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인 81%, 가자지구 폭격 지지"

등록 2008.12.30 16:24수정 2008.12.3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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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이스라엘 유대인 81%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30일 전한 이스라엘 방송 '채널 10'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압도적인 수의 이스라엘인들은 이번 공습을 찬성하는 것은 물론 팔레스타인에 대한 전면전을 선언하고 지상군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신문가판대를 운영하는 도리트 브루티(65·여)는 이스라엘군의 행동은 탁월했고 이미 오래 전에 공격을 취했어야 했다면서 이스라엘군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팔레스타인은 로켓공격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이스라엘인들은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300명이 숨진 것은 팔레스타인의 로켓공격을 종식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결과였다면서 자국 정부의 결정을 옹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인들의 이같은 반응과 관련, 타미르 셰이퍼 정치 애널리스트는 이스라엘인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아랍권 국가들에 대해 보복과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셰이퍼는 이스라엘 국민은 자국이 이웃국가들에게 전쟁억지력을 잃었고 예전처럼 강하지 않다고 여겨진다고 느꼈으며 이같은 오명을 씻고 싶어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이스라엘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아랍계는 가자지구와의 결속력을 보이는 차원에서 자신들이 운영하는 가게의 영업을 중단하는 등 시위를 벌여 대조를 이뤘다.

 

이스라엘 아랍인들은 가자지구 및 웨스트뱅크(서안) 지역 팔레스타인들과 강한 유대의식을 갖고 있다.

 

한편,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포스트 인터넷판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예비군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하마스의 군사조직인 이자딘 카삼은 29일 이스라엘 방위군(IDF)의 지상전에 대비해 추가병력 1천명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eun@yna.co.kr

 

 

가자지구 전면전 초읽기... 다가오는 운명의 시간

 

(두바이=연합뉴스) 강종구 특파원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전면전이 초읽기에 돌입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대한 전면전을 선언하고 지상군 투입을 위한 막바지 수순 밟기에 들어갔다.

 

하마스는 휴전을 거부한 채 자살폭탄 공격을 포함,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보복할 것이라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하마스가 이스라엘군과 교전 중 무장대원 1명을 잃고 보복 차원으로 박격포 공격을 감행하면서 직접적인 단초를 제공했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갈등은 60년 전 이스라엘의 건국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스라엘은 서유럽 국가들의 지지로 가결된 유엔 결의안에 따라 1948년 5월 14일 팔레스타인 지역에 국가 수립을 선포했다.

 

아랍권에 유대국가 탄생을 용인할 수 없다며 이집트 전투기들이 곧바로 텔아비브를 폭격하며 아랍연합군과 이스라엘간 1차 중동전쟁이 시작됐지만 당초 예상과는 달리 전쟁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스라엘은 전쟁의 승리로 팔레스타인 전체 면적 중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을 제외한 78%를 차지하게 됐다.

 

1차 중동전쟁의 아랍측 패배로 팔레스타인 인구 110만명 중 70만명은 고향에서 쫓겨나 요르단·시리아·레바논·이집트 등 주변국에 흩어져 처참한 난민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나라 없는 설움을 겪으며 2천년을 떠돌았던 유대인의 나라가 세워지는 순간, 팔레스타인에는 '대재앙(나크바)'이 시작된 것이다.

 

1967년 6월 발발한 3차 중동전쟁의 아랍측 패배는 팔레스타인에 더욱 큰 좌절감을 안겨줬다.

 

전쟁에 승리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까지 점령하면서 이들 2곳의 팔레스타인인 100만명이 이스라엘 점령 하에 생활하게 된 것이다.

 

1973년 이집트의 기습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4차 중동전쟁에서도 결국 아랍권의 패배를 지켜보게 된 팔레스타인은 절망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점령자인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분노는 1987년 인티파다(민중봉기)로 강하게 표출됐다.

 

팔레스타인 청년 4명이 이스라엘군 지프에 치여 숨진 사건이 원인이 된 1차 인티파다는 어린이와 부녀자까지 거리로 나와 이스라엘 경찰과 맞서며 1993년까지 계속됐다.

 

인티파다로 많은 인명피해를 입게 된 양측은 1993년 9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최초의 협약인 오슬로협약을 체결하면서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5년 이스라엘 라빈 총리가 유대인 극단주의자에게 암살당하고 1996년 오슬로협약 반대파인 베냐민 네타냐후가 총리에 오르면서 양측간 긴장은 다시 고조됐다.

 

팔레스타인의 자살 폭탄테러가 잇따르자 이스라엘은 2002년 3월 요르단강 서안에서 분리장벽 건설을 시작했다.

 

분리장벽으로 통행의 자유가 차단되면서 프랑스 일간 르몽드 표현대로 `하늘만 열린 감옥'에서 살게 된 팔레스타인인들은 온건파보다는 강경파를 선호하게 됐다.

 

강경 무장 정파 하마스는 이런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2006년 팔레스타인 의회 선거에서 132석 중 72석을 차지, 온건파인 집권 파타당을 누르고 다수당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이듬해 하마스와 연립정부를 구성했지만 지난해 6월에는 파타 계열 보안군을 몰아내고 가자지구를 장악했다.

 

이스라엘은 이후 가자지구 봉쇄정책을 더욱 강화했고 양측간 로켓공격도 잦아지며 평화협상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가자지구과 요르단강 서안을 영토로 하는 독립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자국 안전이 완전히 보장되기 전까진 서안에서 철수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간 간극이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이 임박하면서 운명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이스라엘군 참모차장인 단 하렐 장군은 현지 인터넷매체 와이네트를 통해 "이번 작전이 끝나면 가자지구에 단 하나의 하마스 관련 건물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게임의 법칙을 바꿀 계획"이라고 결연한 의지를 표명했다.

 

하마스 대변인 파우지 바르훔은 "'순교 작전'(자살폭탄공격)을 포함해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맞받아쳤다.

 

iny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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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0 16:24 ⓒ 2008 OhmyNews
#가자지구 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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