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산행, 하산 길에 길을 잃고 헤매다

울산 대운산(해발742미터)우중 산행

등록 2008.12.30 14:15수정 2008.12.3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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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산 울산 대운산...정상 가는 길에 만난 전망데크...벼랑위에 있다... ⓒ 이명화


어디로 갈까. 경남 일대의 산들은 대부분 가 본 산들이고 특별할 것도 없어서 딱히 한번쯤 꼭 가고 싶다고 생각되는 산은 없지만, 멀리 가기엔 경비가 많이 드니 가까운 곳을 물색하던 중,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면과 경남 양산시 웅상읍 명곡리에 걸쳐 있는 대운산(742미터)으로 정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산, 가고 싶은 산은 처음부터 느낌이 좋다.

왠지 썩 마음이 끌리지 않지만 딱히 꼭 가야할 산이나 주장할 만한 산도 없어서 남편의 말에 동의하고 길을 나섰다. 산행을 마치고 울산 가까운 바닷가를 가 보자는 말에 오랜만에 바다를 보고 싶기도 해서 동의했던 것이다. 아침부터 먹구름 한 조각이 해를 가리고 있어서 그다지 화창한 날은 아니 될 것 같았다. 차로 달려 양산에서 서창 덕계 좀 못 미쳐서 정관, 정관에서 울산시 온양읍 상대마을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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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산 등산길에 만난 내원계곡길에서... ⓒ 이명화


상대마을 공영제3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하늘엔 먹구름이 더 두꺼워지고 잔뜩 무겁게 내려앉았다. 대운산은 등산객들이 자주 찾는지 무료 주차장이 제1, 제2, 제3주차장까지 시설이 잘 되어 있고, 주변엔 몇 개의 음식점이 보였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제법 많은 등산객들이 등산로를 따라 걸어가고 있다. 흙 자갈이 깔린 임도를 들어선다.

호젓하고 산보하듯 걷기 좋은 내원암 계곡길이다. 이따금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잔돌 밟는 소리와 함께 또렷이 들려온다. 물소리는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고 가뭄에도 제법 계곡 물 소리가 환하다. 중간 중간에 계곡물이 흐르다가 소를 이루고 있는 곳이 더러 있다. 거기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기도 하지만 물은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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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산 낙엽 깔린 계곡...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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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산 낙엽 수북이 깔린 계곡...물웅덩이... ⓒ 이명화


계곡 길을 따라 걷다보니 중간에 화장실도 두 군데가 있고 지붕 있는 넓은 평상도 놓여 있어 휴식하기에 좋고, 비를 피하기에도 좋을 것 같다. 날은 흐리고 숲은 고요하다. 얼마쯤 올라가자 내원암과 대운산 정상 갈림길이 나왔다. 갈림길에서부터는 가파른 오르막 등산로가 이어진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대로 가다간 비를 맞을 것 같은데, 계속 가도 좋을지 갈등이 생긴다. 경사 높은 등산로에서 비는 오다가다 한다.

소리 없이 이슬비가 조용히 내린다. ‘비가 오는데 계속 갈 거에요?’ 하고 앞서 걸어가는 남편에게 물어보지만 남편은 이렇다 말 한 마디 없이 계속 걷는다. 비가 온다고 해도 간다는 뜻이다. 어제 날씨가 워낙 화창했던지라 미처 일기를 보지 않고 온 탓에 우비도 준비를 못했다. 이 추운 겨울에 비를 맞으며 등산을 계속 하기엔 무리가 아닐까 싶어 걸음을 걷다가 서고 또 걷다 서곤 하지만 남편은 포기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괜히 얄밉게 느껴진다. 지난여름, 천성산 공룡능선에서 말벌에 쏘여 하산하면서도 남편은 마주 오던 등산객한테 ‘정상까지 가려면 얼마나 가야하냐’고 물었던 그때 생각이 떠올라 더 얄미워진다. 공룡능선을 올라가다가 어쩐 일인지 기분이 아주 안 좋고 더 나아가기 싫어서 한참동안 바위에 앉아 있다가 다시 일어나 얼마가지 않아서 말벌한테 쏘이는 일이 벌어졌었다. 이번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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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산 ..대피소... ⓒ 이명화


비가 오기 시작하면서 왠지 마음이 무거운데다 남편의 강행군에 마음이 상하니, 더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가 않다.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계속 올라가는 남편이 얄미워서 일부러 거리를 많이 두고 걷는다. 뒤통수조차 보기 싫은 마음이다. 한참 동안을 가파른 오르막길을 힘겹게 나아가면서 이왕 등산하는 길인데 마음을 편히 하자 싶어 애써 밝게 하려고 해보지만 더 마음이 무거울 뿐이다.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래, 어찌 맑고 화창한 날, 좋은 날에만 등산하랴. 이런 날도 있는 게지. 때론 눈도 맞고 태풍도 만나고 또 비를 맞기도 하는 것이지. 비를 좀 맞으면 어떠랴.’ 그래도 마음은 무겁다. 계곡까지 걸어왔던 길은 완만하고 넓고 편한 길이었는데, 본격적인 등산로가 이어지면서 급한 가풀막으로 된 길을 걸으며 땀이 난다. 계속 오르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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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산 대운산 정상 가는 가파른 등산길... ⓒ 이명화


남편에게 마음이 꼬여있으니 갈증이 나는 줄도 모르고 허기가 지는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소리 없이 숲 사이로 비는 계속 내린다. 이렇게 우중충한 날, 높은 등산로에선 까마귀울음소리가 고요를 깨뜨린다. 비 오는 숲 사이로 들려오는 까마귀 소리는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갈수록 산길은 험하다. 가파른 비탈길에 있는 안전밧줄을 잡고 바로 옆에 벼랑을 끼고 한참을 걷는다. 저만치 높은 암봉 위에 전망데크가 보인다.

