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먹거리로 농촌에 시래기들이 있다면 어촌 마을에는 이런 생선들이 겨울 햇살에 볕을 쬐고 있습니다.
김종성
수많은 횟집과 칼국수집 식당들이 모여 있는 대부도 입구를 지나 선재도를 향하여 갈 때쯤 버스에서 내려 원래대로 변신한 잔차에 올라 탑니다. 대부도는 물론 선재도와 영흥도까지 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니 이제 필요한 것은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을 제 다리와 엔진인 심장뿐이네요.
대교라고 하기엔 아담한 선재대교를 가뿐히 건너니 이름도 멋있는 작은 섬 선재도가 나타납니다. 선재도에도 동네 마을과 바닷가를 따라 길이 잘 나 있어 자전거 타고 다니기 좋습니다. 섬 주위에는 측도와 목섬이라고 불리는 새끼 섬이 있는데 둘 다 달님이 허락해야 건널 수 있는 길이 생깁니다. 우리나라 서해바다의 밀물과 썰물 현상은 달이 부리는 조화이니까요. 인간이 만든 길이 아닌 자연이 내어준 바닷길을 걸어보는 건 영흥도 가는 여행길의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답답한 도시에서 막혀 있던 코를 뻥 뚫어주는 알싸한 겨울 바닷바람을 마시며 달리다보니 드디어 진짜 대교랄 수 있는 영흥대교가 나타납니다. 넓디 넓은 바다 위에 세워진 당당한 위용의 다리이지만 사실 영흥도를 멀리서도 알아보게 하는 건 새하얀 연기가 몽실몽실 나는 커다란 굴뚝들과 바다 위에 줄줄이 서 있는 키 큰 송전탑들입니다.
이것은 영흥도 화력발전소로 큰 불을 내서 전기를 만든 다음 송전탑을 통해 부지런히 육지로 보내고 있습니다. 산이나 평야에 세워진 송전탑들을 보았었는데 여기 영흥도에서는 바다 위에 세워져 있어 이채롭습니다.
불을 질러 전기를 만들어내는 굴뚝들이 한자리 차지한 섬이지만, 사람 사는 모습은 평범하고 수더분한 섬 마을 풍경입니다. 섬 입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십리포 해변과 장경리 해변을 향해 달릴 때에도 급한 오르막이나 거친 언덕이 없어서 자전거 여행자를 편하게 해줍니다.
관광철이 아닌 추운 겨울날의 해변과 섬 마을은 사람들이 사는 듯, 떠난 듯 적막하고 한산합니다. 최종 목적지였던 영흥도 장경리 해변에 도착해 저 혼자 바닷가를 거닐자니 쓸쓸하기도 하고, 이 넓은 모래 해변과 청명한 파도소리가 온전히 나 혼자만의 것이 된 것 같아 풍족한 느낌이기도 합니다. 이런 기분이 겨울 바다 여행의 묘미인 것 같아요.
영흥도 우체국에서 몸도 녹이고 자판기의 달고나 커피도 마시고 마을 동향(?)도 귀 동냥하며 애마와 저도 잠시 재충전을 합니다. 우체국 직원분이 장경리 해변가에 통일사라는 절이 있는데 산꼭대기에 있어 바다가 보이는 주변 풍광이 좋으니 꼭 가보라고 하더군요. 저는 애마 타고 오느라고 지쳐서 그 절은 다음 여행 때인 봄에 가기로 했지요.
제주도처럼 잘 닦여진 섬 해안도로를 속시원하게 달리자니 어떤 할머니께서 옆에 굴껍질을 수북히 쌓아놓고 열심히 굴을 까고 계시네요. 바닷바람과 굴이 섞인 진한 내음이 저를 자전거에서 내려 서게 합니다.
이 섬이 고향이자 삶의 터전인 할머니는 이렇게 추운 겨울에도 나와 갯벌에서 굴을 캔 다음 해안도로에 나와 앉아 굴을 까서 관광객들에게 1kg에 만원에 팔고 계십니다. 오늘은 벌써 3kg를 팔았다 하시며 아이처럼 좋아라 웃는 모습에 그만 저도 따라 웃게 되네요.
당신은 이 날씨에 바닷가로 출퇴근 하시면서 자전거 탄 저를 보시더니 손이 시려워 어떻게 타고 다니냐고 하시네요. '사실 손보다 발이 더 시려워 자전거 타기 힘들어요, 할머니' 그랬더니 오랜 경험이 녹아 있는 비법을 전수해 주십니다. 발이 들어갈 적당한 크기의 비닐팩을 사서 발을 넣어 감싼 다음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으면 발이 안 시려워진다네요. 한겨울에도 갯벌에 들어가 일하시는 할머니의 조언이니 믿을 만 하겠습니다.
영흥도를 향해 갈 때는 몰랐는데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돌아오는 길에는 차갑고 강한 겨울 바다 바람에 애마가 빠르게 나아가지 못하고 힘이 몹시 들어 높은 언덕을 올라가듯 기어를 낮추며 천천히 달립니다. 어쩐지 영흥도를 향하는 길에 평지도 오르막도 평소와 다르게 슁슁 잘 달린다 싶었는데 그게 제가 다리 힘이 참 좋아서가 아니라 바다 바람이 등 뒤에서 불면서 밀어준 덕분이었네요.
이런 심상치 않은 경험은 자전거 여행에서 종종 느끼는 깨달음 같은 느낌입니다. 주변 동료들, 가족들과 축적된 사회 저변의 시스템이 등 뒤에서 부는 바람같은 존재로 내 사회적 발전과 승진에 많은 도움을 주었음을 모르고 단지 내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줄 아는 어리석은 자만심을 일깨워줍니다.
오후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 해가 홍조를 띠며 길게 드리워지는 겨울 섬 영흥도. 저녁 노을이 지는 영흥대교의 조명 불빛 찬란한 인공적인 아름다움도 멋있고, 섬을 감싸안 듯 추운 날씨를 잠시 잊게 해주는 따스한 붉은 노을도 잊기 힘들만큼 아름답습니다.