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요리 찾아서 사표 내고 유럽으로

[당신의 꿈은 빛나고 있나요? ③] 푸드스타일리스트 김은아씨

등록 2009.01.03 16:01수정 2009.01.0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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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푸드스타일리스트(27) ⓒ 곽진성




뛰어난 요리 실력과 더불어 특출한 디자인 감각도 지녀야 하는 푸드스타일리스트. 그 특별함답게 푸드스타일리스트는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이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값비싼 학원 수업은 물론, 정규 유학 과정도 거쳐야 한다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의 편견에 "NO"라고 외치며 당당히 미래를 개척하는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있다. 김은아 푸드스타일리스트(27·코리아 푸드 엑스포 2008 청년 대표)이다. 남들과는 다른 과정(?)으로 꿈을 빚어낸 그의 이야기에서는 유난히 빛이 났다. 지난 12월 중순. 김은아 푸드스타일리스트를 만나 인터뷰했다.

무급 어시스턴트의 푸드스타일리스트 꿈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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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푸드스타일리스트(27) ⓒ 곽진성


김은아가 푸드스타일리스트란 직업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열아홉살 때. 당시 고3이던 그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우연히 본 푸드스타일리스트의 매력에 반하고 말았다. 김은아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한다.

"바로 저거다 싶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음식과 패션·디자인을 모두 할 수 있는 직업이었으니까요"


이후 그는 중앙대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해 음식과 영양에 대한 기초를 쌓아갔다.

하지만 당시 신입생이었던 김은아는 이런 기본 지식을 쌓는 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꼈다.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되기 위해선 학원이나 외국 유학을 무조건 다녀와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 생활비를 버는 그에게 유학, 그리고 학원 공부 같이 돈 드는 일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결국 김은아는 남다른 결심을 한다. 바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무급 어시스턴트 생활도 병행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어시스턴트 생활이었어요. 하지만 어시스턴트를 시작하고 나서 체력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들었죠. 업계의 관행상 거의 무보수였기 때문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는데 그만큼의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 고생했습니다."

그해 가을, 김은아는 자신의 결심을 실행에 옮긴다. 인터넷에 구인 광고를 낸 푸드스타일리스트(김경미)를 찾아가 자신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사실, 이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청소만 해도 좋으니까 현장에서 보고 배우고 싶다는 내용으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냈어요. 기대는 안 했는데 이틀 후에 전화가 왔었죠. 다음 날 촬영이 있으니 모 스튜디오로 면접을 하러 오라고 하셨던 거예요. 다음 날 찾아갔는데 촬영이 한창이었고 김경미 선생님은 '힘들 텐데 버틸 수 있겠나'라는 질문만 하셨거든요. 저 역시 '네'라고 힘 있는 대답만 하고는 짐 나르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그렇게 겨울방학 내내 선생님 어시스턴트로 일했죠."

그런 당당함 때문일까? 얼마 후, 그는 푸드스타일리스트로부터 "일해도 좋다"는 승낙을 받아낸다. 어시스턴트 생활을 시작하며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일산에서 강남구 신사동까지 출근했고 일주일에 태반은 1톤 트럭을 타고 다니며 이태원과 논현동·신사동의 가구와 그릇·소품을 협찬 받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이삿짐 나르듯이 오르내려야 했다.

큰 실수를 한 적도 있었다. 수십만원짜리 그릇을 깼던 것이다. 당시 자신이 그릇값을 물어줘야 할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선생님이 이해해줘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며 그는 밝게 웃는다. 스무살, 남들은 대학 생활의 낭만을 즐길 나이지만 김은아는 자신의 꿈을 향해 열심히 뛰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배우면서 발전할 수 있었어요. 김경미 선생님께서 정신적으로도 많은 격려를 해주셨죠. 지금도 힘들 때마다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기억해요. 포기하지 말고 10년 동안만 꾸준히 한 길을 가라. 그러면 어느 순간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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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푸드스타일리스트(27) ⓒ 곽진성


어시스턴트 생활을 끝낸 김은아는 많은 것을 배웠다. 무엇보다 푸드스타일리스트란 직업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어시스턴트 생활을 마친 김은아에게 특별한 기회가 찾아왔다.

호주의 한 와인 회사의 인터십에 합격해 멜버른에서 한 달, 그리고 또 한 달은 멜버른에서 기차로 4시간가량 떨어진 호주 시골에서 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유학을 가진 못한 김은아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여자 혼자 외지로 떠난다는 불안감은 있었지만 그는 호기롭게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이후, 호주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현지 와인메이커에게 와인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배웠고 와인컨설턴트를 통해 와인의 기초부터 와인과 음식의 조화(마리아주)까지 알 수 있었다.

