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과 "불안"을 팔아라

미국드라마의 새로운 글로벌 셀링 전략

등록 2009.01.02 15:17수정 2009.01.0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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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새 우리 사회를 강타한 인상적인 문화현상을 꼽으라면 '미드'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미국드라마의 열풍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미드'니 '미드족'이니 하는 어색했던 말들이 이제는 늘 쉽게 들을 수 있는 익숙하고 흔한 말이 되었다. 인기 미드의 주인공 또한 그저 '먼 나라의 어떤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넘어 더욱 우리 곁에 바싹 다가왔다. 우리나라 제품의 광고모델로 발탁돼 매일 밤 TV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은 물론이요,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 팬들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기도 하는 친밀한 존재가 된 것이다. 미드의 이러한 뜨거운 인기는 국내 공중파 방송사들의 편성 경쟁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주요 방송 3사는 주말 심야시간대에 경쟁적으로 최신 미드 작품들을 채워가고 있다.

 

인기에 비례해 점차 부담이 커져가는 편당 수입료를 감수하면서라도 미국 현지와의 시간차를 최소화하는데 사활을 걸고 있는 등 각 방송사의 '미드 모시기' 경쟁은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의 이 같은 미드 열풍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 속에 간과할 수 없는 유속(流速)으로 흐르고 있는 미국에 대한 또 다른 정서, 소위 '반미정서'라는 그것과 상당히 이질적인 방향성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의 반미정서는 특정 정치세력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도리어 어떠한 정치적 구호로서의 반미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수준의 포괄적 정서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국내의 주요 인터넷 공간들에서는 부시 미대통령을 ‘전쟁광’으로 묘사하는 글이나 그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미국이 강대국으로서의 도리를 지키기보다는 탐욕과 횡포를 일삼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내용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대규모 촛불집회를 촉발시켰던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에 있어서도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압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우리 정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컸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의 불합리한 통상압력에 대한 깊은 불만도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미선이 효순이 사건'의 처리과정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어떠했는가? 불합리한 ‘소파협정’이 이슈화되었을 때 국민들이 느낀 무력감은 어떠했는가?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미국에 대한 불신과 불쾌의 감정은 특정 정치세력의 범위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포괄적인 정서로 일반화되었다. 이렇게 일반화된 반미정서가 가장 잘 드러났던 사건이 '안톤 오노'에 대한 전 국민적 분노이다. '안톤 오노'는 한 명의 개인이었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미국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었다. 심지어 이 일을 계기로 'Fucking USA'라는 노래까지 만들어져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것은 인터넷 공간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몇 개월 후 개최된 월드컵 미국전에서 골을 넣은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이 ‘안톤 오노’를 조롱하는 세러머니를 했다. 이에 대해 신중치 못했다는 비판도 일부 있었지만, 대체로 통쾌하게 느꼈다는 것이 일반적인 국민들의 반응이었다. 이토록 일상화된 반미 정서를 갖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미국 드라마의 열풍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모순성을 지닌다. 과연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혹자는 이것을 한국인들이 미국에 대해 정치의 영역과 문화의 영역을 구분하여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 해석한다. 