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민주주의 국가' 이루려는 이명박 정권

[한 미국인 교수의 응원] 언론노조 여러분은 세계인의 희망입니다

등록 2008.12.30 15:48수정 2008.12.30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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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이 총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26일 오후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언론장악 7대 악법저지 언론노조 파업 출정대회'에 MBC 보도국 기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 남소연


'깡패민주주의 국가' 이루려는 이명박 정권

안녕하십니까? 미국은 현재 성탄부터 설날까지 이어지는 연말 연휴 중입니다만 한국 신문을 보면 암담하기만 합니다.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들과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이 경찰서나 국회로 끌려가거나 운전면허가 취소되고, '4대강 정비'로 이름만 바꾼 대운하사업이 막 시작될 참이며, 일제고사를 거부한 선생님들이 해임되었고, 역사교과서는 입맛대로 뜯어고치는 중이고, 이제는 언론 7대 악법까지 제정하려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언론 7대 악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저도 더 이상 <오마이뉴스>에 글을 쓸 수 없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머지않아 언론 매체라고는 조중동과 조중동이 소유한 방송과 잡지들만 살아남을지도 모릅니다.

이명박 정권은 이제 '깡패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적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권이지만 약자를 괴롭히며 자기와 의견이 다른 아이들을 때리고 못살게 구는 동네 깡패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깡패민주주의 정권은 정당제도, 의회, 투표 및 선거제도 등 겉모습은 민주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일반 국민을 희생시키며 지배계층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탐욕스럽고 타락한 정권입니다.

미국의 부시 정권 하에서도 국가안보라는 미명하에 시민의 자유와 권리가 축소되고, 인간 존엄성이 훼손되고, 언론을 조종하고 여론을 조작했던 점에서 비슷했기에 저는 한국 시민들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낍니다. 더구나 권위주의적인 군사독재 체제와 오랜 투쟁 끝에 힘겹게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룩한 한국시민들에게 현 정권의 독재 회귀는 더욱 뼈아픈 일입니다.

민주주의는 투표와 선거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민주주의. 이를 위해 긴 세월 동안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젊음을 바치고 더러는 목숨을 바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그리 단순한 개념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투표와 선거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없이도 투표와 선거는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선거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과 정부가 평등과 공존과 개방적인 의견교환을 진정으로 보장하고 싶어 하고 이를 지킬 의지를 갖는 것입니다.

전체 득표율 약 49%(전체 유권자 득표율 약 31%)를 얻어 민주적으로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이 특권층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고소영 강부자' 내각을 만든 것이나, 18대 총선에서 전체의석 299석에서 153석을 얻어 민주적으로 다수당이 된 한나라당이 의혹 투성이인 예산안을 단독 통과시킨 것은 분명 반민주적입니다. 참다 못해 거리로 몰려나온 시민들의 목소리를 물대포로 질식시키면서 정치 절차만 민주주의를 지킨다면 더 이상 민주사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외형적으로는 민주주의제도를 잘 갖추고 있지만 극히 일부 계층에 부와 재산이 집중되어 있고 미국 정부와 의회는 상류층의 굳건한 통제 하에 놓여 있습니다. 국가 통치기구가 상위 1% 사람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나라는 민주사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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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오후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언론장악 7대 악법저지 언론노조 파업 출정대회'에 2500여 명의 언론 노동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9년 만의 방송파업, 사상 최초 언론노조 파업 출정식이 열렸다. ⓒ 최윤석


민주주의의 저력은 언론에서 나오는데...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소양을 갖춘 민주시민, 즉 좋은 교육을 받고, 세상과 국가와 지역사회를 잘 이해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깨어 있는 민주시민이라고 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를 지키는 저력은 언론에서 나옵니다. 제대로 된 민주사회의 언론은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정부와 권력기관의 감시자로 활약합니다.

