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마음을 드러내는 '인덱스'

[삶글] 아내의 아름다운 주름살

등록 2009.01.02 12:07수정 2009.01.0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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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나잇살이 들었다는 것을 무엇으로 짐작하는가. 이런저런 사단이 있겠지만, 나는 아이들을 통해서 실감한다. 눈밭을 가로지르며 팡팡 공차는 아이들을 볼 때다. 생기가 넘친다. 살을 에는 날씨에도 아이들은 굴하지 않는다. 그들이 내뿜는 열기가 부럽다. 해맑은 얼굴하나하나가 내 안을 비집고 든다.

 

하루에도 수많은 얼굴을 만난다. 양의 얼굴을 만나는가 하면 고양이 얼굴을 만나고, 원숭이 얼굴을 만나는가 하면 사람의 얼굴도 만난다. 서로 부대끼며 사는 삶, 그만큼 자잘하게 만나는 일이 많은 거다. 거울에 비춰지는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어떠한 모습으로 비춰지는가. 만족하든 않든 그것은 자기 몫이다. 얼굴 속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다 담겨있다.

 

그래서 우리는 얼굴을 통하여 한 사람을 평가하고, 그 사람의 개성과 운명까지도 판단하게 된다. 그 만큼 얼굴은 한 사람의 모든 개성과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H. 발자크는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고, 한 권의 책이며, 그 용모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A. 링컨 역시 마흔을 지낸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자기 얼굴을 선택하는 자유가 없다. 재주나 체질과 마찬가지로 운명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천차만별인 얼굴에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지만, 마음의 정직함이 그려져 있는 얼굴은 아름답다. 얼굴을 찡그리면 역한 괴로움이 묻어나고, 화사하게 핀 얼굴은 그저 편안하다.

 

늘 좋은 얼굴이 없듯이 언제나 나쁘게만 보이는 얼굴도 없다. 그렇기에 미운 사람의 얼굴에도 긍정의 삶이 배어있고, 환희가 겹쳐져 있다. 그 표정은 온갖 바람결에도 달라질 수 있고, 그 안에다 온갖 것들을 다 꿈꾸게 할 수 있다.

 

화가 나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고, 기분 좋을 때면 달맞이꽃처럼 하얗게 피어난다. 어떤 때는 심술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아 한대 쥐어박고 싶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무척 고상한 것 같아 반하고 싶은 얼굴도 만난다. 하나같이 똑같은 얼굴은 없다. 때문에 여러 얼굴을 만나는 것은 행복하다.

 

여러 얼굴 모양을 그려본다. 얄미운 얼굴, 간사한 얼굴, 미련한 얼굴, 음탕한 얼굴, 무서운 얼굴, 사나운 얼굴, 독사 같은 얼굴, 무덤덤한 얼굴, 그 시꺼먼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얼굴이 있다. 인자한 얼굴, 깜찍한 얼굴, 똑똑한 얼굴, 고아한 얼굴, 너그러운 얼굴, 부드러운 얼굴, 천사 같은 얼굴, 소탈한 얼굴, 깔끔한 얼굴로 언제 보아도 싫증이 안 나는 얼굴도 있다.

 

아름다운 얼굴은 요리의 한 코스에 맞먹는다. 낯을 찡그리고 살면 세월이 괴롭고, 마음이 편안한 얼굴을 가지면 하루하루가 꽃밭이다. 늙어가며 아름다운 주름살을 가지려면 하 좋게 살아야한다. 벌레 먹은 배추 잎 같거나 나태한 고양이 상을 가졌어도 자신이 만든 얼굴이다. 객줏집 칼도마 같아도 동방누룩 뜨듯 떴어도 자기가 빚은 얼굴이다. 말고기 자반 같아도 밥이 얼굴에 더덕더덕 붙은 얼굴 생김을 가졌어도 스스로가 애써 가꾼 얼굴이기에 결코 싫어하거나 꺼릴 까닭이 없다.

 

얼굴은 자신의 성격을 말하며, 마음의 모습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얼굴은 마음을 드러내는 인덱스(index)다. 한평생을 사는 동안 사람의 얼굴은 열 번 변한다고 한다. 어떤 얼굴을 가지고 싶은가. 날마다 시시때때로 바꿔야하는 가면의 얼굴이 필요한가. 스스로 자기 얼굴에 만족하고 책임지는 한 낯 바꾸기는 무한정 리필이 가능하다.

 

그러나저러나 내게는 언제 보아도 싫증이 안 나는 얼굴이 있다. 아내의 얼굴이다. 불혹의 아내, 그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여전히 예쁘다. 하지만 그 탱탱하던 얼굴에도 가느다란 주름살이 엿보인다. 애틋해진다. 아내도 그것을 알고 있을까? 

2009.01.02 12:07 ⓒ 2009 OhmyNews
#주름살 #나앗살 #인덱스 #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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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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