또 다른 사람은 우리 사회가 예전에 비해 보다 다양한 시각을 보유한 다원화 사회로 충분히 이행되었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이질적인 현상을 보다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드 자체의 콘텍스트가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변해왔는가를 파악하는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국내에서의 미드의 인기는 사실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600백만불의 사나이’, ‘맥가이버’, ‘브이’, ‘에어울프’, ‘A특공대’ 등 7,80년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미국 드라마들에 대한 향수는 그 시대를 살았던 한국인들에게 폭넓게 공유되는 것이다. 가히 클래식이라 부를만한 과거의 미드들이 수호하는 ‘미국적 가치’란 그야말로 고전적이다. 미국은 세계의 질서를 수호하는 경찰이며 늘 강하고 승리한다. 흉내낼 수 없는 첨단의 테크놀로지를 보유하고 있고, 그것을 창조, 운용하는 지능과 맨파워를 가지는 것은 물론이다. 위협은 늘 외부로부터 도래하고 내부적 결속과 가치는 신뢰할 수 있는 절대 선(善)이다. 당시의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우월감에 대한 신뢰는 냉전체제의 절대 규율이자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던 ‘자유진영’에서 완벽히 공유되던 것이었다. 그러나 소련은 패망했고 냉전은 폐기됐다. 명확하고도 가시적인 주적을 잃은 상황에서 미국 드라마는 새로운 안티테제가 필요했다. 새뮤얼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에서 예측한 바와 같이, 이후 세계질서는 문화적 유사성을 가진 문명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세계 분쟁은 문명 간 충돌의 양상으로 흘러가는 듯 했다. 그리고 만약 이 사건이 없었다면 그 타파의 대상만 단순히 변경될 뿐 강하고 스마트한 미국의 활약은 미국 드라마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 세계는 2001년 9월 11일 직접 보고서도 믿기지 않는 엄청난 사건을 목도한다. 그 누구도 침탈할 수 없을 거라 믿었던 슈퍼파워 미국의 본토, 그것도 심장과도 같은 뉴욕의 한복판에 대한 충격적인 테러가 자행된 것이다. 이 사건은 미국인들이 굳건히 신봉하던 ‘강하고 정의로운 미국’에 대한 그간의 믿음에 커다란 균열을 가져왔다. 테러에 대한 공포는 커져갔고 그만큼 적개심도 커졌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는 그와는 미묘한 간격을 가진 새로운 변화도 태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인들이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고 반성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간 저질러온 잘못들과 그들 내부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정의로운 정부’에 대해서도 돌아보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미국인들의 자기성찰적 고민은 그들이 보고 즐기는 엔터테인먼트의 콘텍스트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되기 시작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의 기록적인 흥행이다. 충격적인 테러의 전후 상황에서 미 정부가 보여주는 치부와 무능을 주요 내용으로 다룬 이 다큐멘터리가 3천만달러 이상의 사상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다는 사실은 그만큼 많은 수의 미국인들이 자기 자신과 국가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는 더 이상의 어떠한 허풍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바로 미국 드라마에서 지속되던 ‘미국적 가치’가 드라마틱하게 변모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미국 드라마에서의 이러한 ‘전통적 가치’의 붕괴현상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미국의 입법, 행정, 사법부 등 공적 권력에 대한 불신의 테제이다. 이제 미국의 드라마는 ‘강한 미국’과 ‘신뢰할만한 정부’를 부인하고 그들이 살던 곳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미국에 대한 대규모 테러계획을 추적하고 이를 막기 위한 정부기관 CTU(counter terrorist unit)와 잭 바우어 요원의 활약을 그린 미국드라마 <24>에서 우리는 이처럼 변화된 미국 드라마의 콘텍스트를 확인할 수 있다. CTU는 첨단 장비를 갖춘 엘리트 요원들로 구성된 정예 집단이지만 테러리스트들 역시 이에 만만치 않은 능력을 갖추고 있다. 테러리스트들은 완벽하고 치밀한 계획들을 통해 미국 대테러기관을 무력화시키는 한편 사건의 흐름을 지배하는 전지적 시점을 보유한다. 그에 반해 여러 대테러기관들은 물론 최후의 저지선인 백악관마저 그들의 공격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존경받던 전직 대통령이 살해되고, 에어포스원도 격추당해 대통령이 유고되는 등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심각한 수준의 위협이 발생된다. CTU를 포함한 국토안보부나 CIA, FBI 등 대테러기관들의 대처는 사사건건 손발이 어긋나고, 테러방지를 위한 협력보다는 정부 내 헤게모니 획득이 그들의 우선적인 관심사다. 철벽같으리라 여겨졌던 보안도 모두 뚫렸다. CTU 내에서 가장 믿을만했던 요원이 테러리스트 집단의 핵심인물임이 밝혀지고, 심지어 시즌 후반부에는 대통령 유고로 인해 급하게 임명된 신임대통령이 테러를 주도하는 초국적 집단의 스파이임이 밝혀지기까지 한다. 잭 바우어 요원은 이처럼 무능력하고 부패한 정부가 테러로부터 국민들을 무방비 상태로 방치하고 있을 때 개인적인 고군분투를 통해 위기를 모면시키는 새로운 유형의 슈퍼히어로이다. 이 드라마에서 남아있는 유일한 고전적인 가치라면 자신의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바우어 요원의 가족주의 정도가 발견되는데, 이나마도 아내는 살해되고 딸조차 아버지를 미워하게 되는 훼손된 형태로 나타난다.

