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싸다던 '오세훈 아파트' 과장 광고?

[제보취재] 시프트 값, 전셋가 폭락으로 주변 시세와 비슷.. SH공사 '곤혹'

등록 2008.12.29 09:06수정 2008.12.3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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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트 홍보에 등장한 무대리 SH공사는 장기전세주택인 '시프트'의 TV 광고에 인기 만화 캐릭터인 '무대리'를 활용하고 있다. 무대리는 시프트에 대해 "주변 전세 시세의 80% 이하"라고 강조했다. ⓒ SH공사 홍보영상 캡쳐


"어제 공고한 시프트(Shift) 청약내용 중 재건축 시프트인 정릉라온유아파트의 일반 전세가(임대보증금)가 부동산사이트에서 현재 최저가로 1억4000만원까지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시프트 전세가는 1억4500만원이네요. 완전히 역전이죠. 이는 서울시와 SH공사의 현장 상황을 무시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표본이라 여겨집니다."

지난 16일 송아무개(48·회사원)씨가 <오마이뉴스> 제보란에 올린 글이다. 시프트는 서울시와 SH공사가 무주택서민과 실수요자를 위해 공급하는 장기전세주택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야심작이라고 해서 '오세훈 아파트'로도 불린다. 서울시와 SH공사는 인기 만화 주인공 '무대리'를 내세워 "주변 전세 시세의 80% 이하 비용으로 최장 20년까지 내 집처럼 살 수 있다"는 내용의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그런데 그 시프트 전세가격이 오히려 인근 민간아파트보다 비싸다는 것이다. 제보 내용이 사실이라면 대선주자로도 거론되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경력에 흠집이 날 수도 있는 상황. 도대체 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일까? 기자가 직접 들여다봤다.

"시프트 인기 오르니까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결국 아파트는 힘들 것 같아서 다세대 주택으로 알아보고 있다."

지난 15일 SH공사의 시프트 공고문을 본 송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송씨가 살고 있는 옥수동에 재개발 사업시행인가가 난 것은 지난해 10월, 올해 9월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됐다. 송씨가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 6가구 중 2가구가 이사를 가는 등 이미 주민들 절반 이상이 빠져나간 상황.

무엇보다 송씨는 대학생인 두 딸의 귀가가 늦어지기라도 하면 한적한 밤길에 무슨 일이나 있지 않을까 안절부절이다.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이 지역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동안 양평동이나 은평뉴타운 등 시프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송씨는 기다렸다. 직장이 있는 쌍문동에서 가장 가까운 정릉라온유아파트 입주를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형편이 어렵긴 했지만 시프트 전세금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 전세금 1억원에 그동안 저축한 2000만~3000만원 정도를 보태면 충분할 거라고 믿었다. 올 여름에 나왔던 양평역 인근 시프트 전세금도 1억3000만원 정도였다. 게다가 금융위기 한파로 전세가격이 눈에 띄게 하락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정작 SH공사의 공고문을 본 송씨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이 기다렸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가격이 너무 높으니까 실망스럽다. 어떻게 보면 우롱당한 것 같다. 완전히 장난하는 것 아닌가. 가격면에서 전혀 주변 시세를 고려하지 않았다. 시프트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인기가 오르니까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무주택 서민들을 위한 정책이라면서 '20년 살게 해주는데 그 정도 못내냐'는 오만한 발상 같다."

서울시와 SH공사는 송씨가 입주를 희망했던 성북구 정릉동 '라온유' 시프트(전용 84㎡) 23채를 비롯해 강서구 방화동에 '마곡푸르지오' 23채(전용 59㎡ 17채와 84㎡ 6채), 강남구 신사동에 '신사래미안' (전용 84㎡) 3채를 시프트로 공급하고 있다. 특히 강동구 강일지구의 경우 전용 59㎡짜리 904채를 비롯해 1652채의 시프트를 대량 공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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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트를 잡아라! SH공사 시프트 청약 접수 첫날인 23일, 입주희망자들이 접수대로 몰려들고 있다. ⓒ 최경준


"시프트 비싸다고 난리"... 민간아파트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비싸거나

23일 오전 9시 20분경 서울 개포동 SH공사 1층 로비. 시프트(일반공급) 청약신청 첫날이었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20여 명의 시민들만이 접수대 앞을 서성이거나 책상에 앉아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강일지구 전용 59㎡짜리 시프트를 신청한 김아무개(63)씨. 그는 "없이 사는 사람에게는 장기전세로 들어가는 게 아무래도 편하지 않겠느냐"며 "전세금을 많이 올려 달라고 하지도 않을 것이고, 나가라는 말도 하지 않을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전세금을 올려주지 못해 무려 15번이나 이사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김씨지만 이번 강일지구 시프트 전세금에 대해서만큼은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더니 기자에게 귓속말로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에서 다들 (시프트 전세금이) 비싸다고 난리"라고 속삭였다. 그가 굳이 귓속말을 한 것은 그렇지 않아도 경쟁률이 높다는데, 괜히 불만을 얘기했다가 눈 밖에 나서 당첨이 안 될 것을 염려한 노파심 탓이다.

