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주인공 되는 거지, 뭐
 남들이 이런 경험 해보겠어?"

[2008 올해의 뉴스게릴라상④] 강원도 정선의 '강기자' 강기희

등록 2008.12.29 14:48수정 2008.12.3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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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2008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로 강기희 강인규 김갑수 이윤기 기자를 선정했습니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은 한 해 동안 최고의 활동을 펼친 시민기자에게 주어지는 상이며, 이번 수상자부터 부문 없이 선정했습니다.

시상식은 2009년 2월 6일 <오마이뉴스> 상암동 사무실에서 치러집니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100만원씩을 드립니다. 이 자리에서는 <2009 2월22일상>과 <2008 특별상>, 시민기자 명예의 전당, 제3회 대학생 기자상 시상식도 함께 열립니다. 수상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인사를 드립니다. [편집자말]
사람들은 12월이 돌아올 때마다 유독 한 단어에 집착하곤 한다. '다사다난'. '여러 가지 일도 많고 탈도 많다'란 뜻의 이 단어, 아무래도 올해는 강기희 시민기자에게 양보해야 할 듯하다. 옆에서 본 이들은 물론, 강기희 기자 스스로 본인의 2008년이 다사다난했음을 선언했기 때문.

"2008년. 올해의 내 삶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다. 그럼에도 잊고 싶은 것보다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이 더 많은 한 해였다. 2월엔 소중한 것들이 들어있는 가방을 잃어 버려 한동안 넋이 나가 있었고, 3월 초엔 취재를 나갔다가 눈길에 미끄러져 타고 갔던 차를 고물로 만들었다.

고물이 된 차를 어찌어찌 고치는가 싶었지만, 4월 중순, 차는 죽이고 나만 살아남는 사고를 당했다. 5월과 6월, 7월을 거리에서 보냈다. 촛불 든 백성들과 '이명박은 물러가라~'로 시작되는 훌라송을 불렀으며, 새벽이 되면 전경대원의 방패에 찍혀 신음하는 민주주의를 보며 절망했다."

2월부터 11월까지, 다사다난했던 강기희 기자

a  2008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인 강기희 기자.

2008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인 강기희 기자. ⓒ 김대홍

엎친 데 덮쳐, 해남에서 열린 '김남주문학제'와 '해남문학축전'에서 사회를 보고 돌아오던 지난 11월 11일, 화마가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작가의 가장 큰 자산인 5천여 권의 책과 노트북, 무엇보다도 세상에 내놓지 못한 소설 <김달삼> 관련 자료가 불타버렸다. 칠순 노모가 정선장터에서 산나물을 팔아서 모은 전 재산 700만원과 피곤한 몸을 누이고 아들과 마주 앉아 밥숟가락을 들던 삶의 보금자리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불이 난 뒤 한 달여 동안 그는 방황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갔을 때, 개 먹이와 앞집 아이들에게 줄 과자를 사들고 서 있는 그의 모습 뒤로 휑하니 바람이 일었다. 하지만 그는 시커멓게 타버려 화석처럼 굳어버린 책 더미 앞에서, '허허' 웃기만 했다.

"어머니가 무사하셔서 다행이다. 낑낑이(개)가 얼마나 놀랐던지 앞집 방안으로 뛰어들었다더라. 내가 지금 이래도,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소설 속 주인공이 돼보는 거지 뭐, 남들이 이런 경험 해보겠어?"


마치 남의 일을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화마가 집을 집어삼킨 정황을 설명하는 그에게서 삶을 대하는 깊은 내공이 느껴졌다.

"영광인 걸, 뭐 글 더 많이 쓰란 얘기 아니겠어"


인간이 80여 년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올해 1년은 어찌 보면 짧은 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강기희 기자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행사에 참여했고 글을 썼으며 <오마이뉴스>에 밀도 있는 기사들을 올렸다. 그의 이런 '다사다난'의 마침표는 아마도 <오마이뉴스>에서 받게 될 '2008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 12월 중순, 책 냄새가 풍기던 가리왕산자락 대신 찬바람이 몰아치는 경포대에서 '2008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을 수상하게 된 그를 만났다.

정선 사람들은 그를 소설가이기 전에 <오마이뉴스> 기자로 기억한다. 그가 쓰는 기사는 사람들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사회·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정선의 먹을거리도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 정선읍내의 곤드레밥 식당과 구절리의 콧등치기 등은 강 기자의 소개 기사 덕에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명함이 필요 없는 기자. 정선 사람들은 그를 강 기자라 부른다.

"내가 그렇게 기사를 많이 썼던가? 그래 일이 많았으니 습관처럼 글을 썼겠지. 영광인 걸... 어떻게 감사해야 하나. 뭐 글 더 많이 쓰라는 얘기 아니겠나."