 

살인누명을 쓴 형을 구하기 위해 탈옥계획을 문신으로 새기고 들어가 탈옥을 시도하는 동생의 이야기인 <프리즌 브레이크(Prison Break)>도 위의 유형에 포함된다. 극상황의 기본전제는 미국의 사법제도가 형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줄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주인공인 ‘마이클 스코필드’는 정의 구현에 실패한 공적구제(公的救濟)로서의 사법제도를 정면으로 부인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적구제(私的救濟)를 시도한다. 무자비하고 비열한 벨릭 교도관이 지배하는 감옥의 내부는 그야말로 법도 원칙도 없는 무법의 세계이며 이것 역시 미국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의 메타포이다. 탈옥에 성공한 스코필드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FBI요원 머혼조차도 그 자신부터 누군가를 살해하고 자기 집 마당에 묻어놓은 사적구제의 경험을 가진 자기모순을 가진 사람이다. 심지어 그는 이 사실이 알려질까 극심한 불안증세에 시달리는 약물중독자이기도 하다. 이처럼 미국의 권력기관을 상징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신뢰가 결여되고, 자기모순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다. 이렇듯 극한의 상황에서 결국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기 자신 뿐이라는 극도의 절박함은 드라마에 투영된 미국인들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콘텍스트 변화의 두 번째 유형에서는 보다 미시적인 차원에서 기존 가치에 대한 시각 변화를 보여준다. 이것은 미국인들의 일상과 삶에 대한 재해석이다. 4명의 중산층 주부의 일상을 파고든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은 기존의 미국적 가치가 ‘삶의 단위’에서 어떻게 극명하게 재해석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계 최고의 부국인 미국의 한 교외지역, 그림 같은 정원을 가진 넓은 2층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평화롭고 여유롭고 안전해 보인다. 얼핏 보기에 그들에겐 치열한 생존의 문제나 사사로운 걱정 따위는 남의 이야기일 것만 같다. 아메리칸 드림의 완벽한 실현이다. 하지만 <위기의 주부들>의 전복적 시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겉으로 보기엔 지극히 평화로운 그들의 일상이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그녀들의 속사정은 전혀 다르다. 그들의 삶을 자세히 뜯어보는 순간, 실상 그녀들의 일상은 음모와 욕망으로 점철된 치열한 전투의 연속임을 보여준다. 이것은 ‘부유하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아메리칸 드림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아메리칸 드림이 환상이었음을 인정하고, 이를 일상적 비극으로 치환하고 있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미국 드라마가 9․11을 통해 비로소 기존의 ‘미국적 가치’에 대한 자성적 텍스트를 갖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고, 이로써 우리나라의 반미정서와 미드 열풍이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양립할 수 있었는지가 설명이 된다. 우리는 미드를 보면서 형편없이 망가진 아메리칸 드림을 목격하고, 반질반질한 겉모습과 달리 속은 곯아 불행해진 미국인의 삶을 느낀다. 미드 속에서의 미국의 공권력은 정의롭지도 않고 부패했으며 탐욕스러운 이빨을 드러낸다. 잭 바우어 요원이 위기를 극복해가는 과정도 마이클 스코필드가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탈옥하는 과정도 그 진흙탕 같은 미국의 현실을 헤쳐 가려는 극히 개인적인 몸부림이다. 그러므로 미국에 대한 ‘불만’의 정서를 품고 있는 우리도 함께 공감하며 기꺼이 그들의 편이 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큰 함정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이러한 미국드라마 속의 자성적 콘텍스트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라는 문제이다. 세계적인 히트 문화상품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미국 드라마 속의 반성적 콘텍스트는 미국 드라마제작자들의 ‘전략적 선택’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90년대 초반의 <베이워치(Bay watch)>를 끝으로 침체일로를 걷고 있던 미국드라마가 갑작스럽게 9․11을 전후한 시점에 폭발적인 성장을 맞이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미드의 전성시대를 본격적으로 견인한 주요 요인은 크게 다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헐리우드의 우수한 맨파워들이 TV드라마 제작에 속속 영입되었다. 제리 브룩하이머, 키퍼 서덜랜드, 스티븐 스필버그, 리들리 스콧 등과 같은 굵직굵직한 헐리우드의 인재들이 이 시기에 새로운 시장에 동시 다발적으로 새로운 시장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둘째, TV드라마 제작에 거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제작비에 맞먹는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해 탄탄한 구성과 스케일을 가능케 했다는 점이다. 위의 두 가지 요소를 재해석해보면 결국 새로운 미드의 전성시대는 TV드라마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 개발되었기에 가능하다 뜻이다. 우수한 제작인력들은 TV드라마가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드는 것 보다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간파했고, 제작자는 안정적으로 회수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높은 편당 제작비를 지불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미국 드라마가 발견한 새로운 금광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광활한 해외시장이다. 최근 미국 드라마 작품들의 수익구조를 살펴보면, 높은 제작비에 대한 자국 방송국으로부터의 회수율은 약 65%수준에 머무른다고 한다. 결국 나머지 절반에 가까운 손실은 해외 판권과 DVD 판매수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에 비춰 보았을 때, 해외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선행적 판단 없었다면 결코 이와 같은 블록버스터에 견줄만한 탄탄한 드라마는 제작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애초부터 전 세계 해외 고객이 미국이 내놓은 ‘신상품’에 열렬히 반응해야만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그렇다면 미국의 문화자본이 해외시장 진출을 전제로 한 블록버스터 드라마를 제작하기로 판단한 시점은 왜 하필 9․11을 전후한 때일까? 9․11 직후, 전 세계는 믿을 수 없는 비극에 크게 놀랐지만, 동시에 ‘오죽했으면’의 정서도 분명 존재했다. 미국의 가까운 동맹국조차 미국의 횡포에 대해 ‘불타오르는 적개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너무 심한 것 아닌가’라는 정도의 갸웃거림은 있어 왔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한 이러한 범세계적인 불만의 정서는 냉전 종식 이후 늘 상존해 왔던 부분이었지만 미국이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미국 내부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새로운 적의 출현과 안전에 대한 불안감으로 큰 동요를 겪고 있었다. 이것은 미국의 문화자본에게는 놓칠 수 없는 마케팅 기회였다. 미국 내부의 ‘불안의 정서’와 미국 외부의 ‘불만의 정서’는 충분히 조합이 가능한 상품가치가 있는 매력적인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기존의 미국적 가치가 이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낡은 상품이 된 상황에서, 국내의 소비자뿐만 아니라 더 넓은 시장의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것은 이들로선 당연한 선택이었다. 이는 자본주의의 기본적 속성중의 하나이다. <스펙터클의 사회>의 저자 ‘기 드보르’는 자본주의의 기본속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모든 참된 경험을 취해 상품으로 변모시킨 뒤, 우리에게 광고와 대중매체를 통해 되판다. 따라서 인간 삶의 모든 부분이, 상징과 재현의 체계에 불과하며 자체의 고유한 내부 논리에 지배되는 ‘스펙터클’ 안으로 들어왔다. ‘스펙터클’은 이미지가 될 만큼 축적된 ‘자본’이다.