강동구 고덕동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김영희(61)씨도 "요즘 집값(전세금)이 많이 내려서, 솔직히 여기(강일지구) 아파트 전세 들어갈 돈이면 우리 동네에도 갈 곳이 많다"면서도 "하지만 일반 주택으로 가면 융자 받기가 힘든데, 여기(시프트)는 융자를 받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라온유' 시프트를 신청한 이승은(45)씨는 "나중에 다시 (전세금이) 오를 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시프트) 전세금이 (주변 시세보다) 싸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현재 살고 있는 곳과 가까워서 신청했는데, 당첨이 안 되면 어차피 시세가 비슷하니까 다른 아파트로 가면 된다"고 말했다.

최장 20년에 이르는 전세기간, 전세금 인상 연 5% 이내로 제한, 입주 후에도 쓸 수 있는 청약저축 통장, 분양주택과 동일한 품질의 집 등 무주택서민의 시선을 끌게 하는 시프트만의 특장점은 많다. 그러나 다른 건 몰라도 '시프트가 주변 시세보다 20% 이상 싸다'는 서울시와 SH공사의 대대적인 광고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거나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국민은행 'KB아파트시세'에 따르면, 25일 현재 정릉동 라온유 민간아파트(전용 84㎡)의 전세금 일반 거래가는 1억6500만원이다. 따라서 SH공사는 80%인 1억3200만원 이하의 전세금으로 '라온유' 시프트를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SH공사는 이보다 1300만원이 높은 1억4500만원을 산정했다.

특히 국민은행 사이트에 게재된 일반중개업소 전세물량 현황을 보면, 총 70건의 라온유 민간아파트 매물 중 전세금 1억4000만원짜리가 4건(급매물 1건 포함)이나 포함돼 있었다. 적어도 현 시점에서 '시프트 역전세'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주변 시세보다 20% 싸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더 높은 전세금이 산정된 셈이다.

다른 시프트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아직 시세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강남구 '신사래미안'의 경우, 인근 중개업소에는 최저 2억5000만원에서 최고 3억6000만원까지 다양한 전세 물량이 나와 있었다. 특이한 점은 12층짜리 아파트인 '신사래미안'에서 시프트로 지정된 세대가 모두 1층에 몰려 있다. 이 아파트 뒷편은 2.5층 높이의 언덕길. 2차선 넓이의 언덕길에 서서 아파트를 내려다보면 시프트로 지정된 집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인근 K부동산의 한 중개업자는 "신사래미안 전세금이 3억5000만원에서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3억원 대 안팎으로 (시세가) 형성돼 있다"며 "사람들이 (입주하기) 꺼리는 1층의 경우 2억6000만원 정도를 시세로 본다"고 설명했다. 2억6000만원의 80%는 2억800만원이다. 그러나 SH공사는 신사래미안 시프트를 2600만원이나 비싼 2억3466만원에 공급하고 있다.

"주변 시세의 80%"라는 서울시와 SH공사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던 입주희망자들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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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표정으로 시프트 청약 신청서를 작성하는 입주 희망자들. ⓒ 최경준


"부동산 한파가 시프트까지 미칠 줄 몰랐다"

그러나 당혹스럽기는 서울시와 SH공사도 마찬가지다. 시프트 사업을 시작한 이래 이처럼 부동산 가격이 급변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시프트 전세금 산정이 문제가 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뱅크에 따르면, 서울 지역 아파트 전셋값은 3.3㎡ 당 평균가격이 지난달 말 현재 599만원이다. 이는 서울 전셋값이 최고점이었던 지난 9월(609만원)에 비해서 10만원, 지난달(605만원)보다 6만원이 각각 내린 수치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실물경기 침체와 올 초 전세금 급등에 따른 가격 조정 등 불확실성 증가가 최근 전세가 하락세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문영수 SH공사 장기전세팀장은 "예전에는 이렇게 부동산 시세가 요동을 치지 않았다"며 "금융위기 한파가 시프트에까지 영향을 끼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허탈해 했다.