세상 모든 일의 중심에 섰던 그

a  완전 불에 타버린 작가 강기희 정선 집

완전 불에 타버린 작가 강기희 정선 집 ⓒ 최원석


강기희 기자는 강원도 정선에 살면서도 세상 모든 일의 중심에 서 있던 이다. 가리왕산자락이라는 공간을 뛰어 넘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서 있기도 하고 시를 낭송하거나 통기타 가수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농민들의 시위 현장에선 그들과 함께 한목소리로 외치고, 동강살리기를 위해 이웃들과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또 그들의 고단한 삶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글로 써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작가'이기도 한 그는 장편소설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은옥이>, <도둑고양이>, <개 같은 인생들> 등을 잇달아 펴낸, 중견 작가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오마이뉴스>에서 주는 '2008 2월22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에 수상하게 된 강기희 기자를 인터뷰해 달라는 요청을 편집부로부터 받았을 때, 강 기자가 하는 일이 많아 그를 소개하는 게 쉬울 거라 여겼지만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술자리를 함께하고, 그의 삶터에 동동주와 삼겹살을 사들고 찾아가기도 자주했지만, 그와 함께하면서 느낀 모든 것을 글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자아이처럼 묶은 긴 머리, 엉성한 수염, 긴 점퍼와 청바지, 어깨에 걸친 가방 하나,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담배갑처럼 꺼내드는 디지털 카메라. 그런 그를 인터뷰하려고 만났지만 술만 마셨다. 금방 지은 더운 김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끈한 밥이 그리울 것 같아 돌솥밥에 도루묵찌개, 그리고 묵은지를 내오라 했다.

가리왕산서 백담사 만해마을로 거쳐 옮겨

강기희 기자는 요즘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지낸다. 소설을 쓴다는 핑계지만 실상은 집을 잃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희망을 버릴 새도 없을 듯했다. 따뜻한 이웃들을 뒀기 때문. 화마에 집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한 문학예술인들과 그를 아끼는 독자, 정선사람들이 나섰다. 이들은 사고가 난 직후부터 '한국문학평화포럼'과 '한국작가회의'를 축으로 강기희 작가 돕기 모금운동을 한 데 이어 12월 8일 '강기희 작가 돕기 자선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a  불탄 잿더미 속에서 육필원고 한 묶음을 찾아냈다. 강 기희 기자에게 남은 유일한 자산이다.

불탄 잿더미 속에서 육필원고 한 묶음을 찾아냈다. 강 기희 기자에게 남은 유일한 자산이다. ⓒ 최원석

정선민중연대(농민회, 공무원노조, 농협노조, 사회보험노조, 전교조 정선지회, 정선병원노조), 정선문화연대, 정선민예총, 동강살리기운동본부, 정암사 정선포교당, 등대영화제조직위원회 등도 힘을 모았다. 출연하는 가수들과 문학예술인들은 출연료 전액을, 이번 행사를 주최하는 측에서는 자선 콘서트 티켓 판매금액 전액을 강기희 기자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절망의 끝자락에 서 있는 내 빈 가슴에 희망의 씨앗을 심은 건 동료 문인들과 지역의 동지들, 그리고 내 삶을 지켜보던 많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힘내라 강기희, 당신에게 우리가 있다!'라는 구호를 앞세우고 나를 돕기 위해 기꺼이 나서 주었다. 그들이 걸어온 격려 전화와 얇은 지갑을 털어 보내준 성금은 내 가슴에 지어진 집의 서까래가 되었고 주춧돌이 되었다."

강기희 기자는 이번 겨울을 만해 마을에서 보낼 것이라 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큰 빚을 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소설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마음의 빚을 덜어야 한다"고 했다. 자신에게 보내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집 짓고 살라는 뜻'이 아니라 '잘된 소설 한 편 만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단다.

그리고 그는 지금 새로 장만한 노트북을 펼쳐놓고 <천도로 가는 길>이라는 장편소설을 다시 쓰고 있다.

"많은 이들이 내 가슴에 심은 희망의 씨앗을 잘 발아시키려면 토양이 좋아야 하는 법. 나는 토양을 튼실하게 만들기 위해 오늘도 컴퓨터를 켠다. 한 줄의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 한 이제 내 글쓰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바람이 되고 때로는 물고기 되어 세상을 깨우는 소설가로 남고 싶다."

[2008 올해의 뉴스게릴라]
☞ [올해의 뉴스게릴라상①] 미국 해외통신원 강인규
☞ [올해의 뉴스게릴라상②] 정치평론 쓰는 소설가, 김갑수
☞ [올해의 뉴스게릴라상③] 서평 쓰기의 달인 이윤기 기자
☞ [올해의 뉴스게릴라상④] 강원도 정선의 '강기자' 강기희
☞ [2월22일상①] 고기복 김행수 송경원 임정훈 장태욱 전대원
☞ [2월22일상②] 강지이 김준희 문동섭 문종성 성하훈 이돈삼
☞ [2008 특별상] 머리기사만 316개, '불곰' 윤근혁 기자
☞ [2008 특별상] 민간 싱크탱크,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올해의뉴스게릴라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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