미국의 언론은 이런 역할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몇몇 언론 재벌이 방송과 신문과 인터넷을 과점하고 있는 상황이고 대중을 교육하고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선정적인 오락 프로그램에 집중하여 광고수입을 올리는 데 매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예를 보면, 독과점을 허용하는 언론 매체의 민영화가 언론 자유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정부가 방송을 국유화함으로써 언론을 통제하려고 했던 데 비하여 이제는 권언유착을 통해(특히 재벌언론과 유착해) 통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부가 언론을 직접 소유하지 않는다고 해서 언론이 정부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론사의 소유주가 정부와 생각과 신념과 지향을 같이 한다면 언론은 정부의 정책을 열심히 지지하고 홍보해 줄 것입니다. 정부가 일일이 뉴스를 감시하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고 언론사는 마치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인 체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미국 정부가 언론인들에게 전쟁 관련 보도를 할 때마다 애국주의를 고취하라고 직접 지시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언론들은 이미 한결같이 알아서 전쟁 나팔수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탈세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조중동 언론 사주들을 사면 복권시켜준 이유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미묘하고 간접적인 형태로 행해지는 여론 통제

언론탄압은 세계사에서 수없이 많이 있었습니다. 독일의 나치정권,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 소비에트의 공산 정권, 한국의 유신정권이 모두 언론을 탄압했습니다. 오늘날 한국과 미국에서는 보통 이와는 좀 다른 미묘하고 간접적인 형태로 여론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알자지라 방송국을 거듭 폭격하고 기자들을 붙잡아갔듯, 한국에서도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내고 마음에 안 드는 프로그램을 취소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통신비밀 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제는 평범한 시민들이 이메일 하나 썼다가, 댓글 하나 잘못 달았다가 붙잡혀 가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민주사회는 비판적인 견해를 표현할 자유가 있는 사회입니다. 법적, 정치적으로 말할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견해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언론노조의 "불법 파업에 엄정 대처하겠다"고 한 것은 언론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제거하고 일반 시민들로 하여금 불이익이 두려워 스스로 입을 다물게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권위주의적인 정부는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의 형식을 빌어 정치적인 반대자들에게 재갈을 물리고 탄압을 정당화합니다. 토크빌이 지적했듯 민주주의 체제의 문제는 다수의 절대적인 지배권력입니다. 다수가 잘못할 때는 내재적으로 이에 맞설 만한 수단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지 부시나 이명박 대통령도 일단 당선이 되고 나면 '국민 대다수'의 이름으로 권위적인 통치를 몰아붙일 수 있습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자기와 뜻을 같이하지 않으면 반미라고 주장하며 애국심과 국가안보를 8년 내리 부르짖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국가 정체성을 훼손하는 폭넓고 뿌리깊은 상황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전교조와 국가인권위를 겨냥했다고 하는데 이런 전체주의적인 언사는 한국이 현재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상황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미국에서 한국의 언론 파업을 지켜보면서 정부의 엄포에도 추운 날씨에 거리투쟁에 나선 언론인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직업을 잃을 수도 있고, 경찰에게 폭행을 당할 수도 있고, 가족의 생계가 위태해질 수도 있는데 자리를 박차고 나간 분들은 놀라운 용기를 가졌습니다.

이분들은 지금 정부의 탄압에 맞서지 않으면 나중에는 백 배나 어려워질 것을 잘 알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들이며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의 희망이고 자랑거리입니다. 부디 끝까지 견뎌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앉아서 방관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나치 치하에서 침묵했던 지식인들을 꼬집은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시를 상기시켜드리고 싶습니다.

그들(나치)은 처음에는 공산주의자들을 잡으러 왔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침묵했다.
그 다음에는 그들은 노조원들을 잡으러 왔다. 나는 노조원이 아니었기에 침묵했다.
그 다음에는 그들이 유대인들을 잡으러 왔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에는...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다... 그때는 이미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저는 한국의 지금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다음 패러디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촛불시위 주동자들을 잡으러왔다. 내 딸들과 며느리들은 유모차를 끌고 나가지 않았기에 나는 모른 척했다.
그 다음에는 그들이 일제고사를 거부한 교사들을 잡으러 왔다. 우리 집에는 교사가 없기에 나는 역시 모른 척했다.
그 다음에는 그들이 방송사 사장들과 기자들을 잡으러 왔다. 나는 방송사와 아무 상관이 없기에 나서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다. 그때는 나를 위해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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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니묄러의 시는 구전되어 조금씩 변형되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위에 인용한 것이 저자의 원래 시에 가장 가깝다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니묄러의 시는 구전되어 조금씩 변형되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위에 인용한 것이 저자의 원래 시에 가장 가깝다고 합니다.
#언론노조 #언론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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