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을 애용하는 초등학생들은 '문화상품권'을 선호한다.
구자민
초등학생 한 명이 서점 문을 박차고 달려 들어왔다. 그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혀있던 5000원짜리 하나를 꺼내 주인에게 건넨다. 주인과 손님 사이엔 말이 없다. 주인은 서랍을 열어 돈에 상응하는 도서상품권 하나를 준다. 자연스럽다. 한두 번 있었던 거래가 아닌 게 분명하다. 아이는 상품권을 받자마자 곧장 다시 서점 문을 박차고 어디론가 향한다.
평소에도 초등학생이 자주 서점에 들르는지 주인에게 물었다. 자주 오는 단골손님이란다. 궁금증이 생겼다. 동네슈퍼에서 껌을 사듯, 그렇게 동네서점에서 도서상품권을 사들고 나가는 초등학생들이 한둘이 아니란다. 서점 주인에게 좀 더 물었다.
"그거 전부 게임 아이템을 사려고 하는 거지. 하루에도 초등학생 중학생 다 합쳐 20명 정도가 사가는 것 같애. 처음에는 나도 잔소리해봤지. 솔직히 장사하는 입장이라 크게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내 말은 전혀 먹히지가 않아. 듣는 둥 마는 둥."초등학생은 문화상품권의 보고?경남의 모 대학교 앞에 위치한, 비교적 큰 서점 축에 드는 G 서점에도 들러서 물었다. 역시 상품권 취급점이다. 정말 학생들이 그렇게 많이 구입하는지 궁금했다.
"하루에도 몇 명씩 다녀간다. 주로 초등학생 중에서도 고학년들이 많이 산다. 인터넷 충전을 목적으로 사간다. 실제로 구입한 상품권으로 도서를 구입하는 비율은 10%도 안 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상품권으로 서점에서 직접 책을 구입하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워낙 온라인 문화가 발달해서…."요즘 초등학생들은 문화상품권을 많이 산다. 상품권을 사이버 캐시로 바꿔 게임아이템을 구입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네 PC방에 들려서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한 초등학생에게 문화상품권을 사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문화상품권요? 캐시로 바꿔서 아이템 사려고요. 그런데 저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사요."게임에 정신을 빼앗긴 터라, 더는 물어보지 못했다. 학원을 마치고 귀가하는 한 초등학생은 받은 용돈을 아예 문화상품권 구입에 모두 소비한다고 한다. 부모님이 그 사실을 아는지도 물었다. 간단한 답변이 날아왔다.
"모를걸요!"'문구세트 사절, 문화상품권 밖에 안 받음'반면, 초등학교 6학년생 A군은 "부모님도 다 알아요!"라며 당당하게 말했다. 게다가 도서상품권은 생일선물로 받고 싶은 물건 1위란다.
"애들이 다 알아서 (상품권) 사줘요. 부모님한테도 선물 대신 상품권을 받는 적도 있고요. 한번은 생일날 애들이 사준 상품권을 다 모았더니 제 아이디로 등록된 캐시가 10만원어치가 된 적도 있어요."당연한 듯, 그리고 자랑하듯 말했다. 나도 게임을 자주 하는 편이라서 뭐라 말할 입장은 못 됐다. '이놈들 때문에 내가 온라인 게임에서 번번이 졌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좋은 아이템을 들고 있는 유저들에게 이길 확률은 낮다. 문화상품권이 도서·음반·영화 등 다양한 용도가 있는 것에 대해서 무지한 학생도 있었다.
"전 아예 생일날 초대장에 문구용품은 안받는다고 써요. 선물은 무조건 상품권만 받는다고 하고요. 당연히 게임 아이템이죠. 그거 말고 다른 용도가 있나요?"좀 너무 하다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게임도 어찌 보면 문화의 일부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분명히 교육적일 것 같지는 않다. 초등학교 근처에서 떡볶이며 어묵 등을 파는 분식점을 운영하시는 40대 아주머니에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었다. 그녀는 역시 슬하에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었다. 이미 초등학생들이 상품권을 온라인 캐시로 바꿔 쓴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도서상품권을 (아이템 사라고) 딸에게 사준 적은 없지만, 다 알지. 요즘 초등학생들 다 그러는 거…. 애들 휴대폰은 대부분 부모가 정액제 요금제로 끊어주니까 그걸로 결제 못 하니까 상품권으로 대신 사는 거거든. 사실 컴퓨터 게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지. 애들이 너무 좋아하니까 말릴 수도 없고. 왜 말릴 수 없나 하면 아줌마들이 드라마를 안 보면 대화에 끼질 못하는 것처럼, 너무 말리면 애들 친구가 없어질까봐 그러는 거야."분식집 한편에서 어묵을 드시던 아저씨 한분도 대화를 엿듣더니 말씀을 덧붙였다.
"요즘 애들 머리가 너무 비상해.""순수하게 게임 자체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