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엔 이삿짐 불교와 수출불교가 있다

고학력 지식인층을 기반으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진화발전

등록 2009.01.03 13:56수정 2009.01.0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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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연구'로 유명한 아놀드 토인비(1889~1975)는 죽기 몇 해 전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건을 "동양의 불교가 서양에 전해진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발언에 대해 서구의 지식인들은 물론 일반인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20세기는 에릭 홉스봄이 그의 저서 <극단의 세기>에서 평한 것처럼 1·2차 세계대전과 대량학살, 소비에트 혁명, 여성·민권운동 등 인류사에 오래 남을 사건들이 많았고 서구문명이 지배하는 시대에 본고장 인도에서조차 사라진 종교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하는 오만함 때문이었다.


20세기가 지난 지금 토인비의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가질 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기독교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불교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는 불교신자가 약 300만 명, 불교 명상 인구는 10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인구에는 이민온 아시아계 신자가 많은 수를 차지하지만 백인 개종 불자들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유일신으로는 한계... 늘어나는 미국 불자들

서구에서 불교가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다원화되고 과학적 가치가 보편화된 세계에서 유대-히브리 문명에서 기원한 유일신 종교가 한계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초월적 신의 계시에 근거하는 유일신교는 역사적으로 부족 종교에서 세계종교로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나 오늘날에는 교리의 경직성과 가부장적 유산, 배타성 등으로 인해 여러 문제점을 낳고 있다. 

유일신교가 한계에 봉착하자 서구에서 불교에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미국에서 백인들에게 불교가 확산된 계기는 1950년대로 비트운동(Beat Movement)을 이끌었던 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와 게리 스나이더(Gary Snyder) 그리고 잭 키루아츠(Jack Kerouac)등이 불교·힌두교 등 동양종교에 심취하고 이를 작품 속에 도입하면서부터였다. 


1960년대 들어 비트세대의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이 동양종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하리시나 라즈니시 같은 인도 구루의 영향으로 힌두식 명상이 큰 세력을 형성했으나 환각제 사용과 섹스 스캔들로 인해 점차 불교에 그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오늘날 미국불교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이 이때 불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미국 참여불교운동을 이끌고있는 조안 헬리팩스(Joan Hallifax), 위빠사나 수행의 권위자인 잭 콘필드(Jack Kornfield), 죠셉 골드스타인(Joseph Goldstein), 비구니운동의 지도자인 툽텐 최된 등이다. 

1970년~80년대는 달라이라마가 미국을 방문하고(1972년), 티벳에서 온 투릉파 린포체가 미국 콜로라도에 나로파 불교대학교를 설립해 불교학·문학, 명상학, 심리치료, 참여불교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 종교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면서 이른바 티벳 불교시대를 열었다.

이때 할리우드 유명배우인 리차드 기어, 스티븐 시갈 등이 불교에 귀의하면서 대중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 불교는 고학력·전문직에게 매력적인 종교로 인식되고 있고 기존 유대교에 불교를 접합시킨 주부(Ju-Bu, Jewish-Buddhist) 신자도 늘어나고 있다.

위빠사나, 선종, 라마불교 ... 종교의 거대시장 미국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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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야 선원 숭산스님의 제자이면서 미국 재가불교운동을 이끌고 있는 조안 핼리팩스가 미국 뉴멕시코 산타페에 설립한 우파야 선원 ⓒ 우파야선원 홈페이지


미국불교는 아시아와는 달리 승려보다는 재가자 중심으로 양성평등과 명상, 평화운동 등 참여불교를 강조하고 있으며 이같은 현상은 서구불교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통불교(通佛敎)로서의 모습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세계 모든 상품이 경쟁하는 시장인 것처럼 종교도 거대시장을 형성해 한국과 일본의 선종은 물론이고 남아시아의 위빠사나, 티벳의 라마불교 등 불교의 모든 종파들이 들어와 경쟁적으로 포교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세운 사원이나 명상센터에는 티벳의 승려는 물론이고 남방 위빠사나 선사나 한국 선사들이 함께 강연을 하거나 명상을 이끌고 있고 공동으로 행사를 개최하기도 한다. 미국인 방식으로 불교를 받아들이고 자체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체적으로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는데 이들은 젊은 세대와 어울리기 위해 펑크복장을 하거나 몸에 문신을 새기고 활동하기도 한다.  

히피 세대, 고학력 전문직 중심으로 형성된 미국식 불교와 대조적인 것이 아시아계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민자 불교다. 미국 이민자 불교의 기원은 19세기말 대륙횡단철도 건설을 위해 들어온 중국인 노동자들(쿨리라고 부른다)에 의해서이다. 이후 한국·일본·태국·베트남 등 아시아 계 이민자들이 물밀듯이 몰려오면서 이민자 불교는 급격하게 성장하게 된다.

이민자 불교의 특징은 공동체와 기복신앙, 승려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는 아시아 본토불교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 출신 불교도들에게 불교 신앙은 문화적· 인종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아시아계 지역사회가 불교식 사원을 짓게 되면 이들 사원들은 출신국가의 민족 집단을 기초로 하게 된다. 

이러한 이민자 불교에 대해 미국의 개종 불교도들은 '이삿짐 불교(Baggage Buddhism)' 또는 '보따리 불교'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불교는 지성적이며 기부와 사회참여에 적극적인 새로운 불교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식 불교는 과학과 의학 등 학문 영역까지 확장해 심리학과 심리치료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고 기업 리더십 프로그램에도 적용하는 등 그 폭을 넓혀가고 있다.

미국식 불교, 심리학·기업프로그램 등으로 영역 확장 

미국불교의 흐름이 지나치게 엘리트 지향적이고 서구적 합리성을 강조하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세계 불교계의 흐름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일부에서는 미국 불교가 이민자들의 이삿짐 불교시대, 스즈키 다이세츠. 숭산스님, 달라이라마. 틱낫한 스님등고승들이 미국을 방문해 포교하는 수출 불교시대(Export Buddhism)를 넘어 많은 수행자들이 한국, 일본, 미얀마, 인도 다람살라 등을 직접 찾아가 수행하는 수입불교시대(Import Buddhism)에 접어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불교 역사에서도 의상, 체관같은 유학승들이 한국불교의 새로운 전기를 개척했듯이 미국불교도 그러한 시점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미국불교가 어떤 식으로 변할 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자신들의 방식으로 진화·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불교의 영향력이 커지면 미래의 어느 날 불교, 힌두교 등 동양 종교의 영향을 받은 뉴에이지 음악이 역수입되어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것처럼 미국 불교가 수입되면서 미국식 선방이나 명상센터가 도심에 자리 잡고 자유분방한 한국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기도 한다.  미국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점이다.
#불교 #미국 #한국 #수행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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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씨알재단에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씨알정신을 선양하고 시민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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