"(그곳은) 밤에는 박쥐가 집으로 날아들고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캥거루와 여우, 토끼들이 있는 곳이었어요. 차를 타고 나가서 차의 라이트를 끄면 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르는 때묻지 않은 곳. 동양인은 달랑 나 하나에 다른 외국인들도 없는 호주의 그냥 시골 동네였죠. 주로 한 일은 매일매일 포도밭에 나가 포도 샘플을 따와서 절구로 으깨고 당도 측정. 와인숙성창고에 가서 연도별 와인 채취와 성분 분석이었어요. 40℃를 넘나드는 날씨 때문에 처음엔 더위를 먹고 쓰러지기도 했지만 그렇게 2주가 지나니까 완전히 적응을 해서 오토바이크로 포도밭을 오가며 즐겁게 지냈어요."

호주 와인 회사 인터십은 김씨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게 된다. 그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조차 모르는 그들에게 와인과 어울리는 한식을 선보였어요. 주로 불고기·잡채·전들을 만들었는데 반응이 매우 좋았죠. 한국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에는 동네 사람들과 모두 모여 한식을 만들고 송별회를 열어줬는데 모두 아쉬워서 눈물바다가 돼버린 거 있죠? 한 명 한 명 너무 순수하고 좋은 사람들에 대한 추억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언젠가는 꼭 다시 한번 그곳에 갈 계획이에요."

꿈 같았던 호주 와인 회사 인터십을 끝 마친 김은아. 한국으로 돌아온 후, 음식 요리와 음식 디자인에 자신감이 붙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동영상 요리 시연] 복분자 샹그리아 & 매콤 떡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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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분자 샹그리아 만들기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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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콤 떡갈비 만들기 ⓒ 곽진성


직장 생활을 박차고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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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스타일리스트는 요리 실력과 함께 음식 디자인 실력 또한 갖춰야 하는 전문 직종이다 ⓒ 곽진성


그후 탄탄대로였다. 대학 졸업 후, 김은아는 세계식문화연구소(박연경 소장)의 컬러쿡 팀장으로 일하면서 푸드스타일링에 관련된 여러 분야의 일을 했다. 쿠킹클래스 메뉴개발 및 준비, 음식광고 촬영, 홈쇼핑 음식 스타일링, 잡지·신문 등의 요리 및 스타일링, 레스토랑 메뉴 개발, 컨설팅 등이 바로 그것이다.

"거기에서 하는 일도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일에 속하기 때문에 일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었어요. 출퇴근하는 직장 생활이라 경제적이나 심적으로도 안정된 편이었죠."

그런데 그런 남부럽지 않은 직장 생활을 1년 정도 할 때였다. 그는 스스로 정체되어 있다는 고민을 했다. 김은아는 푸드스타일리스트란 분야는 자신의 지식과 창의성을 계속 소모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고 경험해서 소진한 부분을 채워 나가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스스로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에 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하고 배우기도 했지만 내가 소모하는 속도가 채우는 속도보다 점점 빨라져서 한계를 느꼈던 것 같아요. 지식의 재충전이 필요했죠. 제 자신을 발전시킬 만한 일을 시작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만두기까지 한 달 정도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했지만 결단력이 생기지 않아서 일단은 비행기 표를 끊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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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푸드스타일리스트(27) ⓒ 곽진성


김은아가 선택한 것은 유럽 음식 여행이었다. 그리고 과감히 계획을 실행했다. 런던·에딘버러·파리 일정으로 여행을 가서 각각의 나라가 간직한 고유한 음식을 배우러 떠난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며 얻은 재충전의 시간은 그에게 푸드스타일링이란 직업의 매력에 대해 조금 더 알게 하는 계기가 됐다.

"푸드스타일리스트로써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구체적으로는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줄 때와 촬영용이나 전시용 때 '정말 멋지다! 맛있어 보인다!' 소릴 들었을 때죠"

유럽 음식 여행을 다녀온 후, 김은아는 여러 분야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 푸드스타일리스트 본연의 활동은 물론, 여러 매체에 푸드 칼럼 연재, 푸드 블러그 운영 등으로 바쁜 한때를 보내고 있다.(http://blog.naver.com/eunahstyle/)

"최근에는 외교통상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발행하는 영문웹진 코리아포커스(korea focus)에서 제가 쓴 칼럼 중 서울에 차려진 밥상을 번역하여 feature란에 올리고 싶다는 연락이 왔어요. 이럴 때는 왠지 내가 한식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듯 하여 보람을 느낍니다."

김은아는 지난해 10월 13일부터 10월 19일까지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AT 센터에서 개최된 코리아 푸드 엑스포 2008(KOREA FOOD EXPO 2008) CF 공모전에서 한식의 세계화를 주제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상을 타는 영예를 안았다. 더불어 코리아 푸드 엑스포 2008 청년 대표로 선정됐다. 연이은 좋은 소식들에 설렌다는 김은아는 푸드스타일리스트를 꿈꾸는 이들에게 따뜻한 조언을 건네준다.

"조리법·식재료·영양 등의 공부를 하면 많은 도움이 돼요. 여러 분야의 전시회나 다양한 음식점에 가보는 것 또한 공부가 되죠. 요리 관련 소설이나 잡지·만화책을 읽어도 좋아요. 차근차근 경험하고 준비하세요. 준비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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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스타일리스트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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