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예측되는 전세계적 경기 침체에 대처하기 위해 각 나라들은 저마다 공공부문 재정지출을 주요 수단으로 하는 경기 활성화 및 서민 복지정책들을 추진하느라 분주하다.
세계 경제 불황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새롭게 출범할 오바마 행정부의 경기 회생정책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직 확정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경기부양책은 대략 6750억~8500억 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 중 핵심 부분은 중산층·저소득층의 세금공제와 의료비 및 교육비 지원 등 복지대책과 빌딩, 자동차 등의 에너지 효율화 및 태양력 풍력 등 재생에너지 개발 등 기후 환경 분야의 인프라 투자를 통한 소위 녹색 일자리 제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정책방향의 적실성에 대한 논란이 미국 내에 존재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새로운 미국의 미래를 열어가는 희망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아이슬란드·러시아 등과 함께 미국발 금융위기로부터 가장 직접적 타격을 받은 한국 역시 세계적 경기 침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적절한 대안이 매우 절박한 실정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14조원 규모의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는 바로 이러한 경제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핵심 정책 프로그램으로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그 성패 여부가 한국 경제의 미래와 국민들의 삶의 질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처럼 국가의 운명이 걸린 주요 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내용이 충실해야겠지만 동시에 그 정책에 대한 국민의 동의 역시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는 그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얼마 전 압도적 다수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사실상 폐기된 듯이 보였던 한반도 대운하 '1단계 사업'이라는 논란에 휘말리면서 정책 프로그램으로서의 내용 측면과 국민의 동의 형성이라는 사회 측면 모두에서 심각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여러 곳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4대강 정비사업'은 이미 97.3%에 달했다는 하천 정비율에 비추어 불필요한 중복투자로 14조원이라는 공공자금을 지출하는 데 비해 장단기적 경제 파급 효과가 미약할 뿐만 아니라 자연형 하천 복원과 하천 주변의 습지·논 등을 활용한 자연형 홍수 대책이라는 새로운 하천관리 정책 방향을 역행한다는 점에서 운하 논란과 관계없이 내용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민 관심의 초점은 '4대강 정비사업'의 세부 사업 내용보다는 운하와의 연관성 문제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과 주요 보수 언론은 대형 토목공사에 우호적인 일부 토목 전공 학자들을 활용하여 '4대강 정비사업'과 운하사업은 직접적 연관성이 없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경인운하 사업이 탄생한 과정과 경제적 타당성 부재 등 수많은 문제점이 드러난 이후에도 굳건히 살아있는 현실을 조금만 주의 깊게 복기해 보면 많은 국민들이 '4대강 정비사업'을 운하의 1단계 사업으로 의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논리상의 귀결이다.
경인운하로 변신한 굴포천 하천정비사업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경인운하 사업 추진을 최종 확정하고 올 3월에 착공에 들어간다고 한다. 애초 인천·서울·부천 등에 걸쳐 있는 굴포천 유역의 홍수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하천정비계획'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건설부·수자원공사·건설회사 등 토목건설 관련 집단의 집요한 노력의 결과 대규모 토목공사인 '운하사업'으로 변신한 사례다.
1995년 굴포천 하천정비 사업이 시작된 지 14년이 지났다. 그동안 환경단체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 기관인 KDI와 감사원에서조차 사업에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떤 집단보다 집요하고 로비 능력이 강한 한국의 토건세력은 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오매불망하나 국민의 저항이 워낙 심하다 보니 14조원짜리 4대강 하천정비 사업으로 일단 출발하려는 이명박 정부가 경인운하 착공을 결정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상징적이지 않은가.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경인운하는 인천시 서구 시천동 서해바다로부터 서울 강서구 행주대교 부근 한강까지 18㎞구간에 폭 100m, 수심 6m의 인공수로와 터미널, 그리고 바닷모래 부두 등을 짓는 총 9개 사업으로 구성된 국책사업으로 민간사업비 1조 7,109억원, 정부시행사업비 5,338억원 등 2조 2447억원 규모가 투입되는 대형 토목 공사다.
하지만 그간의 타당성 논란으로 사업 시행이 지연되고, 민간자본을 통해 사업을 추진할 만큼의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확인되자 정부는 이 사업을 다시 수자원공사에서 추진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경인운하는 탄생에서부터 사업 추진 과정 전체에 걸쳐 정부 개발부처, 건설업체, 토목 관련 전문가 등 소위 토건세력이 그들의 왜곡과 조작 능력의 절정을 보여준 모범(?) 사례라 할 정도로 쟁점이 많은 사업이다.
이 글에서는 현재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의 핵심 쟁점인 하천정비 사업과 운하 사업과의 연관성을 드러내는 부분에 대해서만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치수사업에서 은근 슬쩍 운하 사업으로
경인운하 논쟁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또한 결정적 거짓말은 '어차피 치수대책으로 80m폭 방수로가 확정되어 있으므로 20m만 확장해서 운하를 만드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더 바람직하다'라는 건교부 (현 국토해양부)와 경인운하주식회사 등 사업 추진론자들의 주장이다.