밑에는 벼랑이요 비좁은 바윗길을 밧줄을 잡고 미끄러운 길을 통과한다. 여기서 대운산 정상까지는 400미터 남았다고 표시판이 있다. 계속되는 험한 길, 비에 젖은 산길에 깔린 낙엽은 비에 젖어 흙과 더 밀착하고 있다. 흙으로 돌아가고 있는 낙엽이다. 나무 계단 길을 만난다. 이 나무계단은 대운산 정상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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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산 .. ⓒ 이명화


가파른 급경사 오르막 계단길이다. 대운산 정상은 거의 다 와가지만 비안개에 싸여 있어 주변경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대운산 정상 도착(1:25), 거친 바람, 젖은 비안개에 둘러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물은 지워지고 있다. 대운산 정상 표시석 앞에 서 보지만 흐리고 비 내리는데다가 바람까지 거칠게 불어 추워서 오래 서 있을 수가 없다.

2시 10분, 대운산 정상아래 헬기장에 목재를 쌓아놓은 곳이 있어 바람이 들지 않는 그곳에 자리 잡고 앉아 늦은 점심을 먹는다. 하산하는 길은 올라올 때와는 반대방향인 제2봉 쪽으로 간다. 내려가는 길에 하산하는 산객에게 길을 묻는다. 자주 대운산을 오르는 듯, ‘내려가는 길이 있지만, 잘 찾아가야 한다’며 상세하게 일러준다. 하지만 이정표도 없는 하산 길은 아예 접근을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고 지혜로운 방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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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산 대운산 정상 옆 식사 장소... ⓒ 이명화


흙길이라 하산 길은 걷기가 편하지만, 아무래도 수상하다.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혹시 길을 잘못 들까봐서 갈림길을 다시 만나는지 자세히 보며 걷지만 계속 엉뚱한 길로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분의 말대로라면 갈림길이 분명히 나와야 하고, 우린 갈림길에서 계곡 쪽으로 걸어가야 하는 것이 맞는데, 아무리 걸어도 한 개의 길 밖에 없고, 새로운 길이란 실낱같은 길조차 보이지 않는다.

갈림길에서 다른 길로 가게 되었던 그분은 ‘길을 잘못 들어서면 용당으로 빠집니다. 가면서 길을 유심히 보고 가야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길을 놓칩니다’라고 했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한참을 걸어도 우리가 도착해야 할 목적지인 주차장은 보이지 않고 내리막길도 아니고 산 중턱을 가로지른 듯한 길을 따라 계속해 걷는다. 점점 목적지와는 간격이 벌어지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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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산 하산길... ⓒ 이명화


이 길이 분명 아니라는 느낌은 있는데 애초에 길을 잘못 들어서서 그런지 이 길 외엔 다른 길 흉내라도 낸 길은 보이지 않는다. 점점 더 멀리,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다. 얼마나 걸었을까. 낙엽이 수북이 깔린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니 산비탈에서 갑자기 길이 지워지고 없다. 산악회 리본이 달린 것이 보이기도 하지만 길은 나 있지 않다. 사람이 지나간 듯한 길인지 아닌지 구분도 안 되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어림짐작으로 내려간다.

나무들 사이로 저만치 제법 넓은 저수지가 보인다. 여기가 어디지?! 산비탈 중간에 긴 밧줄이 나무에 달려 있고 길은 없다. 나무에 매달린 밧줄을 잡고 미끄럼틀보다 더 미끄러운 산비탈을 타잔처럼 줄타기 하며 내려간다. 밧줄을 놓고 나면 또 비탈에 선 나무를 의지하고 발을 버팅기고 몇 걸음 또 가다보면 다시 긴 밧줄을 만나고 또 타잔처럼 비탈을 내려가는 식으로 계속해 가다보니 경사가 조금 누그러진 비탈길을 만나 더듬거리며 걸어 내려간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선택의 여지는 없고, 일단 산에서 벗어나자는 심사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곤란하다. 미끄러지듯 내려간 산길 아래엔 전원주택들이 보인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지? 오른쪽엔 대운산 자연휴양림 표시판이 보인다. 길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탑골저수지가 나온다. 여긴 양산 서창 최변두리다. 양산 서창과 울산의 경계다. 탑골저수지를 따라 걸어 내려간다.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길을 가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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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산 하산길에 길을 잃다 ⓒ 이명화


상대마을에 차를 주차해 놓았는데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어느 쪽으로 가야하는지 물었더니 이 길 따라 쭉 내려가다 보면 버스 정류소가 나온다고, 버스 타고 가면 거리가 얼마 안 된다고 일러주었다. 한참을 아스팔트길을 따라 간다. 한길이 나오고 버스 정류장에서 울산 방향버스를 기다린다. 지쳐서 택시를 탄다. 가까운 줄 알고 택시를 탔건만, 대운산 자락아래 주차장이라는 곳 자체를 택시기사는 모르고 있다.

알고 보니 아주머니들이 일러준 상대마을이란 곳은 울산 온양 상대마을이 아니라 이 근처에 있는 상대마을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일이 꼬이려고 하니까 이래저래 꼬인다. 이곳 근처에도 상대마을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어둠이 내렸을 때에야 꽤 먼 길을 돌아 어렵게 온양 상대마을 대운산 주차장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어둠이 내린 산마을엔 불이 하나둘씩 켜지고 있었다. 하산 길을 잘못 들어 참으로 힘든 산행이었다.
#대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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