SH공사는 시프트 전세금 산정을 위해서 공급하고자 하는 주택의 규모와 건립연도가 유사하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민간아파트를 기준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라온유' 시프트는 인근에 있는 힐스테이트와 현대홈타운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SH공사는 가격 조사 시점 당시 KB아파트시세와 '부동산 114'를 통해 두 아파트의 실제 거래가격을 산출했고, 그 가격의 80%인 1억4500만원을 '라온유' 시프트 전세가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다만 강일지구의 경우는 단지 규모가 워낙 크고 기준으로 삼을 만한 인근 아파트가 없어서 고민 끝에 민간업체에 용역을 줬다고 한다. 

시프트 전세금 산정을 위한 가격 조사는 일반적으로 청약 공고를 내기 10일 전쯤 실시한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28일에 실시됐다. 당초 공고 계획이 12월 8일로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SH공사의 내부 사정으로 공고가 일주일 뒤인 15일로 미뤄졌다. 이게 화근이 됐다.

가격 조사 시점으로부터 청약 공고 시점까지 15일 이상의 간극이 생기면서 그 사이에 전세금 시세가 변한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가격 변동이 심한 때에는 그 폭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번 시프트 가격 조사 시점은 전세가가 한창 하향세를 달리고 있던 때였다.

때문에 시프트 청약 공고에 게재된 전세가는 조사 시점 당시 일반 시세의 80%를 훨씬 웃돌게 됐고, 심지어 일반 시세와 비슷하거나 역전세 현상까지 나타난 것이다. 입주희망자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시프트 전세가격에 변화된 시세를 다시 반영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문영수 팀장은 "입주희망자들에게 한 번 약속한 사항이기 때문에 이미 공고가 나간 시프트 전세가격을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문 팀장은 앞으로 청약 공고가 예정돼 있는 시프트 물량에 대해서도 "전세가격 산정이 쉽지 않아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프트 입주 시점의 전세가격 변동도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고가 나가고 보통 3~4개월 뒤에 입주하는데, 그때 주변 시세는 또 달라질 것이다. 지금보다 올라갈 수도 있도, 내려갈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 어떻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재계약 시점인 2년 후에도 마찬가지다. 시프트는 주택을 소유 개념이 아니라 주거 개념으로 바꾸기 위한 사업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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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공사가 공급하는 정릉동 '라온유' 시프트 ⓒ SH공사


"시프트보다 싼 곳 있으면 그쪽으로 가면 되지 않나?"

현재로서는 입주 뒤 2년 후 전세 재계약을 할 때 변화된 시세를 반영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시프트 전세금 증감 조정은 전세금의 5% 이내에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2년 후 주변 전세가격이 폭등해도 시프트 전세금은 5% 이상 올릴 수 없다. 문제는 2년 후 주변 시세가 아무리 폭락하더라도 역시 시프트 전세금은 5% 이하로 낮출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주택공급과의 한 관계자는 "시프트는 '계속 거주'를 보장하는데, 그런 것은 다 도외시하고 '지금 전세가격이 떨어졌으니, 다 맞춰달라'고 하면 공공임대 시장이라는 의미가 없지 않느냐"며 "SH공사보다 더 싼 물량(주택)이 있다면, 그쪽으로 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입주자 처지에서 보면 서울시의 이 같은 답변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시프트는 무주택서민을 위한 정책이라며 생색을 내고, '주변 시세보다 80% 저렴한 전세금'을 상징처럼 홍보했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초래되자,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라'는 식의 배짱을 부리는 셈이다. 가격이 아무리 요동쳐도 결국 입주희망자들은 시프트를 선택할 것이라는 안이한 인식도 드러냈다.

"시프트는 가격 결정과 공고 등 엄연히 지켜야 할 법정업무 절차가 있다. 그것을 무시하고 주변 시세와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 결과는 청약 접수가 다 끝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시프트가) 민간시장과 경쟁하면 가격, 지속적인 거주 보장, 전세금 인상의 한도 등에서 분명한 메리트가 있다."

하지만 정릉동 '라온유' 시프트를 신청한 정초희(55)씨는 "주변 시세보다 싸다, 안 싸다는 논란을 떠나서,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제도라면 그에 걸맞게 전세금을 더 저렴하게 해야 한다"며 "적은 평수를 더 확보해서 다양한 평수를 공급하는 등 서민들의 진입 문턱을 대폭 낮춰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사실 이번 논란은 시프트의 태생 때부터 이미 예고됐다고 할 수 있다. 시프트는 일반 민간아파트 전세금이 계속 높게 유지되거나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탄생했다. 따라서 민간아파트 전세금 급락에 대한 대비책은 없었던 셈이다. 서울시와 SH공사가 내건 '주변 시세의 80% 이하 공급' 구호가 '허위, 과장' 광고가 되지 않게 하려면, 신속한 변동 시세 적용 등 제도적인 보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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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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