경제가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는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경제주체 사이의 소통 문제를 해결하고, 하루 빨리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과정에서 드러난 소통 실패 문제는 경제 분야 전반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각종 경제 지표와 전망을 두고, 정부 산하 연구기관을 비롯해 심지어 민간 경제연구소 전문가들도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지 못할 정도다.
정부의 내년도 경제성장 전망에 대한 인터뷰 요청에, 한 민간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현 정부 들어서 유독 견제가 많이 들어온다"면서 공개적인 인터뷰는 사양했다. 국책 연구기관의 경우는 아예 정부 쪽과 다른 의견을 내는 것 자체가 사실상 금기 사항이 될 정도로 위축돼 있다.
국책 연구기관의 한 고참급 박사는 "연구자들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유지되지 못하고, 자료나 정보가 제대로 오픈되지 않은 상황이 결국 온라인 공간에서 '미네르바 현상'을 가져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시장의 신뢰를 바탕으로 지금이라도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전면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 현 경제팀 교체도 필연적이다.
김상조 교수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감세,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건설 등은 지금 당장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향후 선진각국의 경제정책 기조 변화와도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지금은 위기관리와 국정과제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정부는 건설투자를 비롯한 공공사업 중심의 1930년대식 올드 뉴딜(OLD NEW DEAL) 방식을 버려야 한다"면서 "중산층과 중소기업·영세 자영업·지역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공적자금 투입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부유층을 위한 감세보다는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감세로 (정책을 전환하고), 금산분리 완화가 아니라 금산분리를 유지해야 한다"면서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고, 사회경제의 양극화를 극복하는 동반성장의 길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한국형 제3의 길'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유종일 교수는 "정부가 현명하게 경제위기에 대응해나가면서 구조조정을 질서정연하게 추진하면 기술적으로 금융위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면서 "문제는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다 보면, 위기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서로 믿고 따르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정치적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면서 "경제위기를 하루 빨리 극복하기 위해선 갈등보다는 통합을 이끌어내는 정치가 오히려 경제를 살리는 데 가장 중요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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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야! 경제 정책 바꾸고, 통합 리더십 펼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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