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저, 최정수 옮김, 2001, 문학동네
<The Alchemist> Paulo Coelho, Alan Clarke, 1988, Harper Collins
이 책을 읽은 지 한 달 정도 지났습니다. 감동과 재미와 인생의 지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어떻게 요약해야 할지 몰라 고민만 하다가 이제야 씁니다.
그 동안 저는 바이런 케이티의 작업을 사람들과 함께 진행하면서 인생의 목표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봤습니다. 또한 나이 60이 넘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하는 원로 작가가 어린 시절 고향 얘기를 써놓은 <지상에 숟가락 하나>라는 자서전을 읽으면서 나이 드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저는 영어판을 교보문고 창원점에서 사서 읽었습니다. 지방 서점에서 영어판을 팔 정도이니 이 책이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전세계적으로 120여 나라에서 번역되고 2천만부 이상 팔렸다고 하니 (네이버 백과사전), 정말 대단합니다.
영어판도 읽기가 쉬운 편입니다. 영어를 모어로 쓰는 작가들이 쓴 유명한 영어판 소설들의 경우 외국어로서 영어를 배운 사람들이 읽으려고 하면 줄거리와 상관 없는 감정 묘사 등이 꽤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스페인어 원본을 영어로 옮겨서 그런지 오히려 쉬운 영어로 되어 있고 불필요하게 어려운 감정 묘사 등이 없이 사건이 빠르게 진행되어 이해하기 쉽습니다.
자연을 느끼기: bird-watching
맨 처음 제가 이 책을 읽으며 기분이 좋았던 것은, bird-watching, 즉, 조류 탐조에 대해 저와 비슷한 시각 때문이었습니다. 양치기 소년은 저 멀리 말똥가리가 나는 것을 보고 그 밑에 풀과 물이 있음을 알아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자연의 현상을 보고서 풀과 물의 위치를 찾는 것은 양치기 소년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의 현상을 관찰하여 그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이야말로 연금술의 첫째 요건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집니다. 나중에는 솔개 두 마리가 나는 모습을 보고 오아시스에 적군이 쳐들어오는 것도 예측해 내며, 바람의 신과 대화를 나누어 사막에 바람이 불어오게 만듭니다.
제가 여기서 흥분하는 이유는 바로 저도 이렇게 새들을 잘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새를 보기 시작한지 몇년이 지나자, 이제 저는 아주 멀리 날아가는 새도 맨 눈으로 딱 2초만 보면 새의 종류를 대충 알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나뭇가지가 무성한 숲 속에서도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인지 아니면 새의 움직임 때문에 움직이는 것인지 구별해낼 수 있습니다. 더욱이 무성한 숲 속의 여러 가지 소리 중에서도 새 소리를 구별해서 대략적으로나마 새의 종류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연을 읽을 줄 아는 것은 자연에 들었을 때 훨씬 더 큰 즐거움을 줍니다. 풀을 모를 때 지나가는 모든 풀이 잡초로 보이지만, 알기 시작하면 그 꽃잎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을 즐기게 되는 것처럼, 새를 알기 시작하면 그 날개짓 하나하나의 특징과 아름다움을 즐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을 읽는 것이 황금을 만드는 연금술의 기본이라니, 그럼 저도 연금술에 소질이 있다는 뜻일까요?
연금술과 이슬람 문화
이 소설은 이슬람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아주 좋은 교재입니다. <열대우림의 깊은 꿈>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보르네오 섬 열대우림 사람들의 문화를 배우는 즐거움을 얻었듯이, 이 책 연금술사를 읽으면서, 기행문이나 역사서보다도 훨씬 깊이 있게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중요했던 것은 연금술이 우리가 아는 연금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슬람의 연금술은 인도의 요가, 중국의 도인술처럼 내면의 신을 깨닫고 자유를 얻는 수련의 한 방법입니다. 연금술이 영성 수련 훈련방법이라는 점은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초등학교 방학숙제로 읽었던 과학도서에서는 연금술이 쇠를 황금으로 만드는 방법이며, 화학의 원조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내면의 신을 깨닫기 위한 수련 방법과 쇠를 황금으로 만드는 화학의 원류가 같을 수 있을까요?