 

기존 사회의 모든 규범을 거스르려 했던 60년대의 ’저항적 히피문화‘에 대한 자본주의 체제의 대처 방식을 기억해보자. 체제는 이러한 혁명적 기호와 상징들을 기존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도리어 이를 마케팅 기회로 바꿔버렸다. 히피적 아이템과 스타일은 곧바로 광고에 등장했고, 백화점 쇼윈도우 속 마네킹에게 그대로 입혀졌다. 이것이 바로 ’포섭‘이라는 자본주의의 속성에 관한 개념이다. 체제는 어떠한 개념의 상징을 취하고 그 핵심적 내용은 비운 후에 이를 껍데기뿐인 상품으로 재생산한다. 대중은 재생산된 그 상품을 구입하는 것에서 그러한 관념에 동참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이것은 대안적 만족감에 불과하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미드 속의 콘텍스트의 변화는 미국의 내부적인 불안의 기운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도 해외시장에 새로운 상품을 거부감 없이 판매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자 포섭에 다름 아니다. 결국 한국 사회의 미드 열풍도 그럴듯한 포장으로 그 속내를 감춘 새로운 형태의 ‘made in USA'에 무비판적으로 열광하고 있는 것 인지도 모른다. 7,80년대 미국의 힘을 과시하며 그것을 믿으라 강요하던 노골적 형태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라졌지만, 새롭게 출현한 불안과 불만을 능숙하게 포섭하여 광활한 신규시장의 소비자들을 현혹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제국주의 일수 있기 때문이다. 허버트 마르쿠제가 말했던 ‘억압적 관용’이라는 개념을 문득 떠올려 보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까?

2009.01.02 15:17ⓒ 2009 OhmyNews
#미국드라마 #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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