한강수위보다 낮아서 비만 오면 잠기는 굴포천 유역의 홍수 대책으로 80m 폭의 인공 방수로를 만드는 것은 환경영향평가 등 타당성 검토를 거쳐 이미 확정되었으니 20m 정도만 넓혀서 운하로 바꾸면 방수로 상태로 두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건천화 등 환경 문제도 보완하고 동시에 인천항 체선 문제를 완화하는 물류체계 개선효과도 있다는 주장은 누가 들어도 상당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치수 대책이 운하 건설 사업으로 전이될 수 있는 매우 전형적 논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경인운하 사업 탄생과정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더욱 본질적인 진실은 20m만 확장하면 바로 운하로 전환할 수 있다는 논리의 근거인 80m폭 방수로가 원래 홍수 대책으로 자연스럽게 결정되었던 방안이 아니라 운하건설이라는 대규모 국책 토목공사를 만들어내려 끊임없이 기회를 엿보던 건설관료와 수자원공사, 그리고 거기에 기생하는 토목 기술전문가들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합작품이라는 사실이다.
1987년 여름 굴포천 유역을 중심으로 한 경인지역에 소위 전문용어로 100년 빈도에 해당하는 343㎜/일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이 비로 서울 강서구, 인천시 북구, 경기도 김포와 부천 등에 걸쳐 5400여명의 이재민과 420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에 당시 건설부(현 국토해양부)는 1988년 9월 굴포천 종합치수대책을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은 굴포천 본류와 서해를 연결하는 '40m폭 방수로'의 개설, 굴포천 본류의 하도 개수, 굴포천 하구의 유수지 설치, 신곡배수장의 기존 시설을 활용하는 방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근거해 2년 후인 1990년 10월부터 건설부와 수자원공사는 굴포천 종합치수사업을 추진하였고 이를 법적 절차로 뒷받침하기 위해 이듬해인 1991년 12월에 굴포천 종합치수사업 기본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굴포천 종합치수사업 기본계획 수립 작업시에 건설부는 1989년부터 자체적으로 검토해 오던 '경인운하사업의 타당성 조사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그 결과 중요한 변화가 발생한다.
새로운 보고서에서는 1988년의 굴포천 치수종합대책에서 제시되었던 방안을 배제하고 갑자기 새로운 대안으로 ①굴포천 치수사업만을 단독으로 시행하는 방안(1990~1995), ②치수사업과 운하건설사업을 연계하여 동시에 건설하는 방안(1990~1996) 그리고 ③치수사업과 운하건설을 연계하되 1단계로 치수사업을 우선 시행하고(1990~1995) 2단계 사업으로 운하를 건설하는 방안(2000~2003) 등을 제시해 놓고 그 중에서 두 번째 대안인 치수사업과 운하사업을 연계하여 동시에 건설하는 대안이 경제성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80m폭 방수로는 이 과정에서 출현한 것이다. 치수대책을 넘어서서 운하사업을 추진하려다보니 당연히 수로 폭이 넓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기존방식처럼 서해와 한강 쪽 두 방향으로 홍수량을 배제할 경우 수리적으로나 주운에 어려움을 주게 된다는 판단 하에 40m 방수로를 80m폭으로 확대하면서 홍수량 전량을 서해로 배제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폭 80m 방수로는 홍수문제 해결을 위한 치수 대책으로 추진된 수로가 아니라 운하건설을 추진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어떻게든 새로운 대형 토목공사인 운하사업을 추진하고자 했던 건설부와 수자원공사의 의도가 굴포천 종합치수사업을 변형시키는 방식을 통해 현실화한 것이다.
일단 강바닥만 파헤쳐 놓으면…
그 후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건교부와 수자원공사는 현대건설을 중심으로 구성된 민자사업자인 경인운하주식회사를 끌어들여 끝내 폭 100m, 수심 6m의 경인운하 사업 구상을 완성한다. 동시에 2,454억 6500만 원이면 되는 굴포천 종합치수사업은 쇠똥구리 소똥 굴리듯 몇 번의 변경을 거쳐 2조 2447억 규모의 대형 건설공사로 변신했다.
그동안 어차피 건설해야 할 80m폭 방수로를 20m만 확장해서 운하 건설을 추진했다는 건교부·수자원공사·경인운하주식회사의 말은 운하라는 거대 토목공사를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그들의 속셈을 숨긴 채 모든 사람들을 기만한 것이었다.
이러한 변경행위로 인해 1996년 12월이면 준공되었어야 할 치수사업이 2001년 말에나 준공될 수 있도록 늦춰졌으며 그 후 경인운하 건설 사업에 대한 사회 논란으로 현재까지 정식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그 결과 1998년과 1999년에 발생한 홍수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감사원의 지적을 빌리면 "시급하지 않은 국책사업을 이유로 시급한 치수사업을 중단하여 홍수피해를 막지 못한"것이다. 진실이 이러한데도 건교부 측은 환경단체의 반대로 사업 진행이 늦어져서 홍수가 나면 환경단체들이 책임질 수 있느냐는 협박을 일삼곤 했다.
경인운하의 탄생 과정을 보면 현재 발표된 '4대강 정비계획' 자체를 운하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쟁은 부질없어 보인다. 일단 강바닥을 파헤쳐 놓기만 하면 운하는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철도라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한국의 토건세력이 지닌 왜곡과 조작 능력이다. 그 비용이 국민의 혈세건 뭐건 자신들의 주머니만 채울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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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강바닥 삽질하고 보자? 굴포천 정비사업, 왜 '운하'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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