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 나운동 주점골목 풍경.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조종안
퇴근해서 오면 함께 시내로 나가자는 얘기까지 나왔지만 꼭 가자는 확약은 하지 않고 아내는 출근을 했고, 저는 글 정리와 집안 청소도 하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브닝(저녁) 근무인 아내는 평소 같으면 밤 11시 조금 넘으면 집에 도착하는데 자정이 넘어가는데도 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닌지 궁금했으나 전화를 하기도 그렇고 해서 엉덩이를 들먹이며 기다리는데 휴대폰 소리가 울렸습니다. 열어보니 아내의 전화번호가 찍혀 있더라고요. 순간, ‘오늘밤 데이트는 틀렸구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평소 같으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저에게 나가자고 할 터인데 전화를 했으니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받는 순간 “차를 문 앞에 대고 있으니까 빨리 옷 입고 나오세요.”라는 반가운 목소리가 얼굴에 미소를 짓게 했고 마음을 들뜨게 했습니다.
생각지 않은 드라이브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데이트가 무산되는 줄 알고 실망했던 순간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습니다. 새벽 1시가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고향에서 아내와 처음 있는 성탄 전야 데이트라서 더욱 흥분이 되었습니다.
나포에서 군산 시내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약 20분, 12년 된 늙은 티코라서 황소바람이 들어와 승차감을 말하기도 그렇지만, 4차선 도로를 쌩쌩 달릴 때는 얼마나 신통한지 모릅니다. 털털거리면서도 시간에 맞춰 목적지에 도착할 때는 고마운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서해안 고속도로가 지나는 금강대교와 하구둑을 지나 시내로 접어드니까 새벽 공기가 차갑기는 했지만 가슴이 탁 트이면서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시내로 들어서서 옛 시청 건물 앞 중앙로를 지나는데 70년대 초 이성당 제과점에서 망년회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위관장교시절 군산비행장에서 근무하던 친구가 양주 한 병을 들고 나왔는데 마땅하게 갈 곳이 없어 거리를 헤매고 다녔던 그때가 떠올라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나운동지구가 조성되지 않았던 70년대까지만 해도, 12월31일과 크리스마스 이브에만 통행금지가 해제되었기 때문에 해방감을 느낀 시민과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새벽까지 인파로 붐볐거든요.
차를 세우고 잠깐 내리니까,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로 군산의 상징이었던 구 시청 건물과 눈에 익숙했던 간판들이 보이지 않아 허전했습니다. 더구나 인기척이 없는 거리는 황량하기 이를 데 없었고 별빛이 없는 새벽하늘은 음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황량하게 변해버린 중앙로를 뒤로하고 계획에 없던 은파 유원지로 갔습니다. 가족동반은 자주 했지만, 아내와 단둘이는 20년도 더 되는 것 같아 가슴이 설레고 요상한 감정이 솟구치더라고요.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딸이 생각나면서 ‘함께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말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나왔습니다.
은파 유원지 드라이브코스를 돌아 젊은이들이 생맥주집에서 수다를 떠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는 나운동 주점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거리를 배회하는 젊은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젊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생각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제가 마음에 드는 피자집이 있어 들어가자고 하니까 아내가 “어른들은 없고 고삐리(고교생)들만 보이니까 쪽(얼굴) 팔려서 못 들어가겠네.”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어른들은 집에 있고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거라고...” 하니까, 그래도 그렇지 못 들어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분위기 좀 잡으려고 했는데 미치겠더라고요. 젊은이들 틈에 끼어보려고 찬바람도 마다않고 나왔는데, 아내와의 생각차이를 좁힐 수 없어 흥청대는 거리를 구경한 것만으로 만족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렵게 이루어진 통닭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