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마디 한자말 털기 (55) 곤히困

[우리 말에 마음쓰기 513] ‘곤히 잠든다’, ‘곤히 자는 동안’, ‘곤하게 잘’ 다듬기

등록 2009.01.03 19:45수정 2009.01.03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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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곤히 잠든다

 

.. 그 몸이 세상에 갓 태어난 어린 아기처럼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길 앞에서 곤히 잠든다 ..  《김훈-자전거여행》(생각의나무,2000) 17쪽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곤하게’ 잔다는 말을 언제부터 들었나 하고요. 어릴 적에 아버지 어머니가 이런 말을 쓰신 듯하고, 이웃집 아주머니와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도 쓰셨지 싶습니다. 다른 외마디 한자말과 견주어 퍽 오랫동안 써 온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곤하다(困-)

 │  (1) 기운이 없이 나른하다

 │   - 연일 과중한 업무로 몸이 곤해서 그런지 / 배는 고프고 몸은 곤하여

 │     그는 지쳐서 의자에 곤히 앉아 있었다

 │  (2) 몹시 고단하여 잠든 상태가 깊다

 │   - 잠자리에 들자 곧 코를 골며 곤한 잠에 빠졌다 / 곤하게 자고 있는 아이

 │     곤히 자는 아기 깨우지 말고 밖에 나가서 놀아라

 │  (3) 잠이 오거나 술에 취하여 정신을 가눌 수가 없다

 │

 ├ 곤히 잠든다

 │→ 달게 잠든다

 │→ 깊이 잠든다

 │→ 새근새근 잠든다

 └ …

 

 국어사전 보기글에서 보이는 “의자에 곤히 앉아 있었다”는 “기운 없이 앉아 있다”나 “나른하게 앉아 있다”로 풀어내야 알맞겠다 싶습니다. “곤히 자는 아기”라는 말은 “깊이 자는 아기”나 “달게 자는 아이”쯤으로 풀 수 있을까요.

 

 ┌ 연일 과중한 업무로 몸이 곤해서

 │→ 날마다 힘든 일로 몸이 고달파서

 │→ 나날이 벅찬 일로 몸이 힘들어서

 ├ 배는 고프고 몸은 곤하여

 │→ 배는 고프고 몸은 나른하여

 │→ 배는 고프고 몸은 힘이 없어

 ├ 곤한 잠에 빠졌다 → 깊이 잠에 빠졌다

 ├ 곤하게 자고 있는 → 달게 자고 있는

 └ 곤히 자는 아기를 → 새근새근 자는 아기를

 

 ‘困’은 “지칠 곤”입니다. 그러니까 이래저래 힘들고 지쳐서 잠든다는 이야기이고, 이런 모습을 가리킬 때는 “지쳐 잠들다”라든지 “고단해서 잠들다”쯤으로 풀 때가 가장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이 깊이 잠든 모습을 가리킬 때에는 “새근새근 잠들다”로 적으면 될 텐데, 어른들한테는 “꼭 아기처럼 새근새근 잠들다”처럼 적어 줍니다.

 

 

ㄴ. 곤히 자는 동안

 

.. 더욱 불안해진 엄마는 우리가 곤히 자는 동안 앵거스의 새 칼을 쥐고 밤새 텐트 문 옆에서 보초를 섰다 ..  《트래버스, 앵것, 메이지, 오클리/홍한별 옮김-오카방고의 숲속학교》(갈라파고스,2005) 59쪽

 

 ‘보초(步哨)’도 말하고 ‘불침번(不寢番)’도 말하는데, 이러저러한 한자말을 털어내고 이 자리에서는 “밤새 텐트 문 옆에서 지켜 섰다”로 손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불안(不安)해진’은 ‘걱정스러워진’이나 ‘조바심나는’으로 다듬어 줍니다. “앵거스의 새 칼”은 “앵거스가 준 새 칼”이나 “앵거스가 새로 장만한 칼”로 손질합니다.

 

 ┌ 우리가 곤히 자는 동안

 │

 │→ 우리가 푹 자는 동안

 │→ 우리가 깊이 자는 동안

 │→ 우리가 정신없이 자는 동안

 └ …

 

 고단함에 겨워 잠이 드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이 다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적어 주면 ‘어떻게 자는가’를 잘 나타낼 수 있습니다. 죽은 듯이 자는 사람이 있고, 새근새근 자는 사람이 있으며, 시끄러운 소리가 나건 말건 아랑곳 않고 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 모르게 자는 사람이 있고, 코를 골며 자는 사람이 있으며, 정신없이 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ㄷ. 곤하게 잘

 

.. “어쩌면 저렇게 곤하게 잘 수 있을까? 저 아이들의 꿈은 또 얼마나 고단할까?” 결국 정오가 다 되어서야 아이들은 고단한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  《김현수-똥교회 목사의 들꽃피는마을 이야기》(청어람미디어,2004) 22쪽

 

 “저 아이들의 꿈은”은 “저 아이들 꿈은”이나 “저 아이들이 품은 꿈은”으로 다듬습니다. ‘결국(結局)’은 ‘이리하여’나 ‘그예’로 손보고, ‘정오(正午)’는 ‘한낮’이나 ‘대낮’으로 손봅니다.

 

 ┌ 저렇게 곤하게 잘 수 있을까 (x)

 └ 고단한 잠에서 깨어날 (o)

 

 보기글을 봅니다. 첫 줄에서는 ‘곤하게’라 하지만, 다음 줄과 다다음 줄에서는 ‘고단할까’와 ‘고단한’이라고 합니다. 처음부터 자기 말씨에 마음을 쏟을 수 있었다면, 첫 줄에서도 “고단하게 잘”처럼 적을 수 있었겠지요.

 

 ┌ 저렇게 달게 잘 수 있을까

 ├ 저렇게 죽은 듯이 잘 수 있을까

 ├ 저렇게 깊이 잘 수 있을까

 └ …

 

 고단하게 자는 사람은 몸이 아주 힘들기 때문에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무척 깊이 잠들어 있으면 옆에서 시끄럽게 굴어도 깨어나지 못하곤 합니다. 꼭 ‘죽은 듯이’ 잠들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듯이 잠든 그이는 둘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건 깊이깊이 잠들어 있으니 ‘달게’ 잠을 즐길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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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3 19:45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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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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