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가는 길 만난 사람, 김남주와 고정희

[겨울여행2] 추억이 깃든 해남 땅끝마을에서

등록 2008.12.27 14:35수정 2008.12.2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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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시인이 심혈을 기울였던 '또 하나의 문화'. 책들이 선물처럼 놓여 있었다. ⓒ 김현숙

고정희 시인이 심혈을 기울였던 '또 하나의 문화'. 책들이 선물처럼 놓여 있었다. ⓒ 김현숙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고 나서 후회하는 일'과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이 있는데 하고 나서 후회하는 일보다는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겨울바다가 그리웠다. 어머니의 품 같은 바다의 그 너른 품이 한없이 그리웠다. 그 너른 품에 나를 풀어놓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일상으로 나서지를 못하면서 자꾸 시간만 흘러갔다. 이러다가 행동하지 않고서는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 무작정 길을 나섰다. 마음만 먹으면 무슨 소용이랴. 몸이 움직여야 하는 것을. 그러나 마음을 먹지 않으면 몸이 어찌 알고 움직일 수 있으랴. 마음을 먹은 다음 몸을 움직이니 둘은 기실 하나일 것이다. 그동안 늘상 마음뿐이어서 떠나질 못했다.

 

나는 자유로움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를 구속하는 것은 가능한 한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내게 만일 구속이 없었다면 풍선처럼 둥둥 떠다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없게 하는 이런 일상의 구속과 자유로움이 함께 있어 늘 아쉬움은 남지만 나를 나답게 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를 출근시키고는, 오늘이 아니면 겨울바다에 갈 수가 없을테고 그러면 후회로 남을 것 같아 무작정 터미널로 향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떠나는데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그 기분이 참 좋았다. 목적지는 해남 땅끝마을이었다. 광주에서 출발하여 3시간이면 도착한다는 토말(土末). 나는 순수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무척 사랑하지만 유일하게 우리말보다 한자말을 더 좋아하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토말(土末)이다.

 

토말 가는 길에 김남주 생가 안내판이 나타났다. 비운에 간 천재시인 김남주. 숙연해졌다. 그의 시낭송을 들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가슴이 아렸다. 조금 가니까 고정희 시인의 생가 안내문이 나타났다. 고정희 시인은 만난 적이 없지만 그녀가 남겨놓은 시에 빠져서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무리해서 그녀의 생가를 찾아갔다. 그곳엔 모든 것들이 고인의 손때가 묻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옆에 올케가 살고 있어서 고택 냄새가 나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고 시인이 반기며 걸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의 체취를 느끼듯 온 방을 돌아본 뒤 방명록에 사인을 하고 나왔다.

 

고정희 시인이 생전에 사용했던 집기들. ⓒ 김현숙

고정희 시인이 생전에 사용했던 집기들. ⓒ 김현숙

고정희 시인의 서가. ⓒ 김현숙

고정희 시인의 서가. ⓒ 김현숙

생가에 대한 나의 느낌은 각별하다. 그곳에는 아직도 그 혼이 머무르고 있어 혼이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머나먼 곳에 있는 김유정역을 그토록 가보고 싶어하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다시 버스를 타고 달리니 윤두서의 고택도 나왔고, 달마산 미황사, 허준 유배지도 나왔다. 버스가 아니었으면 모두가 귀한 문화유적지로 하나하나 들러서 답사하고 싶은 곳이었다. 아쉬움이 많았으나 오늘의 목적은 겨울바다였으니 욕심을 버렸다. 가는 길 양쪽엔 갈대들이 바람에 한 방향으로만 흔들려 마치 나를 향한 환대처럼 느껴져 행복했다. 겨울들녘도 소나무며, 봄동, 청보리순, 마늘순으로 푸르렀다. 억새들의 머리는 겨울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땅끝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아줄까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적하다 못해 적막하기 그지없는 송호해수욕장은 파도만 왔다갔다 하고 있어 겨울바다의 쓸쓸함을 한껏 풍기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 이제는 아득한 시간속에 멈춰버린, 첫 발령을 받았던 그 해 여름, 눈 시리도록 바라보았던 곳, 파도소리에 잠 못 이루었던 곳, 아련한 추억이 담겨있는 송호해수욕장이었다.