연금술을 연구했던 사람들이 알아내고자 했던 것은 우리 몸 속에 있는 Spirit-성령, 신적인자아-을 몸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spirit이라는 단어가 왜 성령이라는 뜻과 함께 알콜, 주정, 에센스라는 뜻으로도 쓰이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즉, 이슬람에서 Spirit이란 어떤 물질, 혹은 사람이나 동물에 들어 있는 가장 핵심적인 본성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령을 일깨워 자유를 얻게 하는 요가나, 꽃잎에 들어 있는 향수를 추출하는 화학이나, 둘 다 그 물질의 정수를 뽑아낸다는 점에서 똑같은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즉, 연금술사들은 이렇게 어떤 것의 정수를 뽑아내는 방법을 연구했던 것인데, 유럽인들은 연금술사로부터 영혼을 해방하는 방법은 내팽개치고, 그저 황금을 얻는 방법이나, 알콜 제조법 등 화학적인 것만 배웠던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제가 대학교 때 과학사라는 과목을 들으면서 배웠던 얘기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활약했던 고대 그리스 등에서는 철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도 발달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기독교가 로마를 지배하면서, 기독교와 관련 없는 모든 학문은 로마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유명한 피타고라스가 종교집단의 교주였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즉, 이렇게 신과 학문을 함께 연구했던 수많은 학술단체들이 기독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 쫓겨나는데, 이들이 동쪽에 있는 이슬람으로 옮겨갑니다. 그 덕분에 이슬람에서 여러 자연과학이 발달하게 됩니다.
그 후 로마제국이 망하고 이슬람이 강성해지면서 이슬람이 스페인반도의 남부를 지배하게 되는데, 여기에 모스크를 짓고, 마찬가지로 이 모스크 안에 도서관을 만들어 여러 책들을 비치하게 됩니다. 나중에 다시 유럽이 강해지면서 스페인을 차지하게 되는데, 스페인을 차지한 유럽인들이, 이슬람의 도서관에서 찾아낸 책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이슬람어로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과학 서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과학 서적을 다시 유럽어로 번역하면서 르네상스의 철학, 과학이 다시 발달하게 됩니다.
코엘료의 연금술사라는 소설이 바로 이 곳을 무대로 삼고 있습니다. 스페인 남부지역은, 이렇게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가 섞여 있는 아주 흥미로운 곳입니다.
연금술사와 바이런 케이티
제가 이 책 소개를 쓰기 망설였던 것은, 꿈을 추구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소설 연금술사의 핵심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When you want something, all the world conspires in helping you to achieve it. 당신이 무언가를 얻고자 할 때, 온 우주가 당신을 돕는다. 이 소설에서는 이런 꿈, 희망을 'personal legend'라고 했는데, 한글 번역서에서 뭐라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 전설' 정도가 되겠습니다.
처음에 이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릅니다. 아, 그래 나도 나의 꿈을 위해 산다면 온 우주가 나를 도울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즐거움은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우울증으로 변했습니다.
첫째, 저는 저의 꿈이 뭔지를 잘 몰랐습니다. 둘째, 겨우 생각해낸 저의 꿈은 지금의 현실과 다른 어떤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저의 삶은 저의 꿈을 추구하는 것과 무관했고, 그렇다면 우주가 돕지도 않을 것 같았습니다. 마치 소설에 나오는 크리스탈 가게 주인 같은 삶이 지금 저의 현재 삶이었습니다. 메카에 가기를 소망하면서도 그 꿈을 이루고 나면 삶이 허망해질 것 같아서 그 꿈을 끝까지 유보한 채 돈만 벌고 있는 사람이 바로 크리스탈 가게 주인이었습니다.
크리스탈 가게 주인의 삶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기 전까지 이 서평을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바이런 케이티의 작업을 하면서 좀더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이런 케이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네이버 카페에서 바이런 케이티가 한 말들을 다시 새겨 들으면서 소설 연금술사에 대한 저의 생각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바이런 케이티는 이렇게 말합니다. What is is what I want. 즉, 지금 이 상태가 내가 원하는바이다. 아마도 부정하고 싶은 사람이 많겠지만, 혼자 내면으로 들어가 명상을 해보면 맞는 말입니다. 메카로 가지 않고 돈만 벌고 있는 크리스탈 가게 주인이 원한 것, 즉 personal legend는 메카로 가는 게 아니라 크리스탈 가게를 운영하는 것 그 자체입니다.
그에게는 “이슬람 교도는 일생에 한 번 메카로 가야 해”라는 should thinking이 작용하고 있는데, 이런 “~해야해 라는 생각”만 안 하고 산다면 그의 삶은 매우 즐거울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현재 상태는 우리가 원하기 때문에 만들어집니다. 예를 들어 한쪽 머리에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나지만 여행을 안 가는 이유는 여행을 안 가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행을 안 가고 있는 현재의 상태는 제가 원한 바입니다. 그러니 저의 꿈은 벌써 실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꿈을 추구하는 것과 현재를 즐기는 것의 조화
소설 <연금술사>에서도 꿈을 추구하는 것과 현재를 즐기는 것이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 여러 번 강조됩니다. 우선 “꿈을 추구하는 것”을 영어판 책에서는 “Live for the dream”이라고 하지 않고 “live out the dream”이라고 합니다. 즉, “꿈을 위해서 산다”가 아니라 “꿈을 실현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전치사 out의 의미를 한글로 번역하기가 어려운 저 단어 live out the dream이라는 글을 읽으면서 왜 for대신 out을 썼을지 여러 번 생각해봤습니다.
꿈을 위해서 (for) 산다는 것은 현재의 삶을 포기하고 미래만을 위해서 산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꿈을 실현하면서 (out) 산다는 것은 지금 현재의 삶도 즐기면서 그것이 미래를 위한 준비이기도 함을 인지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똑같은 행위를 하면서도 그 행위자의 태도에 따라 현재의 삶이 우울할 수도 있고 즐거울 수도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년이 아주 즐거웠는데, 저는 이것이 live out the dream의 전형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공부를 하지만, 저는 그 공부가 비록 대학교에 안 들어간다 해도 저한테 도움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고, 공부 그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저는 대학에 들어갈 날만을 기다린 게 아니라, 수학 한 문제를 풀면서 그 문제를 푸는 것에만 집중하고, 그 문제를 푸는 행위 자체를 즐겼습니다. 이 문제를 풀어야 대학에 간다라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사실, 그 문제 못 풀고, 성적이 잘 안 나오면 다른 대학에 가거나 전문대라도 가면 되기 때문에, 꼭 성적이 좋게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나 그런 스트레스도 없었습니다. 즉, 성적이 좋으면 좋고, 나빠도 안 좋을 게 없었습니다.
소설에서 현재와 미래가 조화를 이루는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낙타로 여행하는 장면입니다. 사막에서 부족간 전쟁이 벌어져, 그들과 만나게 될까 걱정하던 주인공에게, 그 낙타를 몰던 몰이꾼이 말합니다. “저는 오직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할 뿐입니다. 누가 전투를 걸어온다면, 저는 또한 전투 자체에 집중할 것입니다.” 처음에 했던 우주가 돕는다는 말도 멋있지만, 이 말 또한 얼마나 멋집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꿈을 향해 살아갈 때에도, 그 여정은 한걸음 한걸음에 불과하며,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그 한걸음이 결국은 꿈을 이루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걸음씩 가다가 꿈을 못 이루면 어쩌죠? 아마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바로 바이런 케이티가 말하는 것처럼 Should thinking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즉, “나는 꿈을 이루어야 해”라고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꿈이야 이루면 좋겠지만, 못 이뤄내도 그만입니다. 내가 그 꿈을 꼭 이루어야 할 이유가 뭔가요? 없습니다. 그러니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긴 하지만, 중간에 그만두면 그것 또한 그것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이 소설에서는 매우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주인공이 오아시스에 머물던 중 솔개 두 마리가 나는 모양을 보고는 적들이 오아시스를 침공할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예지한 것을 오아시스의 지도자들에게 말하니, 그 지도자들이 말하기를 그게 맞다면 적들의 수에 비례해서 황금을 주겠지만, 그게 틀렸다면 주인공의 목을 벤다고 합니다.
자, 이집트에 가서 보물을 찾기로 되어 있는 이 주인공이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운명에 처했는데, 주인공은 괜히 자신의 예언을 지도자들에게 말한 것을 후회할까요? 사막의 바람이 그에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To die today is not worse than to die tomorrow. 오늘 죽는 것은 내일 죽는 것보다 나쁘지 않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굳이 내일까지 살겠다고 고집할 이유가 없습니다. 자신의 목숨에 대한 집착마저도 사라질 때, 그래서 꿈이라는 거 되면 좋고 안 되도 나쁠 것 없다고 초연해질 때, 우리는 바로 꿈을 추구하는 것과 현재를 즐기는 것을 조화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나의 꿈
지난 1년간 저는 뭘 하겠다는 꿈이 별로 없는 상태로 살았습니다. 지금 현실이야말로 바로 내가 원하는 바이다라는 바이런 케이티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하다 보니, 굳이 뭔가를 꿈 꿀 필요성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스트레스를 아주 많이 줄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연금술사>를 읽고, 꿈을 추구하는 것과 현실에 만족하는 것이 모순되지 않음을 발견하고는 소박하지만 구체적인 꿈들을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마당 넓고 숲이 가까이에 있는 곳에 집을 짓고 사는 것입니다. 아, 이 생각을 하면서 머리 속으로 집과 그 주변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아주 즐겁습니다. 우리 집은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벽을 두껍게 짓고, 작게 지을 것입니다. 그 대신 볕이 잘 들도록 창을 크게 달고, 좌식 생활에 맞게 창의 높이도 낮출 것입니다.
울타리는 탱자 같은 생나무 울타리면 좋겠습니다. 주거용 건물 옆에 따로 요가원 건물을 또한 적당한 크기로 지어 벗들과 함께 요가며 명상도 같이 하고 싶습니다. 마당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어 여러 종류의 새가 날아들도록 할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멋집니다. 저는 이 꿈을 위해서 아주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의 삶도 즐기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