 

땅끝마을에 들어서자 '희망의 땅끝'이라고 쓴 돌머리가 보였다. 한반도의 최남단, 북위 34도 17분 21초 동경 126도 31분 33초의 땅끝마을. 기억도 가물거리는 7,8년 전에 완도에서 보길도행 페리호를 타고 들어갔다가 해남 땅끝으로 나왔었다. 선착장도 없이 갯바위에 아슬아슬하게 내렸던 이곳, 우리나라 육지의 끝을 밟은 감격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여러 번 했으나 아무도 받지 않아 두고두고 아쉬웠던 곳이기도 하다.

 

파도가 일렁여서 내리기조차 무서웠던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항구도시처럼 선착장도 잘 만들어져 있었고 방파제가 길게 이어져 있었으며 방파제 끝에는 높은 등대가 서있었다. 이제는 관광지로 변모되어 관광버스가 찾아올 정도여서 격세지감을 느껴야 했다.

 

40여 분을 등산하듯 전망대를 향해 걸어서 올라갔다. 사방으로 보이는 것은 옥빛 바다였다. 바다에서 산을 오르는 기분은 색달랐다. 눈으로, 가슴으론 바다를 보며 몸으론 산을 오르는 기분은 최고였다. 사전 정보 없이 올랐다가 시인들의 시비를 만나니 두둑한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었다. 시비에 새겨진 시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걸었다. 이곳에 와서까지 시를 만나니 행복했다. 송수권, 김지하, 오세영, 황동규, 고정희, 고은 시인의 시들이 소박하게 단장하여 반기고 있었다. 남도를 노래한 시어들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와 시비 앞에 오래 머물렀다.

 

땅끝에서 본 고은 시인의 시. ⓒ 김현숙

땅끝에서 본 고은 시인의 시. ⓒ 김현숙

남쪽으로 남쪽으로 마음을 주다가

문득 두 손 모아

절하고 싶어라

그림 같은 산과 들에

절하고 싶어라

무릎꿇고 남도 땅에

입맞추고 싶어라(고정희의 '남도行' 일부)

 

땅끝에 왔습니다

살아온 날들도 함께 왔습니다

 

저녁

파도소리에

동백꽃 집니다(고은의 '땅끝' 전문)

 

지하 1층 지상 9층(385m) 전망대에 오르니 사방이 온통 푸른 바다였다. 막힌 가슴이 탁 트였다. 바다를 보면 언제나 가슴이 트인다. 이는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페리호는 그 푸른 물살을 하얗게 가르며 달리고 있었다. 배를 타고 싶었다. 땅끝에서 보길도는 50분, 저 배를 타면 윤선도의 혼을 만날 수 있는 보길도로 나를 금방 데려다 줄 것이었다. 눈이 시리도록 고운 옥빛 바다를 가슴에 담고 또 담았다. 살아가다가 문득 외로워질 때, 문득 슬퍼질 때, 힘들 때 다시 꺼내보기 위하여.

 

전망대에는 관광 해남을 설명 곁들인 사진으로 잘 전시해놓았다. 일몰, 일출이 아름다운 곳. 그 장관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벅찰까.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 2천리, 해서 우리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일컬어왔다. 땅끝에서 강릉은 558km, 서울은 462km, 부산은 330km, 순천은 158km, 광주 135km, 목포 101km. 아침까지만 해도 135km 저쪽에 있었는데 나는 지금 135km를 떠나와 이곳에 있다. 시공을 달려서 이곳에 있다는 사실에 더없이 행복하다.

 

긴 방파제를 따라 걸었다. 햇살은 봄처럼 따스했으나 바닷바람은 생각보다 거셌다. 뭍에 부는 바람과는 결이 달랐다. 비릿한 갯내음이 코에 스미자 바닷가에 정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파제 끝에 있는 등대에 기대고 서있으니 움직이는 파도 때문이었을까 마치 배를 타고 있는 것처럼 흔들렸다. 배가 지나간 자취는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로 출렁이는 물위에서도 오래도록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정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이 젖어왔다. 바다의 너른 가슴에 안기고 싶은 충동도 일었다. 그토록 바다가 그리웠던 것은 아마도 이런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적셔진 가슴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다. 오전에 출발하여 4시15분차로 귀향길에 올랐다. 한나절로는 너무 짧아 아쉬움을 남겨준 여행이었으나 이렇게 훌쩍 떠나올 수 있었음에 마음 깊이 감사했다.

2008.12.27 14:35 ⓒ 2008 OhmyNews
#토말 #땅끝 